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페이지

격리자의 고백 “들킬까봐 마스크도 안 쓰고 돌아다녔다”

격리자의 고백 “들킬까봐 마스크도 안 쓰고 돌아다녔다”

입력 2015-06-17 18:56
업데이트 2015-06-17 18:56
  • 글씨 크기 조절
  • 프린트
  • 공유하기
  • 댓글
    14

“이틀에 한번 외출·의심받을까 마스크도 안써”

“집 근처 편의점이나 대형마트도 다녔어요. 답답하니까 집 주변 산책도 했고요. 혹시라도 주변에서 자가 격리자라는 걸 눈치챌까 봐 마스크도 쓰지 않았습니다.”

이미지 확대
또 확진병원 나왔네
또 확진병원 나왔네 레지던트 한 명이 160번째 메르스 감염 환자로 확진 판정된 서울 상일동 강동경희대병원에서 17일 내원자가 마스크를 쓰고 기다리고 있다.
도준석 기자 pado@seoul.co.kr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감염이 의심돼 자가 격리 상태에 있다가 지난 13일 해제된 A(30대)씨는 17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격리 기간 중에도 이틀에 한 번꼴로 외출을 했다”고 털어놨다.

A씨가 구청으로부터 자가 격리 통보서가 담긴 봉투를 받았을 때 봉투 안에는 A4 용지 한 장이 더 있었다. 질병관리본부가 만든 생활 수칙이었다. 하지만 그는 사회와의 갑작스러운 격리를 받아들일 준비가 전혀 돼 있지 않았다. 메르스 확진 판정자와 동일한 공간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세상과 2주일 동안 떨어져 살아야 한다는 것 자체가 납득이 되지 않았다고 했다.

격리 통보와 함께 그는 임시직 일자리를 잃었다. 처음에는 분노와 짜증이었지만 점차 생계에 대한 두려움이 밀려왔다. 그는 집 밖으로 돌아다니는 것은 다른 사람들도 비슷하다고 전했다. “자기 집 근처라면 누구나 밖으로 나가서 돌아다닐 거 같은데요. 이번에 저처럼 집에 격리된 지인에게 전화를 했더니 그 사람도 마음대로 집 안팎을 드나든다고 하더라고요.”

격리 지침을 어긴 사실을 밝히면서도 A씨는 당당했다. 어쩔 수 없었다는 게 이유다. “사람이 먹고는 살아야 하잖아요. 강제로 격리돼 집 안에만 갇혀 있다고 생각해 보세요. 답답해서 미칠 것만 같은 데 어떻게 합니까. 게다가 쌀이랑 물을 사야 하고, 반찬거리도 사야 하는데….”

격리 조치를 어길 수밖에 없는 상황은 어쩌면 이미 만들어져 있었는지도 모른다. 구청의 격리자 점검 전화도 형식에 불과했다. A씨는 격리 사흘 만에 매일 정해진 시간에 사무적으로 오는 확인 전화에 금세 익숙해졌다고 했다. “전화가 아침 8시쯤 한 번 오고, 오후 3시쯤 한 번 오고, 저녁때 한 번… 그게 일정한 시간이 있더라고요. 그 시간에만 집에 있으면 되는 거니까.”

잠깐씩 나갔다 오기는 했어도 주로 집에 머물다 보니 요즘 유행하는 스마트폰 ‘배달 앱’이 가장 즐겨 찾는 생활수단이 됐다고 한다. 상당수 끼니를 스마트폰 음식 주문으로 때웠다. “배달원이 오더라도 제가 격리자인 걸 티 낼 수는 없잖아요. 그냥 아무렇지 않게 인사하고 음식 받는 거죠. 이것도 접촉이라면 접촉인가요.”

격리가 해제된 후 그의 두려움은 오히려 커졌다. 2주간의 부재가 자가 격리 때문이라는 것을 주변 사람들이 알게 되면 노골적으로 자신을 피할 것이라는 점 때문이었다. 또 다른 불안감도 있다. “최대 잠복기가 2주일이라고 해서 안심했더니 그것도 아닌 모양이네요. 그 기간을 넘겨서 확진된 사람이 계속 나타나고 있으니 저도 장담 못하는 것 아닌가요.”

그는 “자가 격리자들이야말로 메르스 사태가 끝나기를 가장 바라는 사람들일 것”이라며 “당국에서 통제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격리 생활을 도와주는 데도 좀 더 신경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 안 그러면 생활 수칙을 지키기가 더욱 힘들 것이란 얘기다.

조용철 기자 cyc0305@seoul.co.kr

많이 본 뉴스

  • 4.10 총선
저출생 왜 점점 심해질까?
저출생 문제가 시간이 갈수록 심화하고 있습니다. ‘인구 소멸’이라는 우려까지 나옵니다. 저출생이 심화하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자녀 양육 경제적 부담과 지원 부족
취업·고용 불안정 등 소득 불안
집값 등 과도한 주거 비용
출산·육아 등 여성의 경력단절
기타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