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3년부터 매일 아침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역 앞에서 교통정리를 하던 임진국(90) 할아버지가 지난해 9월29일 중풍으로 쓰러졌다. 경찰은 서둘러 병원에 옮겼지만, 왼쪽 팔과 다리의 마비를 막지는 못했다. 그러나 임 할아버지는 걷는 데 무리가 없다며 호루라기를 다시 입에 물었다. 그러나 올 겨울 날씨가 추워지면서 할아버지의 호루라기 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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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국(왼쪽에서 두번째) 할아버지가 주민들로부터 성금을 전달받고 있다. 영등포구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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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국(왼쪽에서 두번째) 할아버지가 주민들로부터 성금을 전달받고 있다. 영등포구제공
영등포역 상가 번영회가 할아버지의 소식을 듣고 돕기에 나섰다. 크리스마스를 이틀 앞둔 지난달 23일, 박내웅 회장 등이 할아버지의 사진을 앞세우고 1200원짜리 미용화장지를 담은 손수레를 밀며 상가를 돌아다녔다. 상인들은 5000원,1만원,5만원씩 내며 할아버지의 쾌유를 빌었다. 그렇게 80여개 상가에서 130만원이 모였다.
“할아버지가 기거하는 쪽방촌을 가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한 명이 누울 만한 여관방에서 몸이 불편한 분이 홀로 계시는 모습이, 너무나 안타깝더군요.”
박 회장은 성금 모금을 시작한 이유를 이렇게 전했다.
지난달 27일 할아버지는 상가 번영회가 건넨 ‘거액의 성금’을 받고 몇 차례나 고개숙여 인사를 했다. 교통안전 자원봉사로 수십 차례 감사장을 받았지만, 생계는 늘 어려웠다. 노인수당 34만원을 받아 월세 16만원을 내고 나면 먹고 살기가 만만치 않았다.
그는 130만원을 모두 저축한다고 했다. 올해 쪽방촌이 철거되면 양평동 ‘노인의 집’으로 이사를 해야 하기 때문이란다. 구청에서 마련해준 곳이지만 그는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고, 새 집에 빈 손으로 들어가면 쓰겠느냐.”고 했다.
할아버지가 자원봉사를 시작한 것은 1963년. 초등학생 3명이 을지로4가 청계천 근처 학교 앞 도로에서 유(U)턴 하던 차에 숨지는 사고를 목격하면서부터다. 그후 매일 아침 6시에 도로로 출근했다. 총각인 그는 교통정리 봉사를 하며 가족 없는 외로움을 달랬다. 이러한 할아버지를 주민들은 ‘영등포구 교통부장관’으로 불렀다. 할아버지는 ‘도로 한가운데서 호루라기를 불며 자동차를 지휘하는 꿈을 아직도 포기하지 않았다.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2006-01-03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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