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4차남북고위급회담 취재팀의 일원으로 평양에 간 기자는 평양체류 3일째인 24일 저녁 인민문화궁전에서 베풀어진 만찬장에서 평양의 마지막 밤을 아쉬어하기 보다는 「할일」을 다하지 못한 죄책감에 가슴을 움츠리고 지정좌석에 앉았다.
합석한 북한측 인사들과 채 수인사도 나누기전에 건너편에 있던 한 40대중반의 인사는 『기자선생 평양에는 처음오셨디요? 평양에 와서 느낀 것을 두세가지만 말해보라우요』 그는 선뜻 입을 열지않는 기자에게 『세계에서 가장 잘살고 행복에 넘치고 활기에 찬 거리의 사람들을 보았고 아름다운 도시』라는 대답을 기대하는 눈빛같았다.
그러나 그렇게 대답할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이미 이 웅장한 회색빛의 도시모습을 먼저 다녀간 기자들의 보도를 통해 수십번 보아온 나로서는 다만 내눈으로 『아 그 사진의 그곳이 여기로구나』하고 확인하는 정도였기 때문이었다.
인적이 드문 천리마거리를 붉은 머플로를 목에 두른 인민학교어린이들이 군대식으로 열을 지어 팔을 앞뒤로 높이 흔들며 행진하는 모습이며 차도 별로없는 네거리에서 사방을 바삐 둘러보면서 교통정리를 하는 여자교통안내원의 모습도 전혀달라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번 4차 평양고위급회담 취재팀의 사진기자 이십여명은 그래도 이미 다녀간 기자들보다 새로운 평양,한꺼풀 탈바꿈한 평양,숨겨져 있던 미지의 장소를 카메라에 담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해야 했었다.
숙소인 백화원초대소와 회담장인 인민문화궁전·광복거리의 학생소년궁전등 4일간 기자들을 실은 버스가 이동할 때마다 사진기자들은 버스앞쪽에 몰려 서로 더좋은 장면,새로운 모습을 촬영하기 위해 눈을 부릅뜨고 마구 샤터를 눌러댔다.그러나 버스에서 막상 내릴때에는 어제와 똑같은 장소,똑같은 장면과 앵글을 찍고 말았구나 하며 탄식하는 사진기자들의 모습이 안타깝기만 했다.
평양의 제일백화점과 지하철등에서도 새로운 모습을 찍으려던 사진기자들의 기대는 『통일부터 해야지 사진만 찍으면 뭐해』하고 소리치는 북측 사람들의 외침속에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통일이 되려면 붉은글씨로 써진 구호가 없는 거리,친구들과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밝고 환한 어린이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는 그날이 하루빨리 와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자유의 집으로 들어섰다.
합석한 북한측 인사들과 채 수인사도 나누기전에 건너편에 있던 한 40대중반의 인사는 『기자선생 평양에는 처음오셨디요? 평양에 와서 느낀 것을 두세가지만 말해보라우요』 그는 선뜻 입을 열지않는 기자에게 『세계에서 가장 잘살고 행복에 넘치고 활기에 찬 거리의 사람들을 보았고 아름다운 도시』라는 대답을 기대하는 눈빛같았다.
그러나 그렇게 대답할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이미 이 웅장한 회색빛의 도시모습을 먼저 다녀간 기자들의 보도를 통해 수십번 보아온 나로서는 다만 내눈으로 『아 그 사진의 그곳이 여기로구나』하고 확인하는 정도였기 때문이었다.
인적이 드문 천리마거리를 붉은 머플로를 목에 두른 인민학교어린이들이 군대식으로 열을 지어 팔을 앞뒤로 높이 흔들며 행진하는 모습이며 차도 별로없는 네거리에서 사방을 바삐 둘러보면서 교통정리를 하는 여자교통안내원의 모습도 전혀달라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번 4차 평양고위급회담 취재팀의 사진기자 이십여명은 그래도 이미 다녀간 기자들보다 새로운 평양,한꺼풀 탈바꿈한 평양,숨겨져 있던 미지의 장소를 카메라에 담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해야 했었다.
숙소인 백화원초대소와 회담장인 인민문화궁전·광복거리의 학생소년궁전등 4일간 기자들을 실은 버스가 이동할 때마다 사진기자들은 버스앞쪽에 몰려 서로 더좋은 장면,새로운 모습을 촬영하기 위해 눈을 부릅뜨고 마구 샤터를 눌러댔다.그러나 버스에서 막상 내릴때에는 어제와 똑같은 장소,똑같은 장면과 앵글을 찍고 말았구나 하며 탄식하는 사진기자들의 모습이 안타깝기만 했다.
평양의 제일백화점과 지하철등에서도 새로운 모습을 찍으려던 사진기자들의 기대는 『통일부터 해야지 사진만 찍으면 뭐해』하고 소리치는 북측 사람들의 외침속에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통일이 되려면 붉은글씨로 써진 구호가 없는 거리,친구들과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밝고 환한 어린이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는 그날이 하루빨리 와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자유의 집으로 들어섰다.
1991-10-27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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