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로 풀어본 ‘인천공항 폭발물 의심 물체’ 사건

키워드로 풀어본 ‘인천공항 폭발물 의심 물체’ 사건

입력 2016-02-04 15:54
업데이트 2016-02-04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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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 나온 공항 협박범 “취업 안 돼 사회에 불만”“영화 보고 폭발물 의심 물체 제작…폭발 의도 없어”

인천국제공항 협박범이 범행 닷새 만인 3일 밤 경찰에 체포됐다.

하루 유동 인구가 많을 때에는 16만명에 달하는 인천공항에서 폭발물 의심 물체와 함께 아랍어로 된 협박성 메모지가 발견되자 국제 테러단체와의 연관성이 제기됐다. 인천공항의 보안에 구멍이 뚫렸다는 지적이 나오던 터였기에 불안감은 더 컸다.

그러나 용의자를 붙잡고 보니 처자식이 있는 평범한 가장이었다. 음악을 전공하고 대학원까지 나왔는데도 취업을 하지 못해 사회에 불만을 품었다가 잘못된 방식으로 표출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번 사건을 최초 신고 접수부터 용의자 검거까지 키워드로 풀어봤다.

# 인천공항 남자 화장실

대구에 사는 한 남성은 지난달 29일 오후 3시 50분께 인천공항 1층 C 입국장 화장실에 들어갔다가 의문의 상자 하나를 발견했다. 화장실 입구 쪽 첫 번째 좌변기 칸에 놓인 종이 상자였다.

상자 주변에는 노란색 포장용 테이프로 무언가가 부착돼 있었다. 자세히 보니 부탄가스였다. 라이터용 가스통과 500㎖짜리 생수병도 함께 묶여 있었다.

순간적으로 누군가가 폭발물을 제조해 가져다 놓은 것이라는 직감이 들었다. 좌변기 칸 앞에서 기다릴 때 문을 열고 나온 남성이 퍼뜩 뇌리를 스쳤다. 20∼30대로 추정되는 남자였는데 어두운 색 계열의 가방도 들고 있었던 것 같기도 했다.

곧바로 공항 여객터미널 안에 있는 안내 데스크로 달려가 알렸다. 당연히 의심 물체에는 손도 대지 않았다.

데스크 직원은 곧바로 인천국제공항공사 측에 연락했고 공항공사 소속 폭발물처리반(EOD)이 화장실로 출동했다.

공항공사 측은 사태가 심상치 않다고 생각해 바로 공항경찰대에 신고했다. 29일 오후 4시 35분께였다.

# 화과자 상자

경찰 특공대가 공항 남자화장실 앞을 통제하는 사이 경찰 폭발물처리반이 물사출분사기를 들고 좌변기 칸으로 진입했다.

분사기를 이용해 종이 상자를 해체해 보니 기타 줄 3개, 전선 4조각, 건전지 4개가 담겨 있었다. 또 브로콜리, 양배추, 바나나껍질도 발견됐다. 그러나 뇌관이나 폭약 성분의 물체는 없었다.

종이상자 겉 부분에는 ‘C’EST SI BON‘이라는 상표가 큰 글씨체로 적혀 있다. 가로 25cm, 세로 30cm, 높이 4cm 크기다.

이 화과자는 국내 유명 프랜차이즈 베이커리 업체 P사가 ’오색정과‘라는 이름으로 생산하는 제품이었다. 폭발물 의심 물체가 발견된 인천국제공항 여객터미널에도 입점해 있었다.

경찰은 이 베이커리 업체를 상대로 해당 제품 포장 상자의 생산 연도와 주요 판매처를 파악하며 용의자를 추적했다.

# 아랍어 협박성 메모지

종이 상자 뒷면에 붙어있던 메모지 1장이 발견되면서 경찰의 촉각이 극도로 예민해졌다.

메모지에는 무슨 말인지 모를 아랍어가 적혀 있었다. 전문가에게 물어보니 “이것이 (당신에게 보내는) 마지막 경고다. 알라가 알라를 처벌한다”라는 뜻이었다. 손으로 쓴 글씨가 아닌 컴퓨터로 출력한 A4용지 절반 크기였다.

컴퓨터로 출력한 이 메모지는 하나의 문장인데도 서로 글씨 크기가 다르거나 아랍어의 기본적인 어문 규칙도 따르지 않는 등 비전문가가 작성한 조잡한 수준이었다.

’알라가 알라를 처벌한다“라는 의미가 이상한 문장이 포함됐으며 보통 아랍어에서 ‘신’이라는 단어 앞에 관용적으로 항상 쓰는 ‘자비로운’ 등의 수식어도 없었던 것이다.

이때부터 경찰은 용의자가 아랍인이거나 국제 테러단체와 연계됐을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봤다. 경찰은 모방범죄를 염두에 두고 용의자를 계속 추적했다.

# 폐쇄회로(CC)TV

인천공항 C 입국장 옆 남자화장실을 직접 비추는 CCTV는 단 2대였다. 그나마 이 2대는 50m 이상 떨어져 있는데다 화질이 좋지 않았다. 경찰이 이 CCTV 영상을 확보해 보니 손가락 마디 크기로 사람이 화장실을 들락거리는 장면이 보였다. 얼굴은 물론 손에 든 물건도 알 수 없을 정도였다. ‘눈이 빠지겠다’는 소리가 경찰 내부에서 나왔다.

어쩔 수 없었다. CCTV 분석을 맡은 경찰관들은 ‘오래 보아야 예쁘다 너도 그렇다’는 시 대신 ‘오래 보아야 찾는다 용의자도 그렇다’는 수사 철칙을 믿었다.

결국 ‘눈이 빠질 때까지’ 봐서 찾아냈다. 2대의 CCTV로 손가락 마디 크기의 화장실 이용자 762명을 추려냈다. 신고시각인 지난달 29일 오후 4시를 전후해 5시간 동안 남자화장실을 드나든 남성들이었다. 남성들은 옷색깔도 비슷비슷했다.

CCTV 분석팀은 이들 중 행동이 의심스러운 75명의 공항 여객터미널 내 이동경로를 쫓았고, 인천공항과 연결된 공항철도를 타는 A씨의 모습을 파악했다.

공항철도 측에 요청해 교통카드 사용 내역을 확인하고, 카드사를 통해 용의자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등 신원도 확보했다. 36세 남성. 서울 구로구 거주자였다.

인천경찰청 광역수사대 강력 1반은 3일 오후 11시 28분 택배를 가장해 이 남성의 집 초인종을 눌렀다. 순순히 문이 열렸다. 거실에 TV가 켜져 있었고 용의자 혼자였다.

# 대학원과 취업

실은 혼자가 아니었다. 한순간 잘못된 생각으로 ‘인천공항 협박범’이라는 거창한 수식어가 붙은 A(36)씨는 몇 년 전 결혼해 갓 태어난 자녀도 있었다. 검거 당일 아내는 아이를 데리고 친정에 간 상태였다.

그는 인천공항경찰대로 압송돼 조사를 받던 중 직업을 묻는 수사관의 질문에 ”없다“고 답했다. 대신 ”음악을 전공했고 대학원도 나왔다“고 말했다.

고개를 떨어뜨린 A씨는 ”평소 사회에 불만을 품고 있었다“며 범행 동기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취업이 안 돼 돈이 궁했고 짜증이 났어요. 집에서 부탄가스 등을 이용해 폭발물 의심 물체를 만들었고 인천공항 화장실에 설치했습니다. 집이 있는 서울에서 공항철도를 타고 공항으로 갔고 평소 영화에서 본 것을 토대로 폭발물 의심 물체를 제조했어요. 폭발 의도는 없었습니다"

그는 순순히 범행을 모두 자백했다.

사회 불만을 잘못된 방식으로 표출한 젊은 가장이, 그리고 그 가정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경찰은 4일 폭발성물건파열 예비음모 및 특수협박 혐의로 A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할 방침이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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