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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터지면 어김없이… ‘루머’ 왜 끊이지 않나

이슈 터지면 어김없이… ‘루머’ 왜 끊이지 않나

입력 2010-09-30 00:00
업데이트 2010-09-30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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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80년대 권위주의 정권 시절엔 이른바 ‘유비통신’이 위세를 떨치던 시기였다.

중요 사안에 대한 정부의 공식 발표는 진실이 아닐 가능성이 더 컸던 시절, 많은 사람이 사실에 대한 갈증을 출처도 불분명한 유비통신을 통해 풀었다.

우리 사회가 민주화의 공고화 단계로 접어들고 정보통신의 발달로 일반인의 정보 접근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고 평가받는 최근까지도 사회의 주요 이슈가 있을 때마다 유언비어는 사라지지 않고 등장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아직도 유언비어가 만들어지는 원인으로 정보부족과 정부의 비밀주의, 이익집단의 악의(惡意) 등을 꼽는다.

●주요 이슈 터질 때마다 루머

올해 3월 우리 해군의 초계함인 천안함이 서해 상에서 침몰하는 전대미문의 사건이 발생했을 때도 여러 억측과 유언비어가 등장했다.

침몰 원인과 관련해 “미군 핵 잠수함과 충돌했다”거나 “TV 공중파 신호를 잡으려 해안으로 이동하다 좌초했다”는 등 온갖 추측들이 나왔고 “정부가 예비군 징집령을 내렸다. 곧 전쟁이 난다”는 등의 유언비어도 인터넷을 타고 퍼졌다.

상식 이하의 루머를 퍼뜨리는 누리꾼들도 있었지만 국민의 이목이 쏠린 상황에서 사건 초기 군 당국도 정확한 정보를 내놓지 못해 답답한 상황이 이어지자 루머가 확산된 측면도 컸다.

사고 조사 과정에서도 군 당국은 사고 발생 시간을 수차례 번복하고, 열상감시장비(TOD) 녹화 영상의 존재 여부 공개를 놓고도 오락가락하는 등 중요 정보의 공개를 꺼리고 비밀주의로 대응하는 모습을 보여 ‘뭔가 숨기는 게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과 함께 유언비어를 키웠다.

지난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를 놓고도 정부는 미국과의 협상 내용을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고 비밀주의로 일관했다는 의혹을 사면서 국민적 반발을 초래했다.

외교 협상 과정을 모두 공개할 수 없다는 불가피한 사정은 있지만, 이로 인해 정부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해 3개월 동안 촛불시위가 지속되는 등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치르도록 하는 빌미를 제공했다.

쇠고기의 안정성 논란에 대해서도 정확한 과학적 증거보다 ‘위험이 없다’거나 ‘안전하다’는 식의 면피성 해명으로 국민의 불안을 해소시키지 못해 괴담 확산에 기름을 부었다.

조대엽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사회학적으로 루머는 정보의 중요성과 애매성이 클수록 확산하기 쉽다는 게 공식”이라며 “광우병 사태와 천안함 사건에서 우리 정부는 중요한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기보다 애매성이 높은 수준으로 제공해 국민이 진실을 추론해 가는 과정에서 루머가 생기고 커졌던 것”이라고 분석했다.

조 교수는 “루머가 정치적인 이념에 의해 덧씌워질 경우 논란의 핵심을 보지 않고 서로 자기편 주장만이 옳다고 주장해 평행선을 그리기 쉽다”며 “우리 사회가 좀 더 상대를 인정하는 바탕 위에서 개방된 소통구조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임현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사회적으로 중요한 사건이 발생했을 때 정부 발표가 신뢰를 얻지 못하거나 언론이 모든 궁금증을 해결해 주지 못하는 경우 비공식적으로 루머가 창궐하기 마련”이라고 말했다.

임 교수는 “우리 사회에서 루머를 줄이려면 정부는 가급적 투명하게 정보를 알려 국민의 신뢰를 얻고, 언론은 신속하고 공정하게 사실을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권력이나 돈 위해 루머 만들어

권력이나 돈을 손에 넣으려는 세력은 루머를 적극적으로 이용한다.

아직도 선거철이면 국민을 위하겠다는 자신의 의지와 능력으로 당선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경쟁 후보로 나선 정치인을 깎아 내리는 음해성 루머로 권력을 장악하는 것이 우리의 정치 현실이다.

지난 6.2 지방선거 때도 어김없이 흑색선전과 루머가 난무했다.

한 수원시장 후보는 선거 수개월 전부터 “건강 악화로 사퇴할 것”이라는 내용의 문자메시지가 유권자에게 유포돼 곤욕을 치렀고, 제주도에서는 선거전부터 “한 후보자의 지지자가 돈을 뿌렸다”는 소문이 돌아 경찰이 수사에 나서기도 했다.

수사 결과 두 사건 모두 음해성 루머로 밝혀졌지만, 출처를 알 수 없는 루머로 인해 후보들은 유.무형의 손해를 입었다.

강원도 교육감 후보를 두고 “당선 가능성이 낮아 선거운동을 접었다”는 루머가 퍼져 해당 후보가 기자회견을 열어 사실이 아니라고 해명하는 일도 있었다.

한 국회의원 보좌관은 “선거는 어떻게든 이겨야만 하는 전쟁과 같아서 각 선거 캠프마다 경쟁 후보의 약점을 잡기 위해 과거 행적을 추적하며 정보를 수집한다”며 “약점이 될 만한 과거가 잡히면 먼저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보단 일단 의혹을 제기하고 유포시켜 이미지에 흠집을 내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작전세력’이 루머를 이용해 주가 조작을 하는 사례는 잊힐 만하면 터져 나오는 단골 사건이다.

지난해 7월에는 평범한 가정주부 등이 낀 이른바 ‘생계형’ 주가조작 사례까지 적발됐다.

이들은 유동성이 적어 쉽게 주가를 움직일 수 있는 코스닥 종목을 골라 증권사이트 등에 호재성 글을 게시하는 방법으로 해당 종목의 주가를 띄워 불법 이득을 취한 것으로 밝혀졌다.

또 일부 기업들은 경쟁사들을 쓰러뜨리거나 약화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악성루머를 생산하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 관계자는 “루머는 대부분 근거 없이 퍼지는 것이어서 제대로 대응도 할 수 없어 해당 업체에 어려움만 주고 있다”고 말했다.

안병국 대우증권 투자분석부장은 “증권가에 떠도는 소문 가운데는 작전 세력이 특정 종목의 주가를 끌어올리려고 허위사실을 퍼뜨리거나, 소문이 사실이라도 보유물량을 털려고 일부러 흘리는 경우가 있었다”면서 “그러나 최근엔 금융당국의 감독이 철저해지고 시장도 성숙해져 이런 시도가 쉽게 먹히지 않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임현진 교수는 “국가 이익이라는 명분으로, 당파적 입장에 따라, 경제적 이득을 취하기 위해 정보를 조작하고 왜곡하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게 사실”이라며 “개인들이 정보를 거를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하며 동시에 언론과 포털이 책임감을 느끼고 정확한 정보를 분별해 제공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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