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색 짙은 과격시위 우려” 불허/정부/「민주열사」 부각시키려 계속 고집/대책회의
명지대학생 강경대군의 장례식이 다시 오는 18일로 잡혀짐에 따라 지난 14일 영결식까지 마치고도 「노제」문제로 운구행렬을 되돌려 실랑이를 벌여오던 강군 장례문제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장례를 주관하고 있는 재야 쪽 「대책회의」가 18일을 장례일로 정한 데는 대략 두어 가지 이유가 있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첫째는 유족측이 15일 『장례를 조속한 시일내에 치르고 싶다』는 의사를 언론에 밝힌 것이 「대책회의」측으로 하여금 다른 대안을 취할 수 없도록 했다는 것이다.
「대책회의」는 강군 사망 이후 줄곧 『유족의 의사를 우선적으로 존중한다』는 입장을 누누이 밝혀왔기 때문이다.
유족측에서 조속한 장례를 희망하는 이상 특별한 이유없이 장례를 더 늦춘다는 것은 명분이 서지 않는 일임은 물론이다.
두 번째로는 장례를 미룰수록 국민들의 여론이 「대책회의」측에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판단이 내려진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렇지 않아도 벌써부터 나오고 있는 『시신을 볼모로 정치투쟁을 벌이고 있다』는 비난을 면하기 위해서는 장례를 조속히 치르는 것이 상책이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지난 14일 운구행렬이 이대입구에서 경찰의 봉쇄에 막혀 연세대로 되돌아 올 때부터 「대책회의」측에선 여론의 지탄을 우려했었다. 당시 여론은 시청앞에서 가지려던 「노제」를 원천봉쇄한 정부측 처사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쪽도 일부 있었으나 시청앞에서 「노제」를 못하더라도 영결식까지 마친 마당에 운구행렬은 신촌로터리에서의 노제로 대신하고 장지로 내려갔어야 했다는 쪽이 훨씬 우세했기 때문이다.
「대책회의」측이 세운 18일의 장례절차 또한 「시청앞 노제」를 강행할 방침이어서 또 한차례 옥신각신하는 모습이 예상되고 있다.
경찰은 지금까지 『도심 한복판에서 장시간 대규모 군중이 참가하는 집회를 허용하게 되면 엄청난 교통혼잡을 유발하므로 일반시민에게 큰 불편을 주기 때문에 시청앞 노제는 허용할 수 없다』는 입장에 조금도 변화를 보이지 않고 있다.
반면 「대책회의」측에서는 억울한 죽음을 당한 강군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서는 보다 많은 사람들이 참여해 「노제」를 치러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시내 한복판에 자리잡은 시청앞 광장이 최적지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양측이 시청앞 광장을 놓고 벌이는 공방의 이면에는 이곳이 갖는 정치적 상징성이 개재돼 있음 또한 부인하기 어렵다.
시청앞 광장은 바로 수도 서울의 중심이자 정부의 앞마당이라는 점 때문이다. 이번 사건을 「강경진압에서 빚어진 우발적 사건」으로 보고 있는 정부로서는 시청앞 집회를 허용하는 것은 바로 『정부의 공안통치가 빚어낸 필연적 결과』라는 「대책회의」 쪽 주장을 스스로 인정하는 셈이 될 수도 있다.
김원환 서울시경국장이 16일 「대책회의」 인사들에게 노제의 장소를 여의도광장으로 해달라고 권유한 것도 이러한 속사정을 내비춘 것으로 유추되기도 한다.
그러나 「대책회의」측은 서울 시청이라는 정부의 대표적 상징적 청사 앞에서 행사를 치름으로써 강군의 죽음이 정부의 책임임을 만천하에 「공식확인」하겠다는 입장인 것 같다.「대책회의」측과 유족으로서는 「시청앞 노제」를 치르지 못하고 시신을 안장하게 되면 강군의 넋을 위로하기 어려울 뿐더러 이른바 「민주열사」로서의 자리매김에도 문제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이들에게도 고충이 없는 것은 아니다.
18일의 두 번째 장례행사마저 안장으로 끝나지 않을 경우 국민들로부터 「시투」를 벌이고 있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18일에도 경찰이 시청 앞으로의 진출을 다시 봉쇄할 경우 「여의도 노제」로 바꾸어질 가능성이 높다할 것이다.<진경호 기자>
명지대학생 강경대군의 장례식이 다시 오는 18일로 잡혀짐에 따라 지난 14일 영결식까지 마치고도 「노제」문제로 운구행렬을 되돌려 실랑이를 벌여오던 강군 장례문제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장례를 주관하고 있는 재야 쪽 「대책회의」가 18일을 장례일로 정한 데는 대략 두어 가지 이유가 있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첫째는 유족측이 15일 『장례를 조속한 시일내에 치르고 싶다』는 의사를 언론에 밝힌 것이 「대책회의」측으로 하여금 다른 대안을 취할 수 없도록 했다는 것이다.
「대책회의」는 강군 사망 이후 줄곧 『유족의 의사를 우선적으로 존중한다』는 입장을 누누이 밝혀왔기 때문이다.
유족측에서 조속한 장례를 희망하는 이상 특별한 이유없이 장례를 더 늦춘다는 것은 명분이 서지 않는 일임은 물론이다.
두 번째로는 장례를 미룰수록 국민들의 여론이 「대책회의」측에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판단이 내려진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렇지 않아도 벌써부터 나오고 있는 『시신을 볼모로 정치투쟁을 벌이고 있다』는 비난을 면하기 위해서는 장례를 조속히 치르는 것이 상책이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지난 14일 운구행렬이 이대입구에서 경찰의 봉쇄에 막혀 연세대로 되돌아 올 때부터 「대책회의」측에선 여론의 지탄을 우려했었다. 당시 여론은 시청앞에서 가지려던 「노제」를 원천봉쇄한 정부측 처사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쪽도 일부 있었으나 시청앞에서 「노제」를 못하더라도 영결식까지 마친 마당에 운구행렬은 신촌로터리에서의 노제로 대신하고 장지로 내려갔어야 했다는 쪽이 훨씬 우세했기 때문이다.
「대책회의」측이 세운 18일의 장례절차 또한 「시청앞 노제」를 강행할 방침이어서 또 한차례 옥신각신하는 모습이 예상되고 있다.
경찰은 지금까지 『도심 한복판에서 장시간 대규모 군중이 참가하는 집회를 허용하게 되면 엄청난 교통혼잡을 유발하므로 일반시민에게 큰 불편을 주기 때문에 시청앞 노제는 허용할 수 없다』는 입장에 조금도 변화를 보이지 않고 있다.
반면 「대책회의」측에서는 억울한 죽음을 당한 강군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서는 보다 많은 사람들이 참여해 「노제」를 치러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시내 한복판에 자리잡은 시청앞 광장이 최적지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양측이 시청앞 광장을 놓고 벌이는 공방의 이면에는 이곳이 갖는 정치적 상징성이 개재돼 있음 또한 부인하기 어렵다.
시청앞 광장은 바로 수도 서울의 중심이자 정부의 앞마당이라는 점 때문이다. 이번 사건을 「강경진압에서 빚어진 우발적 사건」으로 보고 있는 정부로서는 시청앞 집회를 허용하는 것은 바로 『정부의 공안통치가 빚어낸 필연적 결과』라는 「대책회의」 쪽 주장을 스스로 인정하는 셈이 될 수도 있다.
김원환 서울시경국장이 16일 「대책회의」 인사들에게 노제의 장소를 여의도광장으로 해달라고 권유한 것도 이러한 속사정을 내비춘 것으로 유추되기도 한다.
그러나 「대책회의」측은 서울 시청이라는 정부의 대표적 상징적 청사 앞에서 행사를 치름으로써 강군의 죽음이 정부의 책임임을 만천하에 「공식확인」하겠다는 입장인 것 같다.「대책회의」측과 유족으로서는 「시청앞 노제」를 치르지 못하고 시신을 안장하게 되면 강군의 넋을 위로하기 어려울 뿐더러 이른바 「민주열사」로서의 자리매김에도 문제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이들에게도 고충이 없는 것은 아니다.
18일의 두 번째 장례행사마저 안장으로 끝나지 않을 경우 국민들로부터 「시투」를 벌이고 있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18일에도 경찰이 시청 앞으로의 진출을 다시 봉쇄할 경우 「여의도 노제」로 바꾸어질 가능성이 높다할 것이다.<진경호 기자>
1991-05-17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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