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구 찾는 청와대
중앙아시아를 순방 중인 박근혜 대통령이 18일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 임명동의안의 국회 제출에 대한 재가를 귀국 후 검토하겠다고 밝힌 것은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된 여론을 수용한 사실상의 자진 사퇴 압박 신호로 해석된다. 더욱이 박 대통령이 총리를 지명한 지 10여일이 지난 뒤에 재가를 검토하겠다고 한 것 자체가 전례없는 일로 여겨진다. 때문에 이날 박 대통령의 ‘결재 보류’는 곧 문 후보자에게 스스로 물러나라는 ‘최후통첩’을 내린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문 후보자에 대한 인준을 강행하려 했다면 순방을 떠나기 전에 이미 재가를 하지 않았겠느냐는 이유에서다.결국 박 대통령이 직접 총리 지명을 철회하기는 정치적 부담이 커 시간을 두고 문 후보자의 자진 사퇴를 유도하는 방식으로 출구전략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또 문 후보자 사퇴 시 쏟아질 야권의 거센 공세에 대비할 방안을 마련하고, 후임 총리까지 물색하는 시간을 벌기 위해서라는 관측도 있다. 여론의 뭇매를 맞은 문 후보자에게 해명의 시간을 주기 위한 박 대통령의 마지막 배려라는 얘기도 여권 내부에서 나온다.
이런 가운데 문 후보자의 임명동의안과 함께 장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요청안까지 국회 제출이 미뤄진 것도 문 후보자에 대한 예우 차원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날 다른 장관 후보자들의 청문 요청안만 국회에 제출됐다면, 문 후보자는 더욱 궁지로 몰렸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박 대통령의 ‘신호’에도 불구하고 문 후보자가 자진 사퇴를 거부하고 있다는 관측도 없지 않다. 이날 문 후보자가 “대통령이 돌아올 때까지 차분히 (청문회를) 준비하겠다”고 밝히며 총리 인준에 대한 강한 의지를 거듭 천명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그럼에도 여권 내 ‘문창극 불가론’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박 대통령의 재가를 거쳐 청문 절차가 진행되면 ‘문창극 버리기’ 쪽으로 분위기가 쏠린 여권 전체가 혼란스러운 상황에 직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날 열린 새누리당의 비공개 의원총회에서는 절차를 두고 의견이 다소 갈렸지만 문 후보자를 옹호하는 발언은 한마디도 나오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새누리당 일각에서 “청와대로부터 후임 총리 후보자를 추천해 달라는 요청이 있었다”는 얘기가 흘러나오면서 문 후보자의 사퇴를 기정사실화하는 기류도 감지된다.
문 후보자가 결국 낙마한다면 박 대통령 입장에서는 귀국하는 21일 전에 자진 사퇴 형식으로 상황이 정리돼야 부담을 덜 수 있다. 만약 문 후보자가 끝까지 ‘버티기’를 고수한다면 결국 박 대통령이 스스로 지명을 철회하거나, 청문 절차를 진행해 국회 표결을 해야 한다. 현재로서는 부결될 가능성이 높아 어느 쪽도 박 대통령에게는 자진 사퇴보다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한편 청와대는 문 후보자 낙마 시 제기될 김기춘 비서실장의 책임론을 희석시킬 방안 마련에 고심을 거듭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강병철 기자 bckang@seoul.co.kr
이영준 기자 apple@seoul.co.kr
2014-06-19 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