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격차 시민특별위원회


포스트코로나 격차 없는 사회로 가는 선언문
‘격차가 재난이다.’
직면한 팬데믹은 우리가 방치한 기존의 격차가 소외된 이들에게 어떻게 더 큰 재난이 되는지 명확히 드러내고 있다. 우리 사회에선 ‘자기 인생은 자기가 책임진다’는 지구적 시장의 자기책임의 윤리 아래 승자독식의 원칙과 각자도생의 삶이 지배하고 있다. 이 가운데 뒤에 남겨지는 사람들을 위한 공적 보호망은 부재하거나 부실한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이 선언문을 마련한 우리 시민특별위원회는 더이상 격차가 재난이 되지 않는 사회를 위해 다음 사항을 국가와 사회에 제안한다.


첫째, 교육 격차를 해소하자.


열악한 가정 배경을 극복하고 양호한 학업성취에 도달한 학생들이 늘어나게 하려면 복지 확충을 통해 소득분배지표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 능력주의가 사회 전반을 지배하는 사회에서 정부가 재정을 투입해 교육 격차 해소에 본격적으로 나서게 되면 상당한 저항과 반발이 발생할 것으로 예견된다. 하지만 계층 간 교육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급속한 소득 양극화 때문에 자녀 교육에 투자할 여력을 완벽하게 상실한 저소득층이 예전의 교육열을 되살릴 수 있는 길을 열어야 한다.


둘째, 불안정한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하자.


팬데믹 아래 위기는 정규직보다는 비정규직에게, 공공부문이나 대기업 종사자보다는 민간부문 중소영세기업 종사자에게, 임금근로자보다는 특수고용직종사자·프리랜서·자영업자에게 집중됐으며, 이들은 사회보장제도에서도 배제돼 있었기에 일자리 위기는 곧바로 소득 위기로 전이됐다. 따라서 코로나 위기의 극복은 기존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의 개선을 동반해야 한다. 고용 형태, 기업 규모, 종사상 지위와 관계없이 ‘모든 일하는 사람’에게 최소한의 노동법과 사회보장법을 통한 보호가 이루어져야 한다. 누구나 노동에 필요한 역량을 개발하고 일하려 할 때 일할 수 있도록 정부가 보장해야 한다.


셋째, 돌봄을 공공화하자.


급격한 고령화, 1인가구의 증가, 더 나아가 팬데믹 상황은 돌봄의 중요성을 재차 부각시키고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돌봄은 지속적으로 가족의 역할, 여성의 역할로 치부돼 왔다. 더불어 사회서비스는 민간 중심으로 공급이 이루어지며 질적인 문제를 야기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돌봄 노동자에게 충분한 소득과 처우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이를 해결하는 길은 지역공동체와 밀착된 사회적 돌봄의 공공화이다.


넷째, 사각지대 없는 소득보장을 구현하자.


팬데믹 재난 속에서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문제는 소득 격차로, 돌봄의 가족화는 저소득층에 더 깊은 타격을 안겼다. 이런 상황에서 전 국민 고용보험, 기본소득, 기초자산 등 전통적 소득보장틀을 넘어서는 대안 논의가 활발해지는 상황은 고무적이다. 이 논의가 기존 사각지대를 넘어 진취적 시도로 발전하여 적절한 보장성을 구현하며 합리적 재정방안까지 지닌 사회적 합의안이 마련되기 바란다. 특히 촘촘한 소득보장을 위해 실시간 완전소득파악 구축에 적극 나서야 한다.


다섯째, 국가의 역할 확장 위해 튼튼한 재정을 마련하자.


팬데믹 같은 위기 시에는 국채 등 단기 대책에 의존하더라도 중장기적으로 세입 기반을 확충하는 종합계획이 요구된다. 재정지출 합리화 및 투명화, 과세 형평성 개선 등을 통해 시민의 조세 신뢰를 높이고 일부에 한정된 핀셋증세를 넘어 다수 시민이 사회연대를 위해 누진적으로 참여하는 종합증세 로드맵을 마련하자.

모든 위기는 ‘새로운 시작’을 품고 있다.
우리 동료 시민들이 각자도생의 원칙 대신, 남보다 탁월한 능력 대신 연대를 나눌 수 있는 ‘뉴노멀의 안전망’을 더불어 구축하자.
격차가 재난이다 시민특별위원회
  • 김만권 경희대학술연구교수 (대표 집필)
  • 김경근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
  • 남재욱 한국직업능력개발원 부연구위원
  • 문서희 청년유니온 기획팀장
  •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
  • (이상 가나다순)
#3.
증발하는 청년들
목숨.
국어사전에서는 ‘숨을 쉬며 살아 있는 힘’이라고 정의합니다.

코로나19가 휩쓸고 간 지난해, 살아 갈 힘을 잃은 청춘(靑春)들이 있습니다.
코로나로 초래된 경제 위기는 청년 누군가에게는 ‘코로나 감염’보다 더 위협적이었습니다.
고독사·살인 현장 등을 청소하는 전문업체 관계자는 “지난해 극단적 선택을 한 20·30 청년 건수가 2019년 대비 3배가량 늘었다”고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서울신문은 그들이 남긴 유품에 담긴 이야기를 통해 청년들의 짧았던 생을 추모했습니다.
유품1. 팔지 못한 연
- 자영업자 박주호(가명)씨 -
지난해 9월 인천시 한 빌라에서 숨진 채 발견된 30대 중반의 박주호(가명)씨. 12평 남짓한 그의 방에는 팔다 남은 독수리 연부터 솜사탕과 달고나를 만드는 기계가 놓여 있었습니다. 휴일마다 사람들을 찾아 나섰을 그의 푸드트럭도 집 근처 공터에 반듯하게 주차돼 있었습니다. 주호씨가 생전에 얼마나 치열하게 살았는지 보여 주는 흔적들입니다. 그의 형은 “주호가 안 해본 것이 없다. 결혼도 미루고 열심히 살던 녀석이…”라며 애통해했습니다.

우리의 일상과 사회적 관계를 잠식해 온 코로나 충격이 장기화되면서 주호씨와 같은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이 곳곳에서 절박한 생존 신호를 보내고 있습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7만 5000곳의 가게가 문을 닫았습니다. 누구보다 성실히 살았던 주호씨에게 조금 더 버틸 수 있는 누군가의 따뜻한 위로와 격려가 있었다면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요.
유품2. ‘꿈’을 담은 일기장
- 취업준비생 윤지수(가명)씨 -
‘부디 견디길….’
‘Are you happy’라고 쓰인 일기장 표지에 윤지수(가명·24)씨가 삶의 의지를 꾹꾹 눌러 쓴 표현입니다. 대학을 갓 졸업한 지수씨는 뉴스를 전하는 아나운서를 꿈꿨습니다. 그녀가 남긴 일기장에는 취준생의 간절함이 곳곳에 담겨 있었습니다. 평소 롤모델로 생각했던 유명 언론인을 만난 후 느꼈던 기쁨을 기록한 뒤엔 그게 ‘꿈’이었다며 허탈해했습니다. 책장에는 학교에서 받은 상장들이 보관돼 있었습니다.

지난해 청년 고용시장은 빙하기였다는 표현이 맞을 듯합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25~39세 인구 중 취업 경력이 전혀 없는 ‘취업 무경험자’ 규모는 32만 1654명으로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8년보다 1.5배 많습니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경제적 곤궁이 지수씨를 쇠약하게 만든 것일까요. 지난해 6월 짧은 생을 마친 그녀의 원룸에선 신경안정제가 발견됐습니다. ‘견딜 수 있다’고 ‘행복할 수 있다’고 스스로 다짐했던 지수씨였기에 더 안타깝습니다. 그녀가 이제는 평안하길 바랍니다.

유품3. 유일했던 책 한 권
- 일용직 노동자 김민준(가명)씨 -
지난해 6월 경기 화성시의 한 고시원에서 30대 초반 김민준(가명)씨가 발견됐습니다. 창문도 없는 3평 남짓한 방은 전등을 켜지 않으면 종일 어두컴컴합니다. 층마다 얇은 합판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7~8명이 살았지만 열흘 넘게 아무도 민준씨의 죽음을 알지 못했습니다. 이곳은 삶을 위한 공간이 아닌 그저 지친 몸을 뉠 ‘잠만 자는 공간’이었기 때문입니다. 냉장고 안에는 얼어붙은 김치뿐이고 열 벌이 채 되지 않는 옷가지가 유품의 전부일 정도로 생활이 곤궁했습니다.

그의 방에서 눈에 띈 건 한 권의 책이었습니다. ‘오피스텔’이라는 제목의 이 책은 창업한 회사를 다시 살려 재기에 성공하는 사업가의 야망과 로맨스를 담은 소설입니다. 민준씨는 고시원에서 오피스텔로의 탈출을 꿈꾸었거나 소설 주인공처럼 여러 난관을 극복하고 재기하는 성공의 삶을 상상했을지도 모릅니다. 민준씨의 희망과 달리 지난해 부동산 가격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습니다. 민준씨는 이제 다시는 책을 펼칠 수 없습니다.

유품4. 태그도 안 뗀 새 점퍼
- 유튜버 민재현(가명)씨 -
30대 초반의 민재현(가명)씨는 월세 한번 밀리지 않던 성실한 청년이었습니다. 그는 지난해 6월 어떤 연유에서인지 자신의 집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했습니다. 옷장에는 ‘태그’(tag)도 안 뗀 새 점퍼가 걸려 있었습니다. 방에는 유튜브 촬영을 위한 것으로 보이는 방송 장비들이 놓여 있었습니다. 재현씨의 유품을 정리한 업체 관계자는 “꾸미는 것을 좋아하는 친구였던 것 같다. 연예인 지망생이 아니었을까 추측해 본다”라고 말했습니다. 유튜버는 최근 새로운 직업으로 떠올랐지만 수입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습니다. 2019년 기준 상위 1%가 수억원을 벌 때 하위 33%는 100만원도 채 벌지 못했습니다.

태블릿PC에는 재현씨가 숨지기 직전 마지막으로 무언가를 적으려 한 흔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혈흔 때문에 망가진 태블릿PC는 폐기물 처리됐고, 재현씨가 세상에 남기고 싶은 말은 끝내 전해지지 못했습니다.

(* 유품정리·특수청소업체 크린키퍼스 이창호 대표, 박세환 이사와의 인터뷰를 통해 재구성했습니다.)
※ 자료 : 통계청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한 해 극단적인 선택으로 숨진 사람은 1만 2592명(잠정치)입니다. 코로나 사망자(지난해 말 기준 900명)보다 14배나 많습니다. 지난해 1~8월 극단적 선택을 시도한 사람은 1만 5090명에 이릅니다. 이 중 20대는 4213명으로 전년 같은 기간 대비 43% 증가해 전 연령층에서 가장 높은 증가율을 보였습니다. 30대는 2250명으로 전년 대비 13% 늘었습니다. 이는 지난해 7월 청년층의 체감 실업률인 ‘확장실업률’이 25.6%로 2015년 1월 관련 통계 작성 이래 최고치를 기록한 것과 무관치 않아 보입니다.
절망과 좌절 속에 갇힌 청년들이
밖으로 나올 수 있도록
지금 당장, 손을 잡아 줄 수 없을까요.

송수연 기자 songsy@seoul.co.kr
#4.
식당은 하나,
사라진 꿈은 다섯
코로나 사태 이전인 2019년 12월 펍 알렉스(가명)의 사장과 직원, 아르바이트생들이 함께 한 회식에서 즐겁게 웃고 있는 모습.
2019년 12월 31일. 홍대 상권 중심지인 ‘홍대 걷고 싶은 거리’에서 5년간 알렉스(가명)라는 펍(호프집)을 운영해 온 사장 최현우(34·가명)씨와 20대 직원 4명은 그날 가게를 마감하고 한 달치 매출액을 정산한 뒤 서로를 부둥켜안은 채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1억 15만 2000원’. 사장 최씨와 직원 4명이 똘똘 뭉쳐 99㎡(30평)가 채 되지 않는 매장에서 달성한 최고 매출액이었습니다.

최씨는 직원들에게 특별 보너스와 고급 갈비세트를 선물했습니다. 최씨는 “직원들이 ‘식당에서 일하면서 처음 받아 보는 보너스와 선물’이라며 감격하던 표정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회상했습니다. 그 환희는 불과 두 달 만에 절망으로 바뀌었습니다.
신종 감염병인 코로나19가 확산된 지 1년 후 최씨와 동고동락했던 직원 4명은 뿔뿔이 헤어졌습니다. 코로나 이전 월평균 매출 8000만원을 내며 홍대의 ‘핫플레이스’로 통했던 펍은 지금 무너지기 직전입니다. 펍 오픈 시간인 낮 12시부터 밤 12시까지 외국인과 내국인 손님이 끝없이 이어지던 매장은 텅 빈 상태가 지난해 내내 이어졌습니다. 지금 매출은 하루 20만원, 월 600만원 정도입니다. 매월 700만원에 달하는 임대료와 매장 운영비 100만원, 식재료 지출 200만원 등을 빼면 최씨는 매달 400만원씩 적자입니다. 1년 가까이 무임금 상태이지만 코로나가 끝날 때까지 버티는 게 유일한 희망입니다. 그가 정부에서 지원받은 돈은 지난해 6월과 11월 소상공인버팀목자금으로 받은 250만원이 전부입니다. 최씨는 “코로나의 모든 피해를 나 같은 자영업자들이 다 떠안고 있는 것 같다”며 울분을 터뜨렸습니다.
※ 네 명의 직원을 클릭하면 인물별 스토리를 더 볼 수 있습니다.
홍대 최고의 핫플레이스 펍이라는 최씨의 꿈만 무너진 건 아닙니다. 최씨가 정직원으로 채용했던 20대 직원들도 다 사라졌습니다. 2019년 연말에 뽑았던 막내 C(24)가 이듬해 2월 가장 먼저 짐을 쌌습니다. 열정적으로 일을 배웠던 C는 사장 최씨와의 연락을 끊었다가 몇 달 만에 찾아왔습니다. 그는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게 서류를 만들어 달라”고 언성을 높였습니다. 수급 자격이 안 되는 C는 급기야 최씨의 멱살까지 잡았습니다.

홍대에서 클럽MD(매니저)로 투잡을 뛰며 펍에서 일했던 B(26)는 “이제 그만 나올게요”라는 말을 남긴 채 홍대라는 공간 자체를 떠났습니다. 최고참 직원인 A(28)는 몇 달을 버티다 떠나면서 휴대전화 번호조차 바꿨습니다. 그는 평소 “사장님처럼 요식업을 창업하고 싶다”고 했던 청년입니다. 코로나 전 회식 자리에서 “돈을 모아 패션 사업을 하고 싶다”는 꿈을 털어놨던 D(27)는 제주도로 낙향했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다시 자리를 잡기 위해 일하고 있다고 합니다. 최씨는 “직원들은 내가 해고한 것이나 다름없다. 면목이 없어 그들에게 연락도 못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 자료 : 통계청
통계청에 따르면 2021년 1월 전국 자영업자 수는 533만 5000명으로 지난해 1월 546만 2000명 대비 12만 7000명이 줄었습니다. 이들 자영업자에게 고용된 직원들의 규모는 더 줄었습니다. 같은 기간 고용원이 있는 자영업자 수는 145만명에서 129만 2000명으로 15만 8000명이 급감한 반면 고용원 없는 자영업자 수는 401만 1000명에서 3만 2000명이 더 늘었습니다. 불황으로 직원들을 해고하고 ‘나홀로 사장님’이 된 자영업자가 그만큼 늘었다는 뜻입니다.
최씨는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장사가 잘되던 때 모아 놨던 1억원도 창업하면서 받았던 은행 대출금 2억원의 이자와 매월 700만원에 달하는 임대료로 이미 바닥났다”고 긴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그는 건물주에게 한시적 임대료 감면을 요청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답변은 “최 사장님도 힘들지만 저도 너무 힘든 상황입니다”라는 정중한 거절이었습니다. 그와 텅 빈 펍에서 인터뷰하는 도중 건물주가 발송한 분기 임대료 세금명세서가 등기 우편으로 최씨 손에 건네졌습니다. 최씨는 기자에게 “2016년 이 가게를 인수할 때 들어간 권리금 1억 5000만원도 지금 0원이 됐다”면서 “어떻게 하든 소상공인 대상 연금리 2%인 대출이라도 받아 월세부터 내고 버텨야 하지 않겠느냐”며 씁쓸한 웃음을 지었습니다.

류필선 소상공인연합회 부장은 “자영업자 대다수가 극한의 어려움에 처해 있다. 지난해 지원한 저금리 대출이나 재난지원금은 이들의 위기를 해소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라며 “손실보상제 소급적용 등 실질적이고 적극적인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박재홍 기자 maeno@seoul.co.kr
#5.
삼남매의 이별
“엄마가 거의 집에 있지 않았던 4개월(2020년 9~12월) 동안 동생들 라면 끓여 주고 나면 저는 먹을 게 없어서 그냥 굶었어요. 마스크도 없어서 외출도 잘 하지 못했어요. 당연히 학교도 거의 갈 수 없었어요.”(김윤희·18·가명)

지난 18일 만난 윤희양은 인터뷰에서 자신의 가족들이 겪은 충격적인 이야기를 덤덤히 말했습니다. 올해 고등학교 2학년이 된 윤희양은 지난해 코로나19 확산 전까지는 이혼 후 연락이 끊긴 아빠를 뺀 엄마와 남동생 정훈(15·가명), 여동생 효림(11·가명) 네 가족이 오손도손 살았습니다. 코로나가 윤희 가족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버릴 줄은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동네 인근 세탁소에서 보조 일을 하며 세 아이를 돌보고 생계를 책임져 온 엄마는 지난해 4월부터 임금을 받지 못했습니다. 엄마는 새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다 6월 지하철로 2시간 거리인 타 지역에서 일자리를 찾았습니다. 윤희양은 엄마가 무슨 일을 하게 됐는지 모릅니다. 그저 “일이 늦게 끝나면 지하철이 끊겨서 집에 올 수 없는 날도 있으니 동생들을 잘 챙기도록 해”라는 당부만 들었습니다.
엄마의 귀가 시간은 차츰 늦어지더니 8월이 되면서 아예 집에 오지 않는 날이 많아졌습니다. 엄마는 일주일에 하루 집에 왔습니다. 아이들만 생활하는 모습을 본 이웃들이 경찰에 방임 신고를 했습니다. 윤희네 삼남매는 아동보호전문기관을 거쳐 지난해 12월 단기청소년쉼터 두 곳으로 인계됐습니다. 윤희양과 효림양은 여자 쉼터로, 정훈군은 남자 쉼터로. 삼남매가 헤어지게 된 이유입니다.

삼남매가 각각 지내는 쉼터는 아동학대 피해 아동을 보호하는 시설입니다. 최장 9개월까지 지낼 수 있습니다. 차량으로 30분 떨어진 곳이라 서로 만나기도 어렵습니다. 막내 효림양은 “엄마가 보고 싶을 때마다 언니한테 전화해 달라고 해요. 오빠도 가끔 통화해요. 서로 보고 싶은데 코로나 때문에 참아야 한대요”라고 앳된 얼굴에는 아쉬움이 서렸습니다.
자료 : 이종성 국민의힘 의원실
*요보호아동은 '아동복지법'에 따라 아동복지시설 입소 대상인 아동
*요보호아동 수는 월말 기준 보호시설 거주 인원
서울신문이 국회 보건복지위 소속 이종성 국민의힘 의원을 통해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아동복지시설에서 생활 중인 요보호아동 규모는 3월 1만 3955명에서 12월 1만 4660명으로 700여명이 늘었습니다. 요보호아동 수를 연도별이 아닌 월별로 집계한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출산율 감소 현상으로 매년 줄어든 전체 요보호아동 숫자가 지난해에만 연초 대비 연말 늘어난 것도 이례적입니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 관계자는 “요보호아동 중 학대를 피해 법적 보호를 받는 숫자가 포함된 것”이라며 “지난해 코로나 확산과 그에 따른 경제상황 악화가 요보호아동 증가로 나타나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윤희양 어머니가 현재 지역에 가족이 살 거처를 구하지 못해 언제쯤 가족 모두 모일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습니다. 삼남매는 쉼터에 더 머물 예정입니다. 쉼터 관계자는 “방임으로 쉼터에 오게 되면 보호자보다 청소년 당사자의 의견을 우선적으로 듣고 퇴소 여부를 결정한다”면서 “아이들이 아직은 쉼터에 남아 있기를 원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효림양만 다음달 거처를 위탁 가정인 ‘미정(가명) 이모네’로 옮기기로 결정했습니다. 윤희네 삼남매를 챙겨 주던 이웃입니다. 쉼터 관계자는 “효림이가 아직 어리고 거처가 불안정한 엄마와 지내기보다는 위탁 가정에서 지내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며 “효림이와 어머니도 동의했다”고 말했습니다.
윤희양 엄마는 쉼터를 통해 “지금 살고 있는 곳에서 하루 빨리 자리를 잡아 아이들을 데려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전해왔습니다.

코로나가 종식되면 이들의 삶은
다시 행복해 질 수 있을까요.

박재홍 기자 maeno@seoul.co.kr
한국 최초의 종군사진가 청암 임인식이 1964년 촬영한 서울 교동국민학교 학생들. 마스크를 쓴 채 올망졸망 모여 있는 모습(왼쪽)과 코로나19로 텅 빈 지금의 교동초등학교 교정(오른쪽)과 대비된다. 지난해 8월 임인식 탄생 100주년 기념전인 ‘Life Goes On’에 전시됐던 이 사진은 독감 예방주사 접종을 기다리는 장면으로 공개됐다. 당시의 화생방 훈련 모습이라는 반론도 있다. 한국의 역사를 3대째 사진으로 기록해 온 청암 후손들의 코로나 이야기는 ‘2021 격차가 재난이다’ 마지막 회에 실을 예정이다.
청암아카이브 제공
박지환 기자 popocar@seoul.co.kr
지난해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 입학한 예진이. 마스크를 내리면 충치들이 선명하게 보입니다. 예진이는 지난 연말 보건소에서 1년여 만에 치료를 받았습니다. 예진이는 외조부모와 살고 있습니다. 엄마는 우울증과 알코올 의존증으로 아픕니다. 예진이 집은 전기요금을 아끼느라 종일 어두컴컴합니다. 설레여야 할 예진이의 생애 첫 학교 생활은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돌연 사라졌습니다. 온라인 수업만으로 예진이의 학교 적응을 돕고 충치를 발견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코로나 재난은 우리의 시야에서 예진이와 같은 아이들을 감춥니다.

백신과 치료제 개발로 코로나는 끝나지 않습니다. 코로나 이후 저소득층과 고소득층의 자산 양극화와 불평등이 커지고 있습니다. 기회는 부유층에 쌓이고, 위험은 하층에 축적되는 불평등한 재난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허약한 사회안전망 틈에서 새로운 격차가 시작되고 있습니다.

서울신문은 심층기획 ‘2021 격차가 재난이다-코로나 세대 보고서’ 시리즈를 통해 코로나 격차 사회의 민낯을 전하고 그 해법을 함께 고민하고자 합니다.

직원 A (28)
알렉스에서 1년 동안 일했던 최고참 직원.
“최 사장님 같은 청년 사업가가 되고 싶어요.”라며 요식업의 꿈을 키웠지만 알렉스 매출이 8000만원에서 1000만원으로 급락한 뒤 한 달 동안 버티다 3월에 퇴직. 지금은 연락 안 됨.
직원 B (26)
배우 차은우를 닮았던 직원.
무슨 질문에도 웃기만 하고 대답이 없었지만 홍대 클럽MD(매니저)까지 투잡으로 하루 5시간 쪽잠 자며 쉴틈 없이 일했던 열정 가득한 직원이었지만 2020년 2월 “저 그만나올게요”라는 말만 남기고 홍대를 떠남.
직원 C (24)
열정적으로 일을 배우려 했던 막내 직원.
채용 3개월째인 2020년 2월, 코로나 터지고 매출이 급감하자 말없이 잠적했다 몇개월 만에 나타나 실업급여를 위한 서류를 거짓으로 작성해 달라며 최현우씨 멱살까지 잡으며 실랑이.
직원 D (27)
회식자리에서 돈을 모아서 패션사업을 하고 싶다고 밝힌 꿈 많던 청년 직원.
지금은 제주로 낙향해 자리 잡기 위한 다른 일 하고 있다고 전해 들음.
인터랙티브 홈
전문/선언문
유소년층의 격차
1. 편의점에서 만난 아이
2. 무지개 지역아동센터
청·장년층의 격차
3. 증발하는 청년들
4. 식당은 하나, 사라진 꿈은 다섯
5. 삼남매의 이별
노년층의 격차
6. 코로나 시대, 자본의 두 얼굴
7. 어느 무연고자의 죽음
8. 코로나 노년 팬데믹
에필로그
관련 취재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