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팍스 아메리카나」의 환상/임춘웅 북한부장(데스크시각)

「팍스 아메리카나」의 환상/임춘웅 북한부장(데스크시각)

임춘웅 기자 기자
입력 1991-04-03 00:00
수정 1991-04-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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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프전쟁이 미국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나면서 미국이 온통 들떠 있는가 하면 「미국 주도하의 세계질서」라는 하나의 인식이 자연스럽게 세계에 보편화되고 있다.

걸프전은 확실히 이 같은 효과를 불러오기에 충분한 몇 가지 요소를 갖추고 있었다. 걸프전은 TV화면을 통해 실제 전장의 모습을 모두가 함께 지켜볼 수 있었던 최초의 전쟁이었다. 전 인류는 생중계된 전쟁 상황에서 미국의 군사력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실감할 수 있었다.

○이라크는 미 적수 못 돼

그리고 이번 전쟁은 동구의 와해와 함께 소련이 주저앉고 만 상황에서 앞으로의 세계질서가 어떻게 형성될지 아무도 해답을 주지 못하고 있는 때에 터졌다. 걸프전은 미국만이 여전히 강자라는 인상을 극적으로 남기기에 충분했다.

지금 미국에서는 팍스 아메리카나 논쟁이 한창이다. 워싱턴 포스트지의 칼럼니스트 찰스 크라우트해머 같은 사람은 미국이 세계를 지배하는 「일극체제시대」를 당당한 목소리고 예고하고 있다. 그는 미국이 다음시대를 일방적으로 리드 하기엔 「필요하고도 충분한조건」을 다 갖추었다고 볼 수 없다는 회의론자들에 대해 『무엇이 두려운가 분명히 일극체제인 세계에서 그것을 즐기지 않을 이유가 무엇인가』고 반문하고 있다.

걸프전은 강대국이 방대한 군사력유지와 그 군사력을 통한 세계문제에의 꾸준한 개입으로 종국에 가서는 몰락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는 예일대 폴 케네디 교수의 「강대국의 흥망」이 미국내외에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던 때에 있었다는 점에서도 그 승리는 더욱 극적인 효과를 냈다고 볼 수 있다. 미국은 바로 그 방대한 군사력과 직접적인 군사개입을 통해 미국의 쇠퇴 아닌 미국의 승리를 이끌어 낸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미국의 환호와 미국민의 도취에는 몇 가지 의문이 남아 있다. 무엇보다도 이라크란 나라가 과연 미국이 군사적 적수인가 하는 점이다. 이라크가 이란과 10년 전쟁을 성공적으로 해냈다고 하나 그때의 상대는 미국이 아닌 이란이었다. 이란은 한때 미국의 최신병기로 무장했던 중동의 군사강국이었으나 회교혁명을 거치면서 미국과의 외교단절로 미국의 지원이 중단돼 미국의 병기들은 거의 쓸모가 없이된 상태에서 이라크와 전쟁을 해야 했다. 반면 이라크는 회교혁명을 두려워한 거의 모든 중동국가와 세계의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걸프전 당시 이라크는 70년대의 소련제 낡은 무기로 무장돼 있었고 그나마 소련의 군수보급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다시 말하면 이라크는 호랑이가 아니라 고양이였던 것이다. 거대한 미국이 한 마리의 고양이를 잡아 놓고 흥분하는 것은 아무래도 격에 맞지 않다.

둘째로 미국은 이번 전쟁에서 전 세계적인 지지를 받을 수 있었다. 쿠바정도를 제외하며 모든 나라가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을 응징하고 나섰다. 사담 후세인도 명백한 침략자였고 독재자였기 때문이다. 일사불란했던 유엔의 8개 결의가 보여주듯 세계가 유엔의 이름 아래 대후세인 전열에 섰던 것이다.

○걸프전,전세계의 승리

이런 상황은 석유자원의 공동확보라는 보다 냉엄한 국제적 이해관계가 작용했음은 물론이지만 미국은 이번 전쟁에서 완벽한 도덕적 기반을 확보하고 있었다. 침략자에 대한 응징,독재자에의 견제라는 데 세계여론의 일치된 지원이 있었다.

그러나 미국이 앞으로 개입하게 될지 모를 또 다른 분쟁에서도 이번과 같은 국제적 지원을 받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이 점에 관해서는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도 『걸프전에서 범세계적인 반이라크연합전선이 형성된 것은 미래에는 되풀이 될 수 없는 상황들이 결합돼서 이루어진 우연일 뿐』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셋째,걸프전은 전비를 낸 나라와 전쟁을 직접 한 나라가 서로 다른 독특한 전쟁이다.

전비와 전투가 분리된 전쟁은 역사상 유례가 없는 일이다. 남의 돈을 빌려 이긴 전쟁의 승리를 어떻게 평가해야 되는가.

현대전을 과학전이라고 한다. 과학이 현대전에서 얼마나 무서운 위력을 발휘하는가는 이번 전쟁을 지켜본 모든 사람이 절감했을 것이다. 외신들은 미국이 이번에 사용한 참단병기의 극히 예민한 부분에 일본제 부품이 상당부분 사용된 것으로 전하고 있다. 걸프전은 그런 뜻에서 미국의 승리라기보다 세계의 승리란 표현이 보다 더 적절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세계 최강의 국가라는 사실을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 같다. 미국은 군사적으로 초 강대국일 뿐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여전히 강대국이다. 세계 최대의 채무국이지만 미국의 경제는 아직도 어느 나라보다 막강한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많은 학자들은 미국이 금세기 뿐 아니라 21세기에도 역시 가장 강력한 국가로 계속 남아 있으리라는 전망를 하고 있다. 미국의 힘은 경쟁예상국이라 할 수 있는 일본 독일 소련 중국 등의 보다 많은 상대적 약점 때문에 여전히 강할 수 있다.

○다원화는 역사적 추세

그러나 팍스 아메리카나에의 미련은 다분히 과장된 환상이다. 미국의 힘이 절정에 있었던 20세기에도 미국이 세계를 일방적으로 지배한 일이 없다. 역사는 이미 하나의 절대자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힘은 분산되고 가치는 다원화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은 미국이 걸프전의 자기도취에서 깨어나 베트남에서의 패배를 다시 한 번 되새길 때다. 자기의 한게를 스스로 아는 강자만이 참으로 강할 수 있다.
1991-04-03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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