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길회기자의 세상 속으로] ‘마약탈출’ 투쟁 NA모임 참석기

[나길회기자의 세상 속으로] ‘마약탈출’ 투쟁 NA모임 참석기

입력 2006-02-27 00:00
수정 2006-02-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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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은 확률 게임이다. 기적이 아무리 일어나기 어렵다 해도 확률 ‘0’을 ‘1’로 만들면 이길 수 있다. 그리고 이 게임을 승리로 이끄는 가장 큰 무기는 인간의 의지다.

하지만 마약을 끊는 데는 이러한 ‘게임의 룰’이 통하지 않는다. 마약이라는 악마와 잡은 손을 놓는 일은 한 개인의 의지 밖 영역이다. 그래서일까. 수많은 약물중독자들은 단약(斷藥)이라는 결승선에 거의 도착했다가도 용수철 끝에 매달려 있기라도 한 듯 어김없이 출발선으로 돌아가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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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길회(왼쪽에서 세번째) 기자가 약물 의존자 회복을 위한 자조모임 NA의 참가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호정기자 hojeong@seoul.co.kr
나길회(왼쪽에서 세번째) 기자가 약물 의존자 회복을 위한 자조모임 NA의 참가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호정기자 hojeong@seoul.co.kr


포기는 없다. 마약을 끊지 못해 방황하던 이들이 악마와 잡지 않은 나머지 한 손을 나눠 잡았다. 새 삶을 위해 ‘NA모임’이라는 이름으로 모여 서로의 아픔을 말하고 유혹에 빠지지 않게 붙들어 주고 있다.

“마약은 혼자서 끊을 수 없다”는 인식 공유

“저는 중독자 ‘이’입니다.”

화요일 저녁이면 서울 당산동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회의실로 하나둘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한다. 매주 NA모임을 위해 20∼30명이 모여 어색한 인사를 나눈다.NA란 ‘익명의 약물중독자’라는 의미를 가진 ‘Narcotics Anonymous’의 약자. 그래서 이곳에서는 이름 대신 성만으로 서로 부른다. 마음에서 ‘나만은 괜찮겠지.’라는 거짓된 믿음을 걷어내기 위해 스스로 중독자라 부른다.

서로의 이름은 몰라도 상관없다. 마약으로 망가질 대로 망가진 과거 그리고 현재를 경험했다는 것만으로도 이들은 하나가 된다.

“마약은 접하는 순간 병입니다.”

처음 모임에 참석한 50대 중독자는 마약 예방 포스터 문구 같은 말을 시작으로 경험을 털어놓는다. 준비된 연설도, 마약의 위험성을 과장한 것도 아니다. 경험자 모두 눈으로 마음으로 외치는 것이 들렸다.“그렇지. 그걸 진작 알았어야 했는데….”

고아로 자라 앞만 보고 달려온 그는 20년 전 어느 정도 성공한 뒤 쾌락을 좇다 마약에 빠져 가정을 버렸다. 돌아와 보니 자신이 사놓은 마약에 아내가 중독돼 있었다. 아내가 문란한 성생활을 하는 마귀로 변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된 이 남자. 아내 주위 남자들에게 칼을 들이댔고 10년간 감옥 신세를 지고, 바닥에 바닥을 또 친 끝에 ‘살고 싶다.’며 이곳을 찾았다.

NA는 세계적 마약 중독자 자조모임

NA모임은 전세계적인 마약 중독자 혹은 가족의 자조 모임이다.50여년의 역사를 가진 미국에 본사가 있고 일본에서도 25년 전부터 NA모임이 생기기 시작했다.

NA모임의 시초는 1997년 약물중독자 치료소인 국립부곡병원의 조성남 원장이 공주치료감호소에 근무하던 당시 만든 모임이다. 이후 99년 현재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NA모임을 이끌고 있는 임상현(55) 목사가 공주치료감호소에서 출소한 뒤 만든 매월 2째주 화요일에 모인다는 의미 ‘이화회(2화회)’에서 NA모임이 다시 시도됐다.2003년 10월 지금과 같은 NA모임이 시작됐다. 지난해 9월에는 미국 NA본부에 정식등록했다.

우리나라의 NA모임은 서울 한 곳에서만 이뤄질 정도로 걸음마 단계다. 미국에서 마약을 알게 돼 돈, 직장 모든 것을 잃고 귀국한 ‘중독자 정’은 “미국은 커뮤니티마다 NA모임이 활성화돼 있다.”고 말했다.

마약을 권하던 철없는 시절에 가슴을 치다

마약을 접하게 된 계기, 빠진 기간은 제각각이다. 밑바닥 생활에서 마약을 유일한 낙으로 삼으며 본드에서 대마초를 거쳐 필로폰까지 ‘코스’를 밟은 사람도 있고 외국에서 단 한번 호기심에 나락으로 떨어진 이도 있다.

한 번이든 열 번이든 첫경험은 누구에게나 같다. 천국.‘중독자 한’은 “저는 필로폰을 처음 준 사람에게 너무 고마워서 절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좋아하는 사람들만 불러다 함께 했죠. 지금 생각하면 그게 얼마나 끔찍한 짓인지…”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이에 다른 중독자가 “여기 모인 30명이 또 다른 중독자 300명,3000명 만드는 것이 얼마나 쉬운지 우리도 잘 알고 있다. 이제는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도 마약을 끊게 하는 사람이 되자.”고 다독였다.

천국을 엿본 죄는 상상을 초월했다. 아니 그곳은 천국을 가장한 지옥이었다. 남은 것 단 한 톨 없는 상태에서 이곳에 왔다. 그래서 숨길 게 없다. 후유증으로 이가 20개 이상 빠져 버린 얘기도 하고 주사바늘 자국을 보여 주며 과거를 반성한다.“약 하는 꿈을 꾸었는데 깨고 나서도 가슴이 떨렸다.”는 고해성사도 이뤄진다.

“이런 모임이 진작 있었으면…”

가족에게조차 속시원히 털어놓을 수 없어 답답했던 마음이 이곳에서만큼은 편안하다. 중독자임을 그리고 혼자서 절대 끊을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대신 서로 손을 잡으면 고칠 수 있다는 용기를 얻는다. 또 마약 중독자를 이해할 수 없었던 가족들도 이곳에서 달라진다.10년간 마약에 빠져 사는 아들을 둔 엄마는 “이렇게 병이 깊을 줄 몰랐다.”면서 “며칠 전 아이가 또 약을 하다 병원에 입원 중”이라는 얘기로 닫은 입을 열었다. 직접 아들을 신고하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는 그는 “나보다 본인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알겠다.”면서 “이런 모임이 10년 전에도 있었으면 좋았겠다.”며 가슴을 쥐었다.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중국에 가면 담배 사듯 마약을 삽니다. 저도 그랬죠. 처벌보다는 예방에 신경써야 할 때입니다. 교도소 생활요? 마약 전도사 양성소입니다. 처벌보다는 이런 모임을 활성화해야 합니다.” 깊이 반성하지만 할 말을 해야겠다며 목소리를 높인 ‘중독자 유’의 얘기다.

모임이 끝난 다음에는 서로 손을 잡고서 적어도 다시 만날 때까지는 유혹을 뿌리치자고 다짐한다. 그리고 서로 포옹하며 등을 두드려 주고 익명이지만 서로에게 힘이 돼 주겠다는 묵언의 약속을 한다. 사람 의지로는 확률 ‘1’에 다가설 수 없는 마약을 끊는 기적. 그 열쇠는 애정과 관심이었다.

kkirina@seoul.co.kr
2006-02-27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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