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역 살인 사건] 반성·침묵·분노… 남성들 ‘속마음’

[강남역 살인 사건] 반성·침묵·분노… 남성들 ‘속마음’

오세진 기자
입력 2016-05-23 23:14
업데이트 2016-05-24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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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적으로 자유로울 수 없어” 피해자 추모

일부는 “모든 남성 범죄인 취급하면 안 돼”

“정신이상자의 범행일지라도 ‘왜 피해자가 여성일까’라는 문제를 돌아봐야 합니다.”

서울 서초구 강남역 10번 출구 앞에서 지난 22일 만난 취업준비생 황모(27)씨는 “결혼하면 여성이 집안 살림을 도맡고 요리를 잘하는 여성을 1등 신붓감으로 여기는 인식 자체가 곧 차별”이라며 “이런 사회 속에서 이득을 취하며 살아온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고 말했다. 그는 포스트잇에 ‘부당한 구조 속에서 저는 결코 도덕적으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라는 문구를 적어 출구 앞 가로등에 붙였다.

추모현장을 찾은 남성 중에는 스스로를 돌아보고 반성하는 경우가 가장 많았지만 말없이 돌아서는 경우도 있었고 모든 남성을 범죄자로 몬다면서 화를 내는 사람도 있었다.

이날 밤 8시 30분쯤 여자친구와 추모 현장을 찾은 대학원생 오모(28)씨는 “단순히 ‘여성은 보호받아야 한다’는 논의로 흐를 것이 아니라 남녀 모두 누군가의 위협으로부터 안전해야 한다는 더 큰 논의로 공론화됐으면 좋겠다”며 “여성에 대한 혐오 범죄를 만들어내는 사회 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전했다.

하지만 반성의 목소리만 있는 것은 아니다. 여성 혐오 논란이 남성 혐오로 번지는 것을 경계하자는 남성도 있었다. 직장인 한모(33)씨는 “범죄를 저지른 사람은 비록 남성이지만 어렸을 때부터 피해망상에 사로잡힌 정신질환자였다”며 “정신질환자 한 명 때문에 한국 남성이 모두 혐오의 대상이 되는 것은 바라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안전한 사회를 만들고 여성 차별적 문화를 개선하자는 추모의 취지는 살려야 하지만 성별 혐오 논쟁으로는 번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극히 일부지만 여성 혐오 논란에 대해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는 경우도 있었다. 이날 밤 9시쯤 강남역 9, 10번 출구 사이에서 시민 40여명은 언쟁을 벌이는 두 남녀를 둘러싸고 있었다. 이 남성은 “여성 혐오는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며 “여성들도 밥값을 나눠 내거나 돈을 아껴쓰려는 남성을 향해 ‘찌질이’ 등의 말로 공격하지 않느냐. 왜 데이트 비용을 남자만 내야 하느냐”는 식으로 따져 묻기도 했다.

직장인 이모(41)씨는 ‘침묵만이 답’이라고 했다. 그는 “아무리 이해심이 많아도 여성의 입장을 모두 이해할 수는 없다”며 “이해하는 척하기보다 가만히 듣고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만큼만 받아들여야 불가피한 갈등을 피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2016-05-24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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