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세상] 길거리 내몰린 ‘쪽방 혜선이’…세밑을 울렸다

[나눔세상] 길거리 내몰린 ‘쪽방 혜선이’…세밑을 울렸다

입력 2004-12-31 00:00
수정 2004-12-31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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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동설한에 길거리로 내몰린 용산 재개발지역 쪽방촌 남매의 사연에 시민들은 분노했다. 하지만 분노는 곧 남매가 자라나면서 세상을 원망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자각으로 바뀌었다. 안타까운 소식이 알려진 30일 남매에게는 따뜻한 위로와 도움의 손길이 답지했다. 남매는 이날 세상이 각박하지만은 않다는 믿음을 되찾을 수 있었다. 서울 용산구 용산5가동 19 재개발 철거촌에서 살던 쪽방이 29일 법원의 명도집행으로 모두 헐린 세호(10)와 혜선(8·여)이 남매는 지난밤을 할머니 김옥순(66)씨가 몸져누운 용산구 한강로3가 용산외과병원 306호에서 보냈다. <서울신문 12월29일자 10면·30일자 12면 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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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용산구 용산5가동 재개발지역 쪽방이 철거되는 바람에 갈 곳을 잃은 혜선(오른쪽)이와 세호 남매가 30일 병원에 몸져누운 할머니 김옥순씨를 돌보고 있다.
 김명국기자 daunso@seoul.co.kr
서울 용산구 용산5가동 재개발지역 쪽방이 철거되는 바람에 갈 곳을 잃은 혜선(오른쪽)이와 세호 남매가 30일 병원에 몸져누운 할머니 김옥순씨를 돌보고 있다.
김명국기자 daunso@seoul.co.kr
좁은 보조침대에 모로 누웠지만 남매는 억울함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꼭 껴안고 울기만 했다. 겨울방학을 맞은 남매는 또래 친구들이 스키장이다, 놀이공원이다 놀 궁리에 골몰할 때 당장 오늘 몸 누일 곳을 고민해야 하는 처지다.

하지만 보도가 나간 뒤 생전 처음보는 어른들이 하나둘씩 병원을 찾아오기 시작했다. 중구 을지로4가에서 인쇄소를 운영하는 최철진(33)씨는 “서울신문에서 본 혜선이의 모습이 네살짜리 딸아이와 비슷해 안타까운 마음에 찾아왔다.”고 말했다. 최씨는 병상에 누워 있는 김씨에게 남매가 입을 내복과 함께 성금 10만원을 손에 꼭 쥐어줬다. 회사원 진철승(37)씨도 병원을 찾아 쌀 20㎏과 성금 10만원을 전달했다.

인터넷에서도 도움을 주자는 목소리가 빗발쳤다. 인터넷 서울신문에는 이날 오후 10시 현재 100여개의 대글이 달렸다. 포털사이트 네이버에는 같은 시간 2500여개의 대글이 몰려들었다. 청와대 게시판과 쪽방촌 관할 용산구청에도 글이 올라 강제집행을 비난하고 남매를 도울 길을 찾자고 입을 모았다. 평소 은행 갈 일이 없어 통장도 하나 없었던 김 할머니는 이날 네티즌의 아우성에 급하게 은행 계좌를 만들었다. 오후 10시 현재 김 할머니의 계좌에는 600여명의 시민이 모두 1740만 368원의 성금을 보내왔다.

ID ‘희망천사’는 “저도 아이를 키우는 가장이라 그냥 넘길 수 없어 겨우 한 끼 밥값 정도밖에 보탤 수 없는 형편이지만 도움을 전했다.”고 말했다.‘훌쩍’은 “연말에 술 한잔 안 하는 셈치고 송금했다.”면서 “아이들이 실의에 빠지지 않고 잘 자랄 수 있길 기원한다.”고 전했다.

김 할머니는 “이제까지 베푼 것 하나없이 살아온 우리 가족에게 이런 도움의 손길을 주니 몸둘 바를 모르겠다.”며 눈물을 흘렸다. 남매도 이날 오후만큼은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한편 쪽방촌 주민 30여명은 이날 오전 10시쯤부터 용산구청 앞에 천막을 치고 “갈 곳 없는 주민들을 위한 가수용시설을 만들어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오후 4시30분쯤 경찰과 구청 직원 100여명이 들이닥쳐 천막을 모두 철거했다.

세호와 혜선이 남매의 후원계좌는 우리은행 1002-280-510211(예금주 김옥순).

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2004-12-31 3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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