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탈」을 쓴 유괴범/김동준 제2사회부기자(현장)

「인간의 탈」을 쓴 유괴범/김동준 제2사회부기자(현장)

김동준 기자 기자
입력 1990-09-11 00:00
수정 1990-09-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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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상오11시쯤 경기도 권선구 세류2동 주택가변 한적한 도로.

아침부터 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줄기차게 내리는 가운데 이 동네 이상길씨(31ㆍ회사원)의 둘째아들 완희군(5)을 유괴ㆍ살해한 유괴범들에 대한 현장검증이 실시되고 있었다.

전기철씨(25ㆍ전과4범) 등 3명의 범인이 태연하게 범행을 재연하는 동안 이군의 아버지 이씨와 어머니 김홍숙씨(29)는 쏟아지는 비를 그대로 맞으며 넋을 잃고 오열했다. 우산을 받쳐들고 나온 5백여명의 주민들은 『저놈을 죽이라』며 큰 소리로 외쳐댔다. 물욕에 눈먼 인면수심의 범인들에 대한 질타였다.

이번 사건은 최근 유괴 살해된 서울의 김희성군(9ㆍ청담국교3년) 사건과 똑같이 어린이를 유괴한 직후 살해하고 돈을 요구했다는 점에서 종래의 유괴사건에 비해 인명경시풍조가 한층 도를 더한 느낌마저 들게하고 있다.

경찰조사결과 이번 사건의 주범인 전은 후배인 문경한씨(22ㆍ무직)와 범행을 모의하는 과정에서 『어린애를 살려보내면 언젠가는 꼬리가 잡힌다』며 『먼저 죽이고 시작하자』고 제의,끝내는 자신이 완희군의 목을 졸라 숨지게 한 것으로 드러나 범인의 잔인성을 엿보게 했다.

더구나 전은 차트렁크에서 완희군이 눈을 크게 뜨고 「살려달라」고 애원하자 다시 5분동안이나 목을 졸라 살해하는 인간성 말살의 잔학성을 보였다.

주범 전은 처 김은실씨(20)와 함께 카페를 운영하다 망하게 되자 『야채장사라도 하여 먹고살자』는 애원을 뿌리치고 부인마저 이번 사건에 동업자로 끌어들였다.

전씨는 경찰에서 문씨와 범행을 모의하던중 처 김씨가 이를 알게되자 『신고할 것이 두려워 범행에 적극 가담토록 했다』고 말했다.

완희군의 아버지 이씨는 평범한 회사원으로 현재 살고 있는 다가구주택 2층을 2천만원에 전세내 살고 있으며 이것도 지난 7월초 두아들을 위해 전세 7백만원의 단칸방에서 빚을 얻어 옮겨온 것이었다.

이군의 어머니 김씨는 『남에게 원한을 산적도 없고 그저 두아들을 잘 키우기 위해 쪼들리는 살림에 학원까지 보내며 노력했는데 이같이 기막힌 일을 당할 줄은 몰랐다』며 넋을 놓고 통곡했다.

범인 전의 오른쪽 어깨에는 「삶」이라는 큰 글자가 문신돼 있었다. 그가 생각하고 있는 삶은 도대체 어떠한 것일까.
1990-09-11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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