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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로봇 꿈이 키운 ‘휠체어 소년’

인공지능 로봇 꿈이 키운 ‘휠체어 소년’

입력 2013-03-02 00:00
업데이트 2013-03-02 0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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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근육계 희귀질환 앓아 손가락만 움직이는 고은준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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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7일. 은준(왼쪽·18)이는 아무도 들어오지 말라며 방문을 꽁꽁 걸어 잠갔다. 휠체어를 잡은 손에서는 축축한 땀이 배어 나왔다. 초조한 마음으로 컴퓨터 화면에 다음 창이 뜨길 기다리는 찰나 은준이가 환호성을 질렀다. ‘연세대 컴퓨터 공학과 합격을 축하합니다.’

“합격자 발표가 떡 하고 떴는데 정말 아무 생각도 안 났어요. ‘오 하나님 감사합니다’만 몇 번을 말했는지 몰라요. 난생처음 기숙사 생활을 하게 됐는데 걱정도 되지만 무척 설레요. 20학점을 신청했는데 너무 빡빡하진 않겠죠?”

올해 연세대 컴퓨터공학과에 입학한 고은준군은 온몸의 근육이 퇴화돼 손가락만 겨우 움직일 수 있는 신경근육계 희귀질환자다. 심장 근육이 약해져 호흡이 힘들 때에는 호흡기를 쓰기도 한다.

그러나 발치에서 고군을 지키는 어머니 김주희(오른쪽·50)씨는 단 한 번도 아들이 하겠다는 걸 막아 본 적이 없다. “다섯 살 무렵 병원엘 데리고 갔는데 의사 선생님이 무시무시한 소리를 하는 거예요. 열아홉 살까지밖에 못 살 테니 애가 하고 싶다는 거나 실컷 들어 주라고요. 우리 애는 그렇게 되지 않을 거라고 몇 번을 부정하고 또 부정했죠.”

매일 집과 병원을 오가는 일상이 시작됐지만 김씨는 희망이라는 단어를 놓지 않았다. 그의 믿음은 아들이 단단한 꿈을 키울 수 있는 밑거름이 됐다. 수능시험 때도 김씨는 여느 고3 수험생의 엄마처럼 옆 교실에 앉아 끝까지 아들을 응원했다.

“몸이 휠체어에 고정돼 있어 엎드려 잘 수도 없어요. 그러니까 그저 수업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거죠. 책을 한꺼번에 넘기는 것도 어려웠는데 엄마와 친구들이 많이 도와줬어요.”

고군은 먼저 대학에 입학한 척수성근위축증 환자 신형진(29·연세대 소프트웨어응용연구소 연구원)씨와 연락하며 많은 조언과 용기를 얻었다. 신씨 역시 생후 7개월부터 척추성근위축증을 앓아 휠체어에 누워서 생활했지만 학업의 끈을 놓지 않고 2002년 연세대 컴퓨터과학과에 합격, 입학 9년 만인 지난해 2월 졸업장을 받은 고군의 선배이자 든든한 멘토다.

“형진이 형이 대학원에 진학한 걸 보고 많은 자극을 받았어요. 저도 형처럼 더 열심히 공부하고 연구해서 제가 많은 사람들에게 받은 고마운 것들을 나눠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어머니 김씨는 “다른 아이들처럼 자기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해서 그런지 은준이가 요즘 자신감이 넘친다”면서 “‘희망’이라는 게 있어서 그런지 우리 아이가 더 건강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오는 4일부터 본격적인 기숙사 생활을 시작하는 고군은 학교 측의 배려로 어머니와 함께 지낼 수 있게 됐다. 매일 물리치료와 호흡기 치료 등 타인의 손길이 필요한 고군을 위해 학교는 김씨에게 기숙사 방 하나를 제공했다.

“제 꿈은 정보산업 관련 회사의 최고경영자가 되는 겁니다. 저처럼 몸이 불편한 친구들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도록 인공지능 로봇을 만들고 싶어요. 이번에 컴퓨터공학과로 입학한 건 그 꿈을 이루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거예요. 제 꿈은 이제 겨우 시작인걸요.”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2013-03-02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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