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년에 IPU가 평양에서 열리면 그 때에는 『서울에서 판문점을 통해 평양으로 들어가자』는 결의를 한 그룹이 생겼다. 북한이 91년 IPU총회를 평양에서 열겠다고 신청한 것에 대해 IPU의 서유럽국가 그룹인 「12플러스」 소속의원들이 그런 의결을 했다는 것이다. 마치 『더 늦기 전에 역사적 현장을 통과해 보자』는 관광 호기심의 발동처럼도 보인다. ◆아마 그들에게는 판문점이 「체크포인트 찰리」쯤에 견주어지는 모양이다. 그렇다고 『남의 심각한 비극의 현장을 호기심 차원으로 끌어내리고 있다』고 나무랄 수도 없는 일이다. 그렇게 보일 만한 조건은 충분히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 「12플러스」 그룹이 한 것과 같은 생각을 지닌 사람들은 좀더 생겨날 것이다. ◆기회 있을 때마다 순발력 있게 판문점을 「선전」해 온 솜씨는 북한측이 한걸음 앞섰었다. 최근만 해도 북한에서는 『남북의 자유왕래를 가로막고 있는 콘크리트 장벽을 제거하자』는 엉뚱한 소리를 내밀어 남쪽의 뒤통수를 쳤다. 언제나 그렇듯이 기막힌 선전술이었다. 다음으로 지난 7월에는 『남북한의 자유왕래를 보장하기 위해 판문점의 북측지역을 개방하겠다』고 선언했다. 판문점을 잘 모르는 밖의 시각으로 보면 이 역시 그럴 듯해 보이는 「안타」다. ◆그러나 일부 IPU 소속의 그룹이 한 것처럼 국제사회인들이 그들 수준의 호기심으로 판문점통과에 흥미를 보이는 일이 늘어나면 낭패스런 일이 북측에 생길 것이다. 있지도 않은 콘크리트장벽의 정체가 밝혀질 것이고,북측 판문점의 개방이라는 것이 북한 국토의 자유왕래와는 아무 관계도 없는 허구라는 것도 드러날 것이다. ◆선전하기에 재미를 들였다가 감당하기 난처한 사태가 생기는 것이나 아닌지 모르겠다. 똑같이 진달래꽃 조화가지를 들고 통일을 외치게 하는 「동원된 군중」이 판문점에서 축구팀을 환송하는 모습을 보면서 서글프고 안쓰런 생각이 북받쳐 올랐다. 이런 모양을 보면서 공허한 수사를 나열하는 일도 이제는 차츰 쑥스런 느낌이 든다.
1990-10-23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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