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인 높이만큼의 시각차/박대출 사회부기자(현장)

크레인 높이만큼의 시각차/박대출 사회부기자(현장)

박대출 기자 기자
입력 1990-05-02 00:00
수정 1990-05-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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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수공급 놓고도 한동안 실랑이

『높은 곳에서 버티다 보니 대부분 심한 일교차로 감기 몸살에 시달리고 식수마저 변질돼 복통 설사를 앓고 있다. 물과 구급약을 보내달라』

30층짜리 건물높이의 초대형 크레인위에서 농성중인 1백20여명의 근로자들이 쪽지를 보내왔다.

근로자대표들은 회사측에 쪽지를 전달하고 식수와 구급약을 요구했다.

회사측은 그러나 『무슨 방법을 써서라도 농성을 조속히 풀게 해야 할 입장인데 오히려 그들에게 편의를 제공해 농성을 장기화시킬 수는 없지 않는냐』고 난색을 표했다.

한동안 밀고 당기기가 계속됐다.

마침내 양측이 조금씩 양보,우선 하루 먹을 양인 1백ℓ정도의 물을 보내주기로 타협이 이뤄졌다.

회사측은 물통에 물을 채워 크레인아래로 가져갔다.

그리고는 『내려와서 가져가라』고 했다.

그러나 농성근로자들은 그곳에 5∼6명의 경찰이 지켜보고 있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겨 『물통을 크레인 아래 놓아두고 모두 물러가라』고 요구,다시 실랑이가 벌어졌다.

『우리가 신변보장을 할테니 내려와 물을 갖고가라』는 회사측 설득도 막무가내였다.

『우리들 대부분이 탈진상태로 이성을 잃어가고 있다. 더이상 통제가 불가능한 상태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 알아서 하라』

농성근로자들은 크레인위에서 핸드마이크로 그렇게 외쳐댔다.

그것은 절규와도 같았고 위협처럼 들리기도 했다.

결국 줄다리기끝에 크레인위에서 밧줄을 내려보내 물통을 매달아 올리기로 절충이 이뤄졌다.

다섯개의 물통이 밧줄에 매달려 크레인위로 올라가는 모습은 참으로 아슬아슬해 보였다.

30일 하오 울산현대중공업에서 벌어진 이 시대의 비극적 해프닝이었다.

이날 크레인위에서 「최후의 항전」을 벌이는 농성근로자들과 땅위에서 우월한 위치에 있는 회사측이 「흔한 물」을 주고받는데 걸린 시간은 무려 26시간이었다.

하물며 1만8천여명의 이해가 걸린 현대중공업사태의 해결은 얼마나 오래 걸릴 것인지.<울산>
1990-05-02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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