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세한 프란체스카여사의 생애/오태생… 34년 이 대통령과 결혼/70년 망명청산,이화장서 여생/항시 “한국을 사랑”… 영욕의 세월 마감
92세로 19일 타계한 고 프란체스카여사는 문자그대로 파란의 일생을 보냈다.초대 이승만대통령부인으로 한때 영화를 누리기도 했으나 4·19혁명에 의해 고인은 대한민국의 이 대통령이 하야,하와이로 망명하면서 영욕의 생활을 해야했다.
고인은 지난65년 7월18일 이 대통령이 별세한 뒤에 자신의 고국인 오스트리아에서 살다 지난 70년 한국에 돌아와 이화장에서 먼저 세상을 떠난 남편을 그리며 손자들과 평범한 시민으로 생활해왔다.
「한국을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해오곤 한 고인은 1900년6월15일 오스트리아의 인서스돌프에서 철물상과 소다수공장을 경영하는 루돌프 도너씨의 셋째딸로 태어났다.
1933년2월 33살의 아름다운 미혼여성인 프란체스카 도너양은 제네바의 호텔 드 뤼시에서 이승만박사와 첫 대면을 했다.
이승만박사는 하와이와 워싱턴·유럽을 오가며 「기약없는 독립운동」을 하고 있던 58세의 망명객이었다.
이 박사는 국제연맹에 「만주의 한국인들의 중립국민대우」를 요구하기 위해 제네바에 체류하고 있었고 그녀는 어머니와 함께 관광여행중이었다.
이것이 인연이 되어 이듬해인 1934년 10월 뉴욕에서 이박사와 결혼을 한 프란체스카여사는 12년동안 가난한 망명정치인의 아내로서 내조하다 광복후 귀국,48년 이박사가 초대대통령이 되자 「퍼스트 레이디」가 됐다.
「까다로운 서양부인」「벽안의 경무대 여주인」등의 별칭이 말해주듯 여사의 인생역정은 우리 현대사의 격랑과 맞물려왔다.
고인은 60년 4·19혁명으로 하야한 이박사와 함께 그해 5월29일 하와이로 망명해야 했고 이박사가 하와이에서 별세한 65년 7월18일까지 병상의 이박사를 극진히 간호했다.
이박사가 별세한 뒤에도 고인은 한국에 돌아오지 못하고 모국인 오스트리아로 돌아가 생활을 해야했으며 지난 70년 박정희대통령의 주선으로 귀국,양자 이인수씨(61)내외,그리고 손자들과 함께 이화장에서 살아왔다.
이박사의 유품정리와 손자들을 돌보는 평범한 노년을 보낸 프란체스카여사는 성경읽기 등으로 소일했다.
평소에도 주위사람들에게 『힘들고 슬플 때가 많았지만 이박사는 가슴속의 반려자로 살아 있다』고 할 정도로 이박사를 잊지 못했다.
92세로 19일 타계한 고 프란체스카여사는 문자그대로 파란의 일생을 보냈다.초대 이승만대통령부인으로 한때 영화를 누리기도 했으나 4·19혁명에 의해 고인은 대한민국의 이 대통령이 하야,하와이로 망명하면서 영욕의 생활을 해야했다.
고인은 지난65년 7월18일 이 대통령이 별세한 뒤에 자신의 고국인 오스트리아에서 살다 지난 70년 한국에 돌아와 이화장에서 먼저 세상을 떠난 남편을 그리며 손자들과 평범한 시민으로 생활해왔다.
「한국을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해오곤 한 고인은 1900년6월15일 오스트리아의 인서스돌프에서 철물상과 소다수공장을 경영하는 루돌프 도너씨의 셋째딸로 태어났다.
1933년2월 33살의 아름다운 미혼여성인 프란체스카 도너양은 제네바의 호텔 드 뤼시에서 이승만박사와 첫 대면을 했다.
이승만박사는 하와이와 워싱턴·유럽을 오가며 「기약없는 독립운동」을 하고 있던 58세의 망명객이었다.
이 박사는 국제연맹에 「만주의 한국인들의 중립국민대우」를 요구하기 위해 제네바에 체류하고 있었고 그녀는 어머니와 함께 관광여행중이었다.
이것이 인연이 되어 이듬해인 1934년 10월 뉴욕에서 이박사와 결혼을 한 프란체스카여사는 12년동안 가난한 망명정치인의 아내로서 내조하다 광복후 귀국,48년 이박사가 초대대통령이 되자 「퍼스트 레이디」가 됐다.
「까다로운 서양부인」「벽안의 경무대 여주인」등의 별칭이 말해주듯 여사의 인생역정은 우리 현대사의 격랑과 맞물려왔다.
고인은 60년 4·19혁명으로 하야한 이박사와 함께 그해 5월29일 하와이로 망명해야 했고 이박사가 하와이에서 별세한 65년 7월18일까지 병상의 이박사를 극진히 간호했다.
이박사가 별세한 뒤에도 고인은 한국에 돌아오지 못하고 모국인 오스트리아로 돌아가 생활을 해야했으며 지난 70년 박정희대통령의 주선으로 귀국,양자 이인수씨(61)내외,그리고 손자들과 함께 이화장에서 살아왔다.
이박사의 유품정리와 손자들을 돌보는 평범한 노년을 보낸 프란체스카여사는 성경읽기 등으로 소일했다.
평소에도 주위사람들에게 『힘들고 슬플 때가 많았지만 이박사는 가슴속의 반려자로 살아 있다』고 할 정도로 이박사를 잊지 못했다.
1992-03-19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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