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극」의 책임,잡지가 져야(사설)

「복수극」의 책임,잡지가 져야(사설)

입력 1991-12-10 00:00
수정 1991-12-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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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에이즈 복수극」파문이 아직도 들끓고 있다.지금까지의 경위로만 보아도 이 소동은 무분별한 상업주의의 잡지매체가 벌인 어처구니없는 조작극의 결과인 것 같다.질낮은 「자유기고가」의 무책임한 상상력과,선정성을 상품으로 한몫 보려던 신생 여성지가 합작하여 「한탕」 그럴듯하게 해치울뻔한 파렴치한 전말인 것이다.

「일기」도 「진짜」가 아니고 사진도 진짜가 아니고 따라서 사실 자체가 전혀 진짜일 수가 없는데 피해자만은 「진짜」인 셈이 되어버렸다.

그로인해 한 작고한 정치인이 피할 수 없는 명예훼손을 당하고 있는 것 같다.「어떤병」에 걸렸다는 것이 불명예라는 뜻이 아니다.선정적 상상력을 극대화시켜 날조한 「가공의 사건」을 진짜처럼 보이게 하기 위한 수단으로 한 명성있던 인격체의 「사후」가 악용당했다는 점에 피해의 심각성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사건은 개인의 명예를 훼손한 정도의 피해에 그치지 않는다.거창한 구호를 내걸고 막대한 제작비를 들여가며 떵떵거리는 광고를 해대며 출발한 두껍고 무거운 여성잡지가 창간되자마자 두번째 호에,이런 기만술법의 총체같은 기사를 싣고 나온 그 대담한 「사술」에 아연함을 느낀다.세상을 얼마나 우습게 여겼으면 「어머니」이고 「주부」이고 전체국민의 반수인 여성을 상대로 이런 거짓 정보에 휘말리게 할 생각을 했는가 하는 점에 분노를 느끼게 된다.

「여성」을 상품으로 이용하기 위하여 갖가지 천박하고 퇴폐적 발상으로 「여성」을 타락시키고 저질화시키는 일부 「여성」지의 문제는 진작부터 지적되어오고 있었다.그런 풍조에 한술 더 얹어서 대담무쌍한 범죄수법을 부리며 「새출발」을 한 것이 이 여성지인 것같아 우울하고 불쾌한 것이다.

이 사건이 수사 대상이 되면서부터 「기자」와 「제보자」에 대한 숨바꼭질만을 뒤쫓는 것같은 인상을 받는 일은 유감스럽다.이 사건의 책임은 「잡지발행의 주체」에게로 돌아가야 한다.「소설쓰는 사람」이야 함부로 무슨 상상은 못하고 무슨 소설은 못쓰는가.그것을 받아서 확인작업도 없는채 활자화시킨 책임이 잡지에 있다.「기자」나 「제보자」로 책임을 축소시켜 버리는일은 용서하기 어렵다.실정법은 그렇게 끝날지 모르지만 잡지매체가 지닌 도의적 책임은 거기서 끝날 수가 없을 것이다.잡지 파는 재미에 여성을 능멸하고 불특정 다수의 세상을 가학하는 일을 서슴지 않는 이런 종류의 매체가 앞으로 또 어떤 해악을 범할지 끔찍스럽다.



또한 이 사건의 원천에는 에이즈라는 불치병에 대한 역학적 조사와 관리문제도 깃들여 있다.최근에도 여성 감염자의 상당수가 보건당국의 관리범위를 벗어나고 있다는 혐의도 노정되었다.이런 불실함이 갖가지 비이와 사회악의 직접 간접 원인이 된다는 사실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이 파문이 우리사회가 지닌 한 병소를 도려내는 큰 계기가 되도록 결말이 난다면 그나마 다행한 일일 것이다.
1991-12-10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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