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거리 아니면 안갑니다”

“장거리 아니면 안갑니다”

입력 2010-01-22 00:00
수정 2010-01-22 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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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들 밤만 되면 왜 ‘예약 표시燈’을 켤까

20일 밤 12시 서울 강남역의 씨티극장 앞 대로변. 영하 10도의 추위속에 택시를 잡으려는 시민 수십명과 ‘구미에 맞는’ 손님을 가려 태우려는 택시 10여대가 1개 차로를 점령한 채 승강이를 벌이고 있었다. 기다리다 지친 직장인 여성 3명이 앞 유리에 ‘예약표시등’을 켜고 창문을 반 뼘만큼 내리고 정차한 택시에 다가가 “건대입구까지”라고 외쳤지만, 기사는 이내 고개를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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얌체 택시
얌체 택시 20일 밤 서울 무교동의 도로 가운데까지 걸어나온 한 남성이 예약표시등을 켠 채 영업하는 택시를 향해 행선지를 외치고 있다.
정연호기자 tpgod@seoul.co.kr


몇 분 뒤 또 다른 일행이 행선지를 말하자 기사는 “예약 표시 안 보이냐?”며 짜증을 냈다. 하지만 20분 뒤 한 남성이 “분당”을 외치자 기사는 피우던 담배를 서둘러 끄고 손님을 태운 채 유유히 빠져나갔다. 실제로는 예약 택시가 아닌 것이다.

●허위로 예약 표시등 켜고 승차거부

같은 시간 서울 종로에서도 상황은 비슷했다. 인사동 입구에는 예약표시등을 켜놓은 택시 4대가 줄지어 서 있었다. 기자가 “예약된 차냐?”고 묻자 기사는 곧바로 “어디까지 가요?”라고 되물었다. “안암동”이라고 밝히자 “큰 길로 걸어가서 타라.”고 퉁명스레 말했다. 하지만 종로3가 탑골공원 부근에 예약 표시등을 켜고 서 있는 택시에 “부천까지 간다.”고 말하자 기사는 “미터기에 5000원만 얹으면 바로 출발하겠다.”고 제안했다.

●장거리 손님에도 웃돈 요구

상당수 서울시내 콜택시들이 거짓으로 예약표시등을 켠 채 장거리 손님만 골라 태우는 얌체영업을 하고 있어 시민들이 골탕을 먹고 있다. 경찰도 단속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택시 승차거부는 심야에 시민들이 몰리는 서울 강남역과 역삼동, 종로, 신촌 등에서 기승을 부리고 있다. 택시 3~4대당 1대꼴로 이뤄지고 있다. 택시업계 관계자는 “심야에 택시 20~30%는 승차거부를 한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시민들은 분통을 터뜨린다. 서울로 출퇴근하는 직장인 임시환(35·경기 남양주시)씨는 “회식을 마치고 난 뒤 빈차는 없고 길가엔 예약 택시만 늘어서 있어 혹시나 하는 마음에 행선지를 말했더니 3만원을 주면 가겠다며 거래를 제안하더라.”면서 “울며 겨자 먹기로 탔지만 찜찜한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곽재희(23·서울 잠실동)씨도 “아예 차를 인도에 올려놓고 버젓이 장거리 손님만 태우기도 한다.”고 말했다. 택시 기사들이 승차거부를 하는 이유는 ‘돈이 되는’ 장거리 손님을 태우기 위해서다.

택시기사 김모(51)씨는 “버스가 드문 밤 11시 이후 1~2시간의 피크타임 때 분당 등 장거리 손님을 태워야 밥벌이가 된다. 불법인 줄 알면서도 하는 거다.”며 “하루 14시간씩 운전해도 연료비, 밥값, 카드 수수료 등을 제외하면 한 달에 170만원밖에 벌지 못한다.”고 털어놨다.

지난해 서울시가 운영하는 ‘120 다산콜’에는 택시 승차거부로 신고된 것만 1만 3147건에 이른다. 하지만 이 가운데 실제 과태료나 자격정지를 받은 건수는 각각 1393건, 25건으로 전체의 11%에 불과해 ‘솜방망이 처벌’에 그쳤다.

●단속 한계… 과태료처분 11%그쳐

서울시는 다음달 1일부터 폐쇄회로(CC) TV까지 동원해 승차거부 차량을 색출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예약표시등을 켠 택시의 허위 여부를 구분하기 쉽지 않아 단속이 공염불에 그칠 공산이 크다. 콜택시들이 허위로 예약표시등을 켜놓고 호객행위를 하는 경우 승차거부로 단정하기도 쉽지 않다.

교통정보센터 관계자는 “허위로 예약표시를 한 택시를 CCTV가 촬영했더라도 승차거부를 당한 시민의 신고를 받았을 경우에만 확인을 할 수 있어 단속에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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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헌기자 goseoul@seoul.co.kr
2010-01-22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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