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문호(24·한국사이버대 2년)씨는 2급 시각장애인이다. 세상의 빛을 완전히 잃은 것은 아니지만 돋보기처럼 생긴 특수현미경이 있어야 간신히 글을 읽고, 다른 사람이나 지팡이의 도움을 받아야 길을 걸을 수 있다. 그가 30일 골프가방을 둘러메고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2일 필라델피아에서 열리는 장애아동돕기 자선 골프대회 참가를 위해서다. 갤러리가 아니라 당당한 선수로서다.
●대회 20년 역사 장애인으로는 첫 초청 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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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돕기 자선 골프대회에 참가하는 송문호씨가 골프 연습장에서 마지막 훈련을 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남상인기자 sangin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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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돕기 자선 골프대회에 참가하는 송문호씨가 골프 연습장에서 마지막 훈련을 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남상인기자 sanginn@seoul.co.kr
송씨는 필라델피아 교민들이 경기도 일산 홀트일산복지타운 장애아동들을 돕기 위해 20년째 열어온 이 자선 골프대회에 장애인으로는 최초로 초청받았다. 주최측이 “장애인을 돕기 위한 행사에 장애인 선수가 출전하면 더 많은 성금이 모일 것”이라며 참가를 요청해 왔다.
눈으로 공을 보지 못하고 손끝 감촉과 육감으로 치는 골프이다 보니 수준급은 못된다. 아주 잘 하면 100타 정도. 골프에 입문한 것 자체도 지난해 10월로 1년이 채 안됐다. 그래서 많이 망설였다. 하지만 비슷한 처지에 있는 어린이들을 돕는다는 뜻에 어렵게 용기를 냈다.
“아직 실력도 변변찮고 해서 큰 욕심은 없어요. 그래도 최선은 다할 겁니다. 용케 성적이 잘 나와주면 다행이고요.”
송씨가 골프를 시작한 것은 지난해 10월. 좀체 외출할 기회가 없는 아들을 위해 아버지가 체력단련용으로 추천했다. 공이 고정돼 있어 다른 운동보다는 쉬울 거란 생각에서였다.13평짜리 임대아파트에 살고 있는 어려운 형편을 감안하면 꿈꾸기 힘든 운동이었지만 다행히 구립스포츠센터에서 월 8만원에 골프지도를 해주고 있었다.
처음 스포츠센터를 찾은 날 골프코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공 대신 바닥을 칠 경우 잘못하면 팔이 부러질 수도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의 고집을 꺾지는 못했다. 얼마 후 시각장애인이 골프를 배운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골프채가 선물로 들어왔고 골프장 입장료를 무료로 내주겠다는 사람들도 나타났다.
“시각장애인들은 긴장하고 위축돼 있기 쉬운데 골프를 배우면서 매사에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공을 때리는 순간의 성취감도 너무나 상쾌하고요.”
●92년 뇌종양 앓아 시력 잃어… 사이버大 장학생
그가 시력을 잃은 것은 1992년 여름. 심한 두통에 시달리던 초등학교 5학년 어린이에게 뇌종양 진단이 내려졌다. 생명은 건졌지만 대가가 컸다. 의사는 시신경이 손상돼 영원히 앞을 못볼 것이라고 했다. 약간의 시신경이 기적적으로 살아남아 실낱같은 희망의 빛을 남겨놓았다.
시력을 잃기 전에는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았다. 그런 오기로 장애인학교에 가지 않고 일반 중·고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
약해진 체력 때문에 오래 집중할 수 없어 일반대학 진학은 포기했다. 대신 지난해 연세대가 만든 한국사이버대학 컴퓨터정보통신학부에 수석으로 입학했다. 지금까지 만점에 가까운 학점으로 매학기 장학금을 받고 있다.
“과거에 대한 미련은 버리고 앞만 보며 살아야죠. 인생을 ‘덤’으로 살거나 비장애인의 일방적인 이해를 바라지도 않을 겁니다. 오히려 일반인의 영역에 도전해 보고 싶어요. 앞으로 시각장애인 특유의 집중력을 발휘할 수 있는 사격에 도전할 생각도 갖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