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의 후손인 이동석(61·경북 안동시 송현동)씨와 권대용(58·안동시 송현동)씨 등 2명은 ‘한일병합’95주년인 29일이 남다르다.
이씨의 고조부인 향산 이만도(1842∼1910) 선생은 독립운동의 성지인 안동지역의 대표적인 독립운동가다.
이씨는 “고조부께서는 1895년 명성황후 시해사건 직후 안동에서 을미의병을 주도적으로 이끌기도 했으며 한일병합에 항의, 단식을 하다 목숨을 끊었다.”며 “아직까지도 친일파와 그 후손이 발호하고 있는 현실을 아신다면 얼마나 통탄하실지 그저 부끄러울 뿐이다.”고 울분을 토했다. 그는 “3대에 걸쳐 8명이 건국훈장을 추서받은 집안의 후손이라는 것이 자랑스럽지만 국치일이 돌아오면 고조 할아버지의 의로운 죽움이 새삼 가슴을 저민다.”고 말했다.
이씨와 절친하게 지내는 또 다른 독립운동가 후손 권씨는 나라를 빼앗긴 치욕적인 날을 잊지 말자는 뜻에서 휴대전화 중간 번호가 829번이다.
천석꾼 부자였던 그의 조부 추산 권기일(1886∼1920) 선생은 한일병합 2년후인 1912년 초 전 재산을 처분해 만주로 가서 독립군기지 건설, 교육활동 등에 힘쓰다가 1920년 8월 신흥무관학교 부근 수수밭에서 일본군에 무참히 살해됐다.
추산선생은 후손에게 가난을 남겨 주었지만 권씨는 한번도 조상을 원망해 본 적이 없다. 권씨의 아버지는 안동에서 손수레를 끌며 간장을 팔아 연명해야 했고 권씨는 중학교 1학년을 휴학한 이후 생활전선에서 뛰고 있다. 이씨는 “나라를 빼앗기는 치욕의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국민 모두가 국치일의 의미를 뼛속 깊이 새겼으면 한다.”고 말했다.
안동 한찬규기자 cghan@seoul.co.kr
이씨의 고조부인 향산 이만도(1842∼1910) 선생은 독립운동의 성지인 안동지역의 대표적인 독립운동가다.
이씨는 “고조부께서는 1895년 명성황후 시해사건 직후 안동에서 을미의병을 주도적으로 이끌기도 했으며 한일병합에 항의, 단식을 하다 목숨을 끊었다.”며 “아직까지도 친일파와 그 후손이 발호하고 있는 현실을 아신다면 얼마나 통탄하실지 그저 부끄러울 뿐이다.”고 울분을 토했다. 그는 “3대에 걸쳐 8명이 건국훈장을 추서받은 집안의 후손이라는 것이 자랑스럽지만 국치일이 돌아오면 고조 할아버지의 의로운 죽움이 새삼 가슴을 저민다.”고 말했다.
이씨와 절친하게 지내는 또 다른 독립운동가 후손 권씨는 나라를 빼앗긴 치욕적인 날을 잊지 말자는 뜻에서 휴대전화 중간 번호가 829번이다.
천석꾼 부자였던 그의 조부 추산 권기일(1886∼1920) 선생은 한일병합 2년후인 1912년 초 전 재산을 처분해 만주로 가서 독립군기지 건설, 교육활동 등에 힘쓰다가 1920년 8월 신흥무관학교 부근 수수밭에서 일본군에 무참히 살해됐다.
추산선생은 후손에게 가난을 남겨 주었지만 권씨는 한번도 조상을 원망해 본 적이 없다. 권씨의 아버지는 안동에서 손수레를 끌며 간장을 팔아 연명해야 했고 권씨는 중학교 1학년을 휴학한 이후 생활전선에서 뛰고 있다. 이씨는 “나라를 빼앗기는 치욕의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국민 모두가 국치일의 의미를 뼛속 깊이 새겼으면 한다.”고 말했다.
안동 한찬규기자 cghan@seoul.co.kr
2005-08-29 24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