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치하서도 스카우트 정신 지켜”/조선척후단 창립단원… 남해지부 결성/「1일1선」 실천하며 독립운동도 참가
10일 세계잼버리 대회장을 찾은 한국최고령스카우트 윤문식옹(93·경남 남해군 남면 당황리)은 깊은 감회에 젖었다.
전세계에서 모인 청소년들의 구김살없는 얼굴과 훌륭한 시설을 둘러보며 지금으로부터 반세기가 훨씬 넘은 지난날 일제의 박해를 피해 스카우트활동을 하던 때의 모습이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쳤기 때문이리라.
부인 황다이 할머니(77)와 아들내외,손자들과 함께 대회장에 도착한 윤옹은 대회장입구에서부터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김석원 총재등 대회관계자들의 따뜻한 환영을 받은 윤옹은 『스카우트 정신은 예나 지금이나 조금도 다름없이 고귀한 것』이라는 말과 함께 작은 정성이라며 금일봉을 전달했다.
윤옹은 조선소년군과 함께 한국보이스카우트의 전신인 조선소년척후단 창립단원.
기독교 신자였던 윤옹은 22년 경남 마산 문장교회 주최의 여름성경학교 강습회 참가중에 정인과목사로부터 『궁극적으로 조국독립에 기여하자는 것이 조선소년척후단 운동의 취지』라는 말을 듣고 관심을 갖게 됐다.
서울로 올라가 YMCA에서 상세한 취지와 목적·조직·활동방법등을 터득한 윤옹은 남해로 내려와 동지들을 규합,지도자 8명과 대원 26명등 34명으로 조선소년척후단 남해지부를 결성했다.
신념만큼은 누구보다 투철했지만 막상 활동을 전개하려고 보니 어려움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교재라고는 윤옹이 중앙본부에서 어렵사리 구해온 「소년척후교본」한권이 전부였다.복장도 평상시의 옷 그대로 제각각이라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활동을 펼치기에는 너무 벅찼다.
황다이 할머니는 며칠을 꼬박 길쌈에 매달려 베를 짜고 물감을 들인뒤 손수 바느질을 해 단원들의 옷과 모자를 만들어내야 했다.
다음에는 일본경찰의 눈을 피하는 일이 뒤따랐다.
동네 주민들이 모아준 독립자금을 상해임시정부에서 파견된 밀사에게 전달하느라 수화(수화)까지 익혔고 때로는 일본경찰에 꼬리를 밟혀 몇달씩 산속에 숨어지내기도 했다.
남해지부의 특징은 단원 모두 10원씩의 비상금을 늘 지니고 있었다는 점.
당항교회 장로와 집사등 어른들이 논밭을 팔아 마련해 준 이 돈은 당시 시골은 물론 큰 도시에서도 아주 큰 액수로 끼니를 거르거나 병든 이들을 보면 그 자리에서 나누어 주는데 쓰여졌다.
윤옹은 손자뻘이 되는 이번 대회 참가대원들에게 『일일일선(일일일선)의 스카우트정신을 항상 마음에 간직해 훗날 세계평화에 앞장서는 지도자로 성장해줄 것』을 당부했다.<고성=특별취재반>
10일 세계잼버리 대회장을 찾은 한국최고령스카우트 윤문식옹(93·경남 남해군 남면 당황리)은 깊은 감회에 젖었다.
전세계에서 모인 청소년들의 구김살없는 얼굴과 훌륭한 시설을 둘러보며 지금으로부터 반세기가 훨씬 넘은 지난날 일제의 박해를 피해 스카우트활동을 하던 때의 모습이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쳤기 때문이리라.
부인 황다이 할머니(77)와 아들내외,손자들과 함께 대회장에 도착한 윤옹은 대회장입구에서부터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김석원 총재등 대회관계자들의 따뜻한 환영을 받은 윤옹은 『스카우트 정신은 예나 지금이나 조금도 다름없이 고귀한 것』이라는 말과 함께 작은 정성이라며 금일봉을 전달했다.
윤옹은 조선소년군과 함께 한국보이스카우트의 전신인 조선소년척후단 창립단원.
기독교 신자였던 윤옹은 22년 경남 마산 문장교회 주최의 여름성경학교 강습회 참가중에 정인과목사로부터 『궁극적으로 조국독립에 기여하자는 것이 조선소년척후단 운동의 취지』라는 말을 듣고 관심을 갖게 됐다.
서울로 올라가 YMCA에서 상세한 취지와 목적·조직·활동방법등을 터득한 윤옹은 남해로 내려와 동지들을 규합,지도자 8명과 대원 26명등 34명으로 조선소년척후단 남해지부를 결성했다.
신념만큼은 누구보다 투철했지만 막상 활동을 전개하려고 보니 어려움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교재라고는 윤옹이 중앙본부에서 어렵사리 구해온 「소년척후교본」한권이 전부였다.복장도 평상시의 옷 그대로 제각각이라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활동을 펼치기에는 너무 벅찼다.
황다이 할머니는 며칠을 꼬박 길쌈에 매달려 베를 짜고 물감을 들인뒤 손수 바느질을 해 단원들의 옷과 모자를 만들어내야 했다.
다음에는 일본경찰의 눈을 피하는 일이 뒤따랐다.
동네 주민들이 모아준 독립자금을 상해임시정부에서 파견된 밀사에게 전달하느라 수화(수화)까지 익혔고 때로는 일본경찰에 꼬리를 밟혀 몇달씩 산속에 숨어지내기도 했다.
남해지부의 특징은 단원 모두 10원씩의 비상금을 늘 지니고 있었다는 점.
당항교회 장로와 집사등 어른들이 논밭을 팔아 마련해 준 이 돈은 당시 시골은 물론 큰 도시에서도 아주 큰 액수로 끼니를 거르거나 병든 이들을 보면 그 자리에서 나누어 주는데 쓰여졌다.
윤옹은 손자뻘이 되는 이번 대회 참가대원들에게 『일일일선(일일일선)의 스카우트정신을 항상 마음에 간직해 훗날 세계평화에 앞장서는 지도자로 성장해줄 것』을 당부했다.<고성=특별취재반>
1991-08-12 19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thumbnail - “영유 안 보내면 후회?” 이지혜 한마디에 ‘발끈’…맞는 말 아닌가요 [불꽃육아]](https://img.seoul.co.kr/img/upload/2026/02/11/SSC_20260211155549_N2.jpg.web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