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철학자이자 신학자로서 베를린대학 창립에도 공이 큰 슐라이어마허. 그에게 누군가가 물었다. 『선생님의 청강생은 어떤 부류 사람들입니까』 하고. 그의 대답 『학생과 젊은 여성과 군인이지요. 학생은 내가 시험위원이기 때문에 옵니다. 젊은 여성은 남학생 때문에,군인은 여성 때문에 오는 거겠지요』 ◆시덥잖은 물음에 대한 익살스런 대답 같기만 하다. 아니면 학자로서의 겸손이었을까.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학생은 내가 시험위원이기 때문에 온다』는 대목. 아닌 게 아니라 이런저런 국가고시의 경우 시험위원을 많이 안고 있는 대학의 학생이 유리한 것은 오늘의 우리나라라 해서 다를 게 없다. 평소의 강의 내용이 출제 경향으로 되겠기 때문이다. ◆그렇다 하여 출제 내용을 미리 밝힐 수는 없다. 더구나 어떤 약속을 해놓고 채점에 사정을 둘 수도 없다. 그것은 학자로서의 양식과 윤리의 문제. 법이 왈가왈부하기 이전의 기본자세여야 한다. 그 점에서 한의사 시험부정 혐의사건은 뒷맛을 개운찮게 한다. 소환된 채점 교수들이 채점 과정에서부정에 개입하지는 않았다는 것이 검찰 발표이기는 하다. 그러나 구속된 학생들이 교수한테 찾아가 봐달라고 부탁할 수 있었던 그동안의 정황등,의혹을 말끔히 지웠다고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잖아도 한의학은 양의학의 그늘에 가리워진다 싶은 것이 오늘의 현실. 이번 사건은 그런 한의학의 위신을 한번 더 떨어뜨렸다는 죄가 크다. 국가고시의 권위에도 먹칠을 했다. 89년말 현재 보사부에 등록된 한의사 수는 5천3백44명이라는 것인데,선의의 그들에게까지 누를 끼쳐버린 사건이라 할 수도 있다. 「이게 처음일까?」 하는 의구심을 불러일으킨 것이 아닌가. ◆앞으로 시험관리에 철저히 기해야 할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한의학계 자체의 자세.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을 수 있기를 바란다.
1990-02-02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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