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 산타’ 시대

‘사이버 산타’ 시대

입력 2004-12-22 00:00
수정 2004-12-22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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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여주에 사는 초등학교 1학년인 여원(7)이는 겨울이 싫다. 할머니(73)·오빠(10)와 살고 있는 단칸 전세방은 겨울이면 너무 추워 잠이 오지 않는다. 화장실도 없어 아침이면 공동세면장에서 꽁꽁 언 손을 호호 불며 세수를 한다. 그나마도 집주인이 방을 비워달라고 하는 통에 아이답지 않은 근심까지 늘었다. 예쁜 목도리며 벙어리 장갑을 끼고 자랑하는 친구들을 보면 5년 전 집을 나간 엄마와 카드빚에 쫓겨 1년에 서너번 집에 오는 아빠의 빈자리가 더 커진다.

여원이는 크리스마스를 손꼽아 기다린다. 이달 초 ‘목도리 장갑 세트를 갖고 싶어요.’라는 ‘소원’을 구세군의 사이버 크리스마스 트리인 ‘엔젤트리’에 매달았기 때문. 곧 새 장갑과 목도리를 친구들에게 자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사랑의 자선냄비
사랑의 자선냄비 사랑의 자선냄비
전국 30여곳 공부방 어린이 대상

‘자선냄비’로 대표되는 구세군의 연말 모금 활동이 휴대전화 및 신용카드 기부, 인터넷 자선냄비 등으로 크게 다양해지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이벤트가 구세군이 네이트닷컴과 함께 벌이는 ‘엔젤트리’. 구세군이 저소득층이나 편부모 자녀를 위해 전국 30여곳에서 운영하고 있는 공부방 어린이들이 대상이다. 어린이들이 받고 싶다고 지정한 선물을 네티즌이 직접 골라 보내준다.

몇 차례 클릭으로 누구나 ‘여원이의 산타클로스’가 될 수 있다. 후원자가 어린이에게 선물을 안겨주는 색다른 방식의 기부에 보람도 커진다.

‘엔젤트리’ 사이트(events.nate.com/jasunnambi)에 들어가면 크리스마스 트리가 나타난다. 나무에 매달려 있는 15개의 선물에 마우스를 대면 각각 어린이 이름과 나이, 소속 공부방, 받고 싶은 선물이 적힌 ‘소원쪽지’가 뜬다. 이 가운데 하나를 골라 클릭하면 바로 추천선물 목록이 있는 인터넷쇼핑몰로 건너간다. 몇천원에서 몇만원까지 다양한 가격대의 선물을 구입한 뒤 배송지를 나와 있는 구세군 담당자의 주소로 지정하면 원스톱으로 선물 전달 끝. 물론 인터넷 쇼핑몰을 이용하지 않고 개인적으로 구입하거나 쓰던 물건을 포장해 보내도 상관없다. 선물을 받을 어린이의 목록은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되고 있다.

“마음 느껴져 행복해요”

구세군은 신청을 22일 마무리하고 크리스마스 이전에 어린이들에게 모두 전달하기로 했다.21일까지 이미 40여명의 어린이가 선물을 받았다. 사이트에서는 선물을 받은 어린이들이 기뻐하는 모습도 확인할 수 있다.

지난 15일 강아지 인형을 선물받은 지현(10)이는 “가장 먼저 선물을 받아 친구들이 많이 부러워했다.”면서 “보내주신 분의 마음까지 함께 느낄 수 있어 너무 행복했다.”고 좋아했다. 여주 공부방의 서미경(34) 교사는 “이런 선물은 단순히 돈이 아니라 개인 후원자의 사랑과 정성이 그대로 담겨 있어 정을 그리워하는 아이들이 더 좋아한다.”고 말했다. 구세군 관계자는 “백화점 크리스마스 트리에 카드를 매달던 엔젤트리 이벤트를 온라인으로 옮겨오자 호응이 크게 늘었다.”면서 “아이들에게 전달할 선물 가운데는 수십만원짜리 위인전집이 있다.”고 귀띔했다.

부산서 익명 남성 2000만원 쾌척

이밖에 올해는 구세군의 ARS(060-700-9390) 모금도 크게 늘었다. 지난해는 700만원 정도에 그쳤지만 올해는 마감을 사흘 앞둔 21일 이미 1000만원을 훌쩍 넘었다. 고속도로 톨게이트 모금과 카드 기부도 늘어나는 추세라고 한다.

자선냄비에 쏟아지는 익명의 온정도 여전하다. 지난 16일에는 50대 중반의 남성이 부산 서면역 입구에 설치된 자선냄비에 2000만원짜리 수표를 넣고 홀연히 사라졌다.

부산·경남지방본부 박하용 사관은 “그분은 수표가 든 봉투를 1000원짜리에 숨겨 자선냄비에 넣었다.”고 전했다.

극심한 불경기 속에서도 전체 모금액은 지난 20일 현재 지난해보다 7%가 늘었다. 구세군은 올해 목표액 24억원을 무난히 달성할 것으로 보고 있다. 임민영 간사는 “거액 기부자는 줄었지만 소액 기부는 오히려 늘었다.”면서 “우리 사회의 따뜻한 마음은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도 줄지 않을 것으로 굳게 믿고 있다.”고 모금에 참여한 시민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이효용기자 utility@seoul.co.kr
2004-12-22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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