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페이지

[DB를 열다] 1965년 준공된 등촌동 시영주택

[DB를 열다] 1965년 준공된 등촌동 시영주택

입력 2013-01-31 00:00
업데이트 2013-01-31 00:44
  • 글씨 크기 조절
  • 프린트
  • 공유하기
  • 댓글
    14
서울 강서구(당시 영등포구) 등촌동 언덕바지에 완공된 시영주택의 모습이다. 1965년 1월 25일 촬영한 것으로 돼 있다. 10.3평이 75호, 8.6평이 25호다. 방 2개에 마루, 부엌, 화장실이 하나씩 딸린 소형 주택이다. 분양가는 당시 가격으로 25만~27만원이었다.

이미지 확대
서울시가 이런 작은 주택들을 지어 분양한 것은 급속한 인구증가에 따른 주택난 때문이었다. 서울의 인구는 종전 직후인 1953년 100만명을 넘어섰고 1959년 209만명, 1963년 325만명, 1970년 543만명에 이르렀다. 1965년 무렵 서울에서는 매년 4만 8000가구가 증가하고 있었지만, 주택 보급은 1만 7000가구에 지나지 않아 해마다 3만 가구씩 부족했다. 시영주택은 서울 상도동, 구로동, 신림동, 남가좌동, 대방동, 응암동, 면목동 등 도심에서 벗어난 지역에 지어졌다. 한때 수십 대 1의 경쟁률을 보일 만큼 인기를 끌기도 했으나 문제도 많았다.

우선 공사를 둘러싸고 공무원들이 부정을 저지르는 일이 잦았다. 또 급증하는 인구에 대응하려고 집을 빨리 지어야 했기 때문에 날림 공사를 했다. 정지작업도 제대로 하지 않고 공사를 하거나 하수구도 내지 않은 곳이 많았고, 입주 5개월이 지나도록 버스가 다니지 않는 외진 지역에 집을 지어 입주민들의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또 서민들은 쳐다보지도 못할 정도로 분양가가 올라 인기가 떨어졌다.

손성진 국장 sonsj@seoul.co.kr

2013-01-31 31면

많이 본 뉴스

의료공백 해법, 지금 선택은?
심각한 의료공백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의대 증원을 강행하는 정부와 정책 백지화를 요구하는 의료계가 ‘강대강’으로 맞서고 있습니다. 현 시점에서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사회적 협의체를 만들어 대화를 시작한다
의대 정원 증원을 유예하고 대화한다
정부가 전공의 처벌 절차부터 중단한다
의료계가 사직을 유예하고 대화에 나선다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