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제,장소가 문제라는데…(사설)

노제,장소가 문제라는데…(사설)

입력 1991-05-18 00:00
수정 1991-05-18 00:00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0
노제장소가 이번의 긴장시국에서 최대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강행을 주장하고 있는 재야 쪽 「범국민대책회의」에서는 시청 앞에서 서울역 앞으로 장소를 바꾸었고 치안당국은 이의 봉쇄를 밝히고 있어 또 한 번의 극한적인 격돌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이날은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집회와 함께 「5·18총파업」이 맞물려 긴장은 절정을 이루게 될 것이어서 더욱 그러하다. 우리가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게 되는 것은 고조된 시국긴장으로 인한 예측할 수 없는 불상사가 더 없이 걱정되기 때문이다.

우선 노제를 강행하려는 것이나 반대하는 양측에 커다란 잘못은 없다고 여긴다. 이번의 시위정국이 강군의 사망이 직접적인 원인이 됐다는 점에서 그 죽음의 의미를 보다 높이겠다는 대책회의나 유족측의 주장에도 일리가 있고 그렇다고 해서 반드시 시청 부근을 고집하지 말고 다른 장소를 권유하는 치안당국의 고충도 충분히 이해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보아온 대로 여기에서도 어떤 타협의 실마리는 찾을 수가 없고 자기 주장의 고수만이 계속되고 있음을 보게 된다.

그러나 장례부터 무사히 치러 강군을 편안히 잠들게 하고 또 장례와 투쟁을 별개의 것으로 분리하는 것에도 타당성이 있는 것이라면 과연 노제의 장소가 그토록 문제가 되는 것인가 하는 것에 생각이 미쳐야 할 것이다.

실제로 「장례를 빌미로 정치투쟁을 벌이려 한다」 「시신을 그렇게 해도 되는 것인가」하는 여론이 상당하다는 것을 감안해서라도 빠른 매듭이 바람직하다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다.

그것은 강군 부모의 얘기에서도 뜻을 헤아리게 된다. 강군의 아버지 강민조씨는 「아들의 시신을 놓고 정치적으로 이용할 생각은 없으며 하루라도 빨리 장례식을 치르겠다」는 말에서 보듯 장례가 더 이상 늦춰져서는 곤란하다. 또 어떤 이유에서든 20여 일이 지나도록 장례가 지연되고 있는 것에 대한 부모의 부담을 덜어주어야 한다는 점에서도 깊은 고려 있기를 당부하고 싶다.

그렇지 않고 노제강행을 둘러싸고 마찰을 빚음으로써 또다시 장례에 차질이 올 경우 어떻든 국민들의 비난의 소리를 관계당국이나 대책회의측에서는 피할수가 없게 될 것이다.

또 이날 화염병과 최루탄의 공방전 끝에 결국은 공권력에 밀려 다른 곳에서 장례가 치러지게 될 경우 또 한 번 시신이 거리에서 방향을 잃게 되고 그러는 과정에서 예상되는 충돌과 상호불신의 벽은 마찬가지로 바람직한 상황이 못 된다는 것을 깊이 생각해주기 바란다.

따라서 대책회의측과 관계당국은 이번에 강군의 장례를 매듭지어야 한다는 한 가지 이유를 위해 서로 대화를 갖고 양보를 통해 해결방안을 찾아줄 것을 간곡히 당부한다. 지금 이 시점에서 서로 대립하고 있는 양측이 이 문제 하나만이라도 대화로 합의점을 도출해낼 경우 그것만으로 여론의 박수를 받게 될 것이 틀림없다.

반드시 그럴 필요가 있느냐 하는 생각이 없지 않으나 여러 이유로 시청부근을 피해야 하는 것이라면 여의도로 옮겨도 강군의 죽음의 의미가 퇴색되는 것이 아니고 그것을 받아들이기가 어렵다면 또 다른 장소에서 엄숙히 노제가 이뤄지도록 하는 것도 한 방법으로 여긴다. 그것을 위한 깊은 대화를 거듭 촉구한다.
1991-05-18 2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광고삭제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