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 한계 메우는 「제3의학의 길」 넓히다(이사람)

치료 한계 메우는 「제3의학의 길」 넓히다(이사람)

김규환 기자 기자
입력 1991-11-24 00:00
수정 1991-11-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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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재활부축 40년/오정희박사/의료인·가족·사회동참,「3박자 치료」 필요/“응달의학” 간주,전문과 설치 인색엔 “씁쓸”/“마비된 손으로 능숙한 타이핑”… 「재활의 힘」 실감/장애인 4백만에 전문가는 150명뿐… 지원책 절실

귀로 들을 수도,눈으로 볼 수도,말을 할 수도 없는 3중고를 겪은 헬런 켈러.그에게는 장애의 고통을 극복케 한 위대한 스승 설리번선생이 있었다.설리번선생은 고집쟁이요,야생마같은 헬런 켈러를 가르쳐 장애를 극복한 세기적 인물로 키웠다.

◎“한국의 설리번” 칭호

누구의 잘못인지도 모른채 1천5백명당 7명꼴로 뇌성마비아가 태어난다.어제까지 건강하던 사람들이 뜻밖의 사고로 하루아침에 장애자가 된다.최근 한 통계를 보면 90년 교통사고가 25만여건 발생해 사망1만2천여명에 32만명이 부상을 입었으며 그중10만여명이 영구장애인이 된 것으로 나타난다.

「장애자에게 물고기를 주기보다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 주라」.이 말은 어설픈 온정주의 보다는 장애를 인정하고 살아갈 길을 열어 주라는 의미이다.설리번선생처럼 장애자들을 위해 헌신해온 여의사가 있다.

이땅에서 재활의학을 시작,40여년간 지체장애 등 기능 잃은 이들에게 재활의 길을 열어준 오정희박사(66).

지난 9월 고대의대를 정년 퇴임한 그는 『정년은 오래 달려온 자동차의 타이어를 새로 바꾸어 끼우는 시간』이라며 훨씬 자유로워진 시간을 이용,뇌성마비 전국순회진료,평택 동방장애자재활원·서울시뇌성마비복지회관등을 방문,쉴 짬 없이 장애자 진료를 하고 있다.

◎물리치료사 육성도

『치료의학의 한계를 극복하고 의료인·가족·사회가 함께 참여하는 제3의 의학으로 재활의학은 중요합니다』「재활의학」이라는 용어를 제정,대학에 재활의학과를 처음 설립했을 뿐 아니라 물리치료사를 교육·양성했으며 대학원에서 전문인력을 기르기 시작한 그는 의사로서 뿐 아니라 모성으로써 이땅의 많은 장애인들을 감싸왔다.

『경성사범을 졸업하고 1년간 국민학교 교사생활을 하다 해방을 맞았습니다.일제의 선생노릇이 부끄러워 다시는 강단에 서지 않겠다고 다짐했을때 아버지가 의대 시험을 권했습니다』

전북 익산에서 가난한 농가의 딸로 태어난 그는 일찍이 개화한 부모의 의지로 의사가 됐고 6·25동란중 인턴생활을 한 미8군 제3야전병원에서 세계재활의학의 시조 러스크박사를 만났다.

◎러스크박사에 감명

러스크박사는 「손상된 부분의 치료 뿐 아니라 마음·신체·직업적 치료를 동시에 하는 전인적 치료가 필요하다」는 독특한 재활철학을 가진 휴머니티 넘치는 인물.그는 러스크박사의 인품과 학문하는 태도에 큰 감동을 받았고 그의 추천으로 뉴욕대학에서 재활의학을 공부할 수 있었다.그리고 전쟁의 상처로 얼룩진 52년부터 상이군인들의 재활을 돕는 부산정양원(후에 국립재활원으로 개편됨)에서 의사로 일했다.

『정양원 원장 목사님은 남자의사들이 몇명씩이나 도망치듯 그만 두는 것을 보고 여의사가 적격이라며 부탁했습니다』

정양원은 파편이 머리속에 박혀 있어 간질을 일으키는 사람,스스로 목숨을 끊기 위해 복어알을 먹는 사람등 세상을 비관하는 사람들로 차 있었다.머리가 아프다며 그럴듯한 이유를 꾸며대 마이신을 달라고 해서 얻어갖고 나가 술을 사 마시고 돌아오는등 감당하기 벅찬 일들이 수 없이 많았다.그러나 17년간 의무과장으로 많은 이들을 돌보아 사회로 복귀케 했다.69년 그의 모교인 우석의대 정형외과에서 교수로 초청했다.이때 대학으로 가 재활의학과를 만들어 연구하고 진료하고 사람을 키우는 일에 23년간이나 매달렸다.

『스무살 청년이 공사장에서 일하다가 흙더미에 깔려 목뼈가 부러지고 사지가 마비됐습니다.청년의 어머니는 그때만해도 아주 귀한 감귤을 가지째 잘라갖고 와 아들을 살려달라고 호소했습니다』

한번 다친 척수는 회복되기 어렵다.그가 할 수 있는 것은 그 상태로 불편 없이 살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6개월동안 치료를 받고 간신히 퇴원해 연락이 두절됐던 그 청년을 제주도 서귀포 뇌성마비순회 진료때 만나 행복하게 사는 것을 보았을 때 고마워 눈물을 흘렸다.

교통사고를 당해 중환자실에서 지내던 여섯살짜리 소년을 데려다가 호흡훈련과 발성법을 가르치고 휴지도 불고 풍선도 불게해 처음으로 「엄마」란 말을 하게 했을 때 함께 치료한 모든이가 탄성을 올렸다.또한 경련성 우측 반신마비로 서지도 앉지도 못하는 아이가 단족 보조기를 혼자 신고 걸을 수 있게 됐을때 재활의학을 한 감격을 안게됐다.

『8년전 전철안을 기어다니며 구걸하던 청년을 다리에 의족을 끼워 미군부대의 사환으로 취직시켰습니다.그러나 미군의 귀국으로 일을 잃고 자살한 경우도 있어 가슴을 치게 했습니다』

장애자에게 그가 하는 일은 삶의 의욕을 주고 불편 없이 생활하도록 돕는 것.사지 마비된 이들이 손을 써서 혼자 밥을 먹게하고 손가락에 깍지를 만들어 조각도 하고 타이프를 치게 만들어준다거나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이들이 팔굽에 힘을 줘 궁둥이를 들어 살이 썩지 않게 운동하고 감각이 없어도 소변과 대변을 처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등이다.그의 재활의학치료를 받고 나간 이들이 수천명을 넘는다.

◎전체의 9%가 장애

『전 인구의 약9%인 4백만명정도가 장애인입니다.그러나 현재 우리나라의 재활의학 전문가는 1백50명정도입니다.「예방의학」「치료의학」과 함께 중요한 「재활의학」을 경시해 재활의학과를 설치하지 않은 학교도 있습니다』

김기덕 서울시의원, 문화탐방 통한 소통과 치유… 그려가는 지역문화복지 미래

단순한 관광이나 일회성 이벤트를 넘어, 지역 주민들이 삶 속에서 문화를 체감하고 삶의 질을 높이는 ‘문화 복지’의 새 지평이 열리고 있다. 그 중심에는 지역사회의 문화적 저변을 확대하며 문화진흥의 개척자 역할을 자처해 온 김기덕 서울시의원의 묵직한 행보가 자리하고 있다. 사단법인 마포탐방문화진흥원이 주관하고 김 의원이 행사 단장을 맡아 지난 2008년부터 매년 이끈 낭만과 추억의 기차여행이 이번 15차에는 ‘영월·제천 기차여행 문화탐방’으로 회원 50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성황리에 개최됐다. 이번 탐방은 도심의 일상에서 벗어나 다채로운 역사와 문화를 직접 체감함으로써 구민들에게 정서적 풍요와 삶의 활력을 선사하고자 마련되었다. 전세 열차로 특별 운행된 새마을호 테마관광 열차 7량에 탑승해 당일 오전 7시 28분 서울역을 출발한 일행은, 9시 35분 제천역에 도착한 직후 대기 중이던 버스 12대에 나누어 탑승했다. 이후 제천 청풍문화유산단지, 영월 청령포와 장릉을 비롯해 영월서부시장 및 제천역전한마음시장 등 주요 명소들을 빠짐없이 순회하며 오후 6시 41분까지 오랜 역사적 숨결과 깊어가는 가을의 정취를 온몸으로 만끽했다. 특히 이번 행사는 단순한 행정적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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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악한 사회환경속에서 장애인의 문제는 우리 모두의 문제라고 보는 그는 장애자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해 주는 사회를 위해 더 많은 전문인들이 이 분야로 진출하기를 희망한다.<김규환기자>
1991-11-24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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