파리/환락가에 성당직영 선술집 “인기”(특파원코너)

파리/환락가에 성당직영 선술집 “인기”(특파원코너)

박강문 기자 기자
입력 1992-04-13 00:00
수정 1992-04-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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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가 웨이터로 봉사”… 종업원도 모두 자원활동자/음식 즐기며 「명상의 시간」함께 경험… 새관광 명소로

파리 시내의 환락가로 유명한 피갈 지역에 「신부의 선술집」(르 비스트로 뒤 퀴레)이라는 간판을 단 색다른 음식점이 있다.웨이터 가운데는 신부차림을 한 이도 있는데 흥미로운 것은 그가 진짜 신부라는 점이다.

홍등가의 선술집과 근엄한 신부­이 짝짓기는 쉽게 상상하기 힘들다.그러나 이 작은 음식점은 피갈을 교구로 하고 있는 성삼위일체(라 생트 트리니테)성당이 운영하고 있다.이 성당은 파리의 큰 성당 몇개가운데 하나다.

피갈 거리는 밤이 되어야 활기를 띤다.라이브 쇼와 도색 영화 그리고 술과 밤의 여인들로 특징지워지는 이 거리의 인생들이란 영적 생활과는 거리가 멀다.이 지역 성당의 미사가 한산할 수밖에 없다.

이 거리에 매춘부와 뚜쟁이,펑크족·마약중독자·게이 등 위로받아야할 영혼들이 어느곳보다도 많다고 생각하는 성당측은 이들이 성당에 쉽게 오지 않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다가 그들 가까이로 다가가기로 했다.정식으로 행정당국의 허가를 얻어 피갈의 복판에 음식점을 냈다.

성당의 한 사제는 이 음식점 운영의 목적이 『주에게서 멀리 있는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서』라고 말했다.그는 한 신문에서 『1백년 전이라면 우리는 아프리카에 전도하러 갔겠지만 이제는 국내에서도 할일이 많이 있다』면서 이 일이 전도의 한 방편임을 밝혔다.

그런 목적으로 문을 연 곳이라 당연히 다른 음식점과 아주 다른 점이 있다.2층에 예배소를 두어 주문한 음식이 나올 동안 손님이 잠깐 올라가 고해를 하거나 신부에게 조용히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게 하고 있다.

여기서는 설교를 하거나 신앙을 직접적으로 권유하지는 않는다.식사하러 온 손님이 잠시나마 기도나 묵상으로 마음의 평화를 찾기 바라거나 말상대를 원한다면 그렇게 해 주는 것이다.

현란한 네온사인으로 눈을 자극하는 갖가지 유흥업소와 섹스관련 업소들 사이에 끼여있는 이 음식점은 항상 만원이다.이 거리에서 생을 영위해 나가는 사람들 뿐만 아니라 관광객들도 소문을 듣고 찾아온다.신부를 쉽게 만날 수 있는데다가음식값이 싸다는 것도 큰 매력이다.

비스트로라는 음식점은 우리말로 선술집이나 목로주점으로 옮겨질 수 있는데 음식값이 싸서 큰 부담없이 식사하거나 술을 마실수 있는 곳이다.더구나 신부의 비스트로는 돈벌이가 목적이 아니기 때문에 음식값이 무척 싸다고 한다.관광객으로서야 바가지쓰기 쉬운 피갈에서 싼 음식점을 만난다는 것만으로도 행운일 수 있다.

신부의 선술집은 귀머거리에 벙어리인 주방장을 빼놓고는 모든 종업원이 자원봉사자들이다.주로 주부들이 교대로 자정까지 봉사하고 있다.일요일은 성당 미사가 있으므로 휴업한다.

식사도 하고 종교적 시간도 가질 수 있는 독특한 이 음식점은 유럽의 다른 나라 신문들에도 보도되어 파리의 새 명소로 명성을 얻어가고 있다.화가 로트렉이 지금도 피갈에 있다면 틀림없이 신부복을 입은 웨이터의 모습도 그렸을 것이다.<파리=박강문특파원>
1992-04-13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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