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독과 「남북한」/송복 연세대교수(세평)

통독과 「남북한」/송복 연세대교수(세평)

송복 기자 기자
입력 1990-07-09 00:00
수정 1990-07-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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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독을 보는 우리들의 심경은 어둡고 착잡하다. 독일은 어찌해서 통일하게 됐는가. 우리는 어떻게 하여 유일의 분단국가로 여전히 남아있게 됐는가.

이 지구상에서 통일국가로서는 역사가 가장 오래된 나라,명실공히 국가의 형태를 갖추고서 통일된 모습으로 단절없이 가장 오래 지속돼 온 나라는 중국도 인도도 아니고 서구의 그 어느 나라도 아닌 바로 우리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오늘날 세계 모든 나라들이 통일된 국가양태를 보이고 있는데 유독 우리만이 양쪽으로 갈라져서 아직도 죽이네 살리네 하고 싸우고 있는가.

○쉽게 합칠 수 있었던 이유

독일이 통일국가로서의 모습을 보인 것은 불과 1백20년전의 일이다. 그 이전에는 50개 공국으로 혹은 80개 공국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그러던 것이 보­오전쟁과 보­불전쟁의 승리로 1871년 처음으로 근대국가로 통일이 됐고 이 통일은 2차대전이 끝나기까지 근근 70수년을 유지해오다 종전이후 또 분단됐다. 이처럼 통일보다는 분단이 역사의 주경향이 돼있던 독일이 분단보다는 통일이 역사의 주경향이 돼온우리보다 쉽게 합쳐질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여기에는 3개의 깊이 생각해볼 교훈이 있다.

첫째로 그들은 서로 전쟁하지 않았다. 적대적으로 서로 대치하고는 있었다해도 무력으로 동족을 죽이는 살상전을 벌이지는 않았다. 그들은 남이 억지로 씌워놓은 이념때문에 형제를 죽이지 않았고 이웃을 살육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은 불공대천지원수가 될 이유가 없었고 감정의 앙금이 끝까지 용해되지 않고 남아서 서로를 비뚤어지게 볼 이유가 없었다. 언제든 만나면 같은 민족으로 미소지을 수 있었고,환담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2+4」라는 신조어가 말하듯이 4대 강대국에 의해 나누어지기는 했지만 그들은 같은 민족임을 서로의 내부에 굳게 다짐하고 있었다. 외부적 요인에다 내부적 요인을 종속시키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은 패전으로 나누어져도,그리고 나치즘이라는 역사적 유죄를 같이 짊어지고 있었어도 역사는 역사,현재는 현재로 분리해 보았다.

이 서로 만날 수 있는 장이 언제나 열려져 있었다는 것,외부에 내부를 독립시키고 있었다는것,그리고 과거와 현재를 분리해 인식하고 있었다는 것,이것이 수백년간의 분열과 짧은 통일기간과 그리고 그후의 계속된 분단의 역사를 다시 통일케하는 첫째의 요인이며 교훈이 된다.

둘째로 그들은 비록 통일의 역사는 짧았다 해도 그리고 그 통일과 맞먹을 만큼 통일후의 분단의 역사가 거의 반세기에 이르도록 길었다해도,그들간에는 서로 합칠 수 있는 근대화된 체제의 공유경험을 갖고 있었다. 그것이 바로 나치스 이전의 바이마르공화국 체제이고,그리고 현재 그들이 돌아가는 체제역시 이 역사적 공유경험의 체제에서 일보도 달라짐이 없는 자유·개방·경쟁의 민주국의 체제이다. 그들은 비록 세대를 뛰어넘는 시간적 갭을 가지고 있다해도 이 경험을 공유한 사람들이 여전히 다수로 남아 있고,그리고 여전히 사회의 중심적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동일체제 경험여부 중요

통일은 같은 경험을 공유한 체제로 양쪽이 서로 돌아가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같은 체제를 경험해 보았느냐,보지 않았느냐가 통일의 조건이며 기준이 된다. 만일 전혀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체제로 그 어느 한편이든지 돌아가게 된다면,그들 사이에는 동질성이 전혀 있을 수 없고 그들사이에 이제부터 전개되는 관계는 오직 서로 적응하지 않으면 안되는 이질성의 관계만이 남는다. 이 경우,이루어지는 것은 「통일」이 아니라 실제적으로는 「통합」이 된다. 그런데 독일은 쉽사리 동질성을 회복할 수 있는 경험공유체제를 가지고 있었고,따라서 정신적으로,심리적으로 민족공동체를 재창출해 낼 수 있는 기틀을 사실상 확보하고 있었다.

셋째로 공산주의 경제의 비효율성 내지 비생산성이다. 출발할 때부터 동독은 공산권사회에선 가장 산업화된 나라이고 그리고 60년대와 7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세계 10대 공업국의 하나가 돼 있었다. 그러나 70년대를 지나 80년대를 거치면서 정반대로 이 나라는 서구 그 어느 나라에 비해서도 가장 낙후한 후진국으로 전락했다. 특히 일상 생활용품에서도 전화 한대를 갖기 위해서도 10년을 기다려야 하는 나라가 됐다.

여기에 공산주의 이데올로기,공산주의 경제정책의 비역동성­정체성이 있다. 공산주의 국가에서 가장 발전할 수 있는 것­그 어느 의미에서나 유일하게 발전할 수 있는 것,그것은 군사산업이라 할 수 있다. 그 이유는 군사산업이 계획을 세우는 데는 가장 단순하고 가장 가지수가 적고 그리고 가장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군비이외의 생산품목은 그 어느 것 하나 계획부터가 너무 수가 많고 너무 유기적으로 복합화 되어 있다. 대표적으로 소련사회 하나만 보아도 이 한나라에서 해마다 세우지 않으면 안되는 생산품목은 2천4백만종이나 된다. 이 2천4백만종의 생산품목을 유기적으로 생산해 내는 데 세워야 하는 계획은 1백50억개가 넘는 것으로 산정되어 있다. 누가 어느 기관에서 이것을 완벽하게 계획해낼 수 있겠는가. 자유시장 경제에서라면 스스로 조정해서 생산될 것은 생산되고 문을 닫을 것은 문을 닫는다. 그러나 중앙집중화된 계획경제에선 이것은 아무리 계획하고 생산해 나가도 인위적으로 한계에 부딪치고 만다.

그래서 소련에선 1천6백만명이상의 노동력이 필요없는 자리,서로 중첩되어 있는 자리에 채워져 있는 것으로 보고되어 있다. 얼마나 많은 노동력이 비생산적으로 소모되고 있는 것인가. 그리고 전노동력의 15%인 1천8백만명이 경영관리직에 앉아서 방대한 운영기구를 맡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 조직,그 국가사회야말로 얼마나 역피라미드 현상을 초래하고 있는가. 공산주의 경제가 어느 나라나 하나도 예외없이 1970년대의 초중반에 들어서면서 정체해 버리는 것은 이 인위적 계획의 한계성을 극복할 수 없었다는 데 있다.

그것을 뚫고 극복하는 방법은 동독처럼 체제전환을 해서 통일의 길로 가든지,지난 2일 28차 공산당대회에서 한 고르바초프의 연설­「마르크스 엥겔스 레닌의 이념은 19세기의 자본주의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다. 세계는 엄청나게 변화했음에도 우리는 고전적 이데올로기에서 답을 구하고 있다」­에서처럼 페레스트로이카로 가든지,둘중 하나이다.

○“언제까지 분단국가로…”

그런데 우리는 지금 어떻게 돼 있는가. 40년전의 6·25는 「40년동안 여전히 살아 있는 전쟁」­계속 불구대천지 원수로 가는 전쟁으로 작용하고 있다. 거기에 우리는 역사적으로 경험을공유한 근대화된 체제라고는 아무것도 없다. 「남북」이 공유한 것은 전통사회 체제이든 아니면 일제식민지 체제 뿐이다. 긴 통일의 역사가 무색할 정도로,우리는 어떻게 합치든 「통일」 아닌 「통합」의 이질적 관계만이 전망되고 있다. 그리고 북쪽은 밖이야 어떻게 변하든 아랑곳 없다는 듯 페레스트로이카도 글라스노스트도 외면하고 있다. 우리는 언제까지 이렇게 분단국가로 남아 있을 것인가.
1990-07-09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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