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북부지법 본관 3층 이혼상담실. 머리가 희끗한 곽윤배(70) 조정위원이 ‘예비 이혼부부’ 하모(35)·이모(32)씨에게 ‘인생선배’로서 진지하게 충고를 하고 있었다. 세 사람은 ‘협의이혼 전 상담제도’에 따라 한자리에 마주 앉은 것. 이 제도는 판사가 이혼의사를 확인하면 불과 10분 만에 법적으로 완전히 남남이 되어버리는 협의이혼의 문제를 보완하고자 북부지법이 지난 4월 독자적으로 도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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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실시 이후 358쌍이 상담받아
시선을 외면한 채 나란히 앉은 부부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곽 위원이 “이혼으로 가장 고통받는 것은 자녀라는 사실을 아느냐.”면서 “다섯살짜리 아들은 어떻게 키울 것이냐.”고 물었다. 아내는 곽 위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눈시울이 붉어지기 시작했다.
“남편이 1997년 외환위기 때 사업에 실패한 뒤 직장을 알아볼 생각도 하지 않아요. 빚은 쌓여만 가는데….”“아내가 무능력하다며 무시합니다. 게다가 종교에 깊이 빠져 집안도 돌보지 않아요.” 부부의 넋두리는 30분이 넘게 이어졌다. 오랫동안 막혀 있던 대화의 물꼬가 터지면서 부부의 굳은 표정도 조금씩 누그러졌다.
“이혼은 언제라도 할 수 있어요. 그러나 이혼하고 겪을 고통은 후회해도 돌이킬 수 없습니다. 정말 더 이상의 해결 방법이 없는지 묻고 또 물으세요. 오늘 두 사람이 겪는 ‘위기’가 내일의 ‘추억’이 될 수도 있어요.”
끈질긴 설득 끝에 아내가 먼저 “마음속 응어리를 쏟아내고 나니 후련하다.”면서 “다시 생각해 보겠다.”고 일어섰다. 남편도 고개를 끄덕이며 이혼서류를 슬그머니 상담실에 놔둔 채 따라 나섰다.
북부지법은 이혼에 합의한 부부가 법원에서 확인절차를 밟기 전에 상담을 받도록 권고하고 있다. 지난 4월1일부터 9월20일 사이에 협의이혼을 신청한 부부는 모두 3361쌍. 강제규정이 아닌 만큼 이 가운데 10.7%인 358쌍만이 상담을 받았다. 하지만 상담을 한 부부의 15%인 53쌍은 하씨 부부처럼 이혼을 포기했다.
●조정위원중 18명이 전직 교장선생님
윤우진 수석부장판사는 “협의이혼이 급증하는데도 판사들은 기계적으로 이혼의사를 확인할 뿐이었다.”면서 “이혼숙려제도를 도입하는 입법이 이루어지기 전이라도 법원이 자체적으로 충동적 이혼을 막을 방안을 찾아야 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전체 이혼에서 협의이혼의 비율은 86%, 재판이혼은 14%로 나타났다. 지난 2월 김목민 법원장이 부임하면서 협의이혼부부를 위한 이혼상담제도 준비는 본격화됐다. 김 법원장은 지난해 12월 전주지법에 이 제도를 국내 처음으로 도입했다.
유준열 호적계장은 “이혼서류를 접수할 때 머뭇거리거나 맞벌이로 자녀양육이 어려울 것 같은 부부에게 상담을 권한다.”고 설명했다.
협의이혼하려는 부부를 설득하는 역할을 맡고 있는 조정위원은 초·중·고 교장 출신 18명이다. 하루에 한 사람씩 상담실에 나와 평균 5∼6쌍의 부부를 맞는다. 양재우(68) 조정위원은 “30대 부부가 많은데 일부는 자존심·감정싸움을 하다 이혼 얘기까지 오간 것”이라면서 “남편과 아내를 따로 불러 속마음을 다독거리고, 자녀들 장래를 걱정하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화해 분위기가 조성되는 것이 보통”이라고 말했다.
●법적 강제력 없고 예산적어 아쉬움
그러나 이혼상담제도가 법적 강제력이 없다는 점은 한계다. 박철 판사는 “대부분 상처가 깊이 곪은 상태에서 법원을 찾는 데다 전문가와 가정문제를 상담한 경험이 없어 부담을 갖는다.”면서 “상담이 꼭 필요해도 이혼 당사자가 강력히 거부하면 강제할 방법이 없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예산이 부족한 것도 어려움이다. 전주지법은 상담위원에게 하루 7만원씩 지급하기가 벅차 지난달부터 상담을 매주 한 차례로 대폭 줄였다. 북부지법 조정위원들도 무료로 상담을 하고 있다.
윤우진 수석부장은 25일 “예산만 넉넉하다면 가정·심리학을 전공한 전문가를 상담자로 초청해 더 많은 부부에게 이혼에 이르지 않는 방안을 제시해 주고 싶다.”고 희망했다.
정은주 박경호기자 ejung@seoul.co.kr
2004-10-26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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