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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역사도 위안부보다 잔인할 수 없다고 생각”

“어떤 역사도 위안부보다 잔인할 수 없다고 생각”

입력 2013-03-01 00:00
업데이트 2013-03-01 0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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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째 ‘나눔의 집’ 찾아 봉사… 日 은퇴교사 나가하마

“할머니들 앞에 처음 섰을 때는 꼭 재판정에 홀로 던져진 죄인 같은 기분이었어요.”

3·1절을 하루 앞둔 28일 오후 경기 광주에 자리한 나눔의 집.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 8명의 보금자리다. 80대 이상의 할머니들 사이로 여성 한 명의 분주한 움직임이 눈에 띈다. 할머니들에게 밥을 떠먹이고 휠체어를 밀어주고 청소를 한다. 그 역시 올해 나이 71세. 누가 봐도 할머니다. 자기 몸을 운신하기도 예전 같지 않을 텐데 궂은 일을 하면서도 힘든 기색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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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경기 광주 나눔의 집에서 위안부 피해 할머니 흉상을 배경으로 선 나가하마 가즈코.
28일 경기 광주 나눔의 집에서 위안부 피해 할머니 흉상을 배경으로 선 나가하마 가즈코.
일본인 나가하마 가즈코. 퇴임 교사인 그는 매년 2~3차례 한국을 찾는다. 올 때마다 2개월씩 나눔의 집에 머물며 할머니를 돕는다. 올해로 8년째다.

그가 위안부 피해 할머니와 처음 인연을 맺은 건 1995년이었다. 그해 교편을 놓고 은퇴여행을 계획하면서 ‘역사를 찾아서’라는 한국 여행 프로그램을 선택했다. 아버지가 체육교사로 한국에서 근무했던 그는 1942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한국 여행 사흘째, 나가하마는 한 여성의 슬픈 사연을 알게 됐다. 위안부 피해 사실을 처음 공개적으로 털어놨던 김학순 할머니(1924~1997)였다. 충격이었다.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30년간 역사를 가르쳤지만 ‘위안부’라는 말은 그때까지 들은 적이 없었다.

2006년 부모가 세상을 떠나자 한국으로 왔다. 위안부 피해 여성에게 사죄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할머니들과 나눔의 집 동거가 시작됐다. 청소, 빨래, 설거지 등 닥치는 대로 도울 일을 찾았다. 처음엔 어색해하던 할머니들도 차츰 마음의 문을 열었다. “할머니들이 제 혼네(本音·본심)를 알아줬어요. 제가 돌아갈 때가 되니까 ‘바지를 빨아놓을 테니 다음에 와서 꼭 찾아가라’고도 하셨죠.”

그의 진심 어린 반성과 화해 노력에 주변의 친구들도 동참했다. 나가하마가 속한 은퇴교사 모임 소속 회원 100명은 위안부 피해자 돕기 성금을 모아 전달했다. 나가하마는 “위안부의 존재를 부정하는 극우 세력이 일본인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처럼 비칠까봐 걱정”이라고 말했다. 일본인들은 속마음을 좀처럼 드러내지 않는 특성 때문에 표현하지 않지만 태평양 전쟁을 겪은 노년층은 한국인 피해자에게 미안한 감정이 많다고 전했다.

글 사진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2013-03-01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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