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2월 한국으로 망명한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국제담당 비서가 외아들을 볼모로 삼은 북한 요원으로부터 북한으로 돌아오라는 협박을 받았었다고 김현식 미 조지메이슨대 연구교수가 최근 펴낸 ‘나는 21세기 이념의 유목민’이라는 책자에서 밝혔다.
1992년 한국으로 탈북했다가 2003년 미국으로 건너가 연구·강연 활동을 하고 있는 김 교수는 책에서 자신이 2000년대 초 황씨의 통일정책연구소에서 함께 일하던 어느 날, 황씨가 몹시 당황해하며 아들과의 통화 소식을 알려줬다고 전했다.
아들 경모씨가 “여기가 어딘지는 모르겠는데…아버지, 나 경모입니다. 내가 지금 아픕니다.”고 한 뒤 곧이어 아들의 말이 끊기고 다른 목소리가 “황장엽 비서 동지, 아들이 아직 죽지 않고 살아 있습니다. 비서 동지께서 마음 바로잡고 이쪽으로 넘어오시면 아들도 살고 모든 일이 잘 풀리게 될 것입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대답하십시오. 얼른 말씀하셔야 합니다.”라고 했다는 것.
경모씨는 김일성종합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주체과학연구원 등에서 근무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황씨의 망명 이후 경모씨의 생사에 관해선 2003년까지 여러 가지 소문이 돌았다. 일본 산케이신문은 2003년 10월, 황씨의 방미 기간에 “황씨의 장남이 아오지 탄광에서 다리 골절상을 입어 평양으로 옮겨졌던 사실이 밝혀졌다.”며 “황씨 장남의 ‘사고’가 미국을 방문한 황씨에 대한 협박일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었다. 그러나 한 정통한 북한 내부 소식통은 10일 연합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경모씨는 아버지가 망명한 직후 중국 국경 쪽으로 달아나다 뒤쫓던 국가보위부 요원들의 총격에 사망했다.”고 말해 황씨와 통화한 사람이 실제로 경모씨라는 데 회의를 나타냈다.
연합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