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민테른 창립 100주년과 한국독립운동 100주년

코민테른 창립 100주년과 한국독립운동 100주년

정영애 기자
입력 2019-03-19 16:11
수정 2019-03-19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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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1일, 한국이 3·1 독립운동의 100주년을 맞이하였다. 1919년 3·1 독립운동은 오늘 한국 민족해방 투쟁역사에 있어서 중요한 사건이고, 헌법에 명시된 것처럼 대한민국 정부의 법통인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기원이다. 1919년 3월에는 한민족독립운동과 일제 멍에로부터의 해방 투쟁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 사건이 한가지 더 있었다. 1919년 3월 2일 서울로부터 약 6600㎞ 정도로 떨어진 모스크바에서 ‘공산주의 인터내셔널’(약칭 코민테른)이라는 조직의 창립회의가 열렸다. 물론, 한국 독립운동사에 있어서 코민테른의 역할에 대한 평가는 소위 ‘색깔론’ 등의 영향이 남아 있는 오늘에는 보는 시각에 따라서 많은 차이가 있으며 객관적인 평가를 하기에는 연구가 아직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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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이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에서 말한 것처럼, 우리가 하루빨리 청산해야 할 대표적인 친일잔재는 바로 색깔론이며, 이를 위해서 역사를 객관적으로 해석할 수 있려면 연구가 필요하다. 이번에는 1920년대의 한국의 민족해방운동과 코민테른의 관계를 간략하게 소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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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7년, 러시아에서 10월 혁명이 일어났으며 세계 최초의 노농국가인 소비에트 러시아가 탄생하였다. 10월 혁명을 주도한 레닌과 러시아공산당(볼셰비키)은 러시아 혁명을 세계혁명의 일환으로 봤으며 유럽 여러 공산단체와 함께 세계혁명의 확산하고 투쟁 중인 각 민족의 노동계급 지원할 목적으로 국제기관을 설립하기로 하였다. 코민테른 창립회의에는 국민회의 대표로서 강상주가 참여하였으며 한국인들의 반제·반식민지 투쟁에 관해서 이야기했고, 3월 17일 대한국민의회가 연해주 니콜스크-우수리스크에서 독립선언을 발표했고 1부를 코민테른에 전달했다.

4월 20일 모스크바에서 열린 노령한인노동단체대회에서 강상주가 코민테른 창립회의에 대해 연설했으며 러시아 외무인민위원회 동방부장 보즈네센스키가 소비에트 정부를 대표하여 연설했다. 독립에 대한 한국인의 열망을 실감한 보즈네센스키는 1919년 7월 26일 ‘한국의 혁명적인 단체인 국민회와 온 한국인들에게’라는 소비에트 정부의 선언을 발표하였으며 많은 한국 혁명가들이 이미 붉은군대에 입대하고 극동지역에서 일제와 싸우고 있다면서 한국인들에게 국내에서도 항일무장투쟁을 벌일 것을 호소했다. 또한 파리 강화회의에 파견된 한국대표단이 문전박대당하고 열강과의 외교를 통해 독립을 추구해야 한다는 외교독립론이 사실상 붕괴되면서 무장투쟁론이 강화되어 갔다. 많은 무장투쟁론자들은 세계 혁명을 추구하고 1918년 러시아내전에 개입하여 연해주 지역의 일부를 점령한 일제와 싸우는 소비에트 정부와 코민테른을 당연한 동반자로 간주하여 러시아에 넘어오고 무장투쟁에 참여하기 시작했으며 소비에트 정부와 코민테른은 그들을 지원하기도 하였다.

좌익민족운동은 문제도 많았으며 가장 치명적인 것은 분파투쟁이었다. 코민테른의 지원을 받으려는 독립운동가들은 통일조직을 결성하지 못하였으며 서로 권력다툼을 벌이고 있었다. 그 결과, 1920년대 초 코민테른이 독립운동과 ‘상해에서의 혁명 사업’을 위해 제공한 거액의 자금을 둘러싼 분쟁(이른바 ‘모스크바 자금 사건’)이 일어났고 이로 인해 모스크바자금을 상해로 가져온 김립이 살해되었다. 또한 분파투쟁, 통수권 다툼, 국제 정세 변화, 극동공화국과 코민테른 간의 갈등 등으로 인해 1921년 6월 자유시 참변이 발행하였으며 많은 운동가가 살상당하였고 그 부대들은 무장해제되었다. 코민테른은 한국 국내 반일·혁명투쟁을 지도하기 위해 통일조직으로 공산당을 수차례나 설립 시도했으나 분파투쟁과 일제의 탄압으로 실패했다.

코민테른은 식민지의 독립운동을 지도·지원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였다. 그 집행위원회는 한국인 간부를 양성하기 위해 동방노력자공산대학을 설립하고 한국, 중국, 베트남 등 국가의 학생들에게 민족해방과 혁명 사업에 필요한 지식을 가르쳤다. 그 대학 동문 중에 중국의 덩 샤오핑과 류 사오치, 베트남의 호찌민, 일본의 가타야마 센, 한국의 조봉암과 박헌영 등 유명한 정치가가 있다. 또한 코민테른은 1922년 민족해방운동을 지원하는 목적으로 주도로 극동민족대회를 열었다. 참석자 중에 한국인이 제일 많았으며 그 의장단에 김규식, 여운형 등이 선출되었다.

1930년대에 접어들면서 국제 환경이 변하기 시작하였다. 1920년대 초에 고조되었던 세계 혁명정세가 1920년대 후반에 완전히 퇴조하였다. 이 상황에서 세계혁명을 강행하는 것이 불가능해졌으며 코민테른의 힘도 점차 쇠퇴하기 시작하였다. 1937년에 시작한 소련 대숙청 과정에서 한국인 간부들을 포함한 많은 좌익운동가가 희생당하였고, 1943년 코민테른은 공식 해산되었다.

글. 사진:바실리 V 레베데프(고려대 사학과 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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