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라면이란다. 이른바 ‘쓰레기 단무지’로 만든 불량 만두에 이어 유통기한이 지난 김치를 주원료로 한 라면이 충격을 주는 것은,한국인에게 이들 먹을거리가 밥과 다름없는 주식(主食)의 반열에 오른 지 오래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아직은 라면에 만두라도 서너개 넣을 수 있는 형편인 것을 다행스러워하며 김치나 단무지를 나누어 먹었던 서민들이 느끼는 상실감은 엄청날 수밖에 없다.
검찰과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이 10일 밝힌 단속 내용을 보면 이제 한국은 마음놓고 먹을 수 있는 음식이라고는 단 한 가지도 찾기 어려운 나라가 됐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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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의 라면에 들어간 김치는 유통기한이 지난 것은 물론 중국산을 한국산으로 둔갑시키기까지 했다.이 김치는 고속도로 휴게소의 국수를 공급하는 업체에도 속여서 팔았다.뿐만 아니다.우리밀 살리기운동이 벌어지면서 전국에 설립된 국산농산물 전문매장에 공급된 ‘우리’ 통밀스낵에는 미국산 깐밀이 40%나 들어 있었다.농촌살리기단체와 대형할인매장,종교단체 매장에 공급된 통단팥빵과 팥찐빵에도 중국산 팥앙금이 40%나 쓰였다.
‘순국산고춧가루 100%’라고 표시된 고춧가루는 국산고추에 중국산고추도 아닌 고추씨만 역시 40%나 들어갔다.대형 식품유통업체에서 판매된 돼지갈비는 국산돼지고기 40%에 수입산 돼지고기 60%가 섞였다.
임산부의 산후조리에 효과가 있다는 호박액과 호박죽도 베트남과 뉴질랜드산 수입호박을 섞어 ‘신토불이’와는 거리가 멀었다.우리 몸에는 우리농산물이 좋을 것이라는 소비자의 기대를 배반하고,우리농산물이 수입농산물보다 훨씬 비싸더라도 우리 농가를 살리겠다는 애국심을 철저히 능욕한 셈이다. ‘김치 사건’이 터진 이날 전북에서는 치킨집과 피자집,제과점에서 쓰는 포장용지에서 ‘형광증백제’가 검출됐다.형광증백제란 종이나 섬유를 하얗게 보이게 하려고 첨가하는 약품으로 피부에 부작용을 일으키는 것은 물론 발암물질 논란까지 일고 있다.
이에 앞서 지난 4일에는 볼트를 넣어 무게를 부풀린 중국산 냉동참조기가 국립수산물품질검사원에 적발됐다.지난달 19일에는 운동장에 깔거나 얼어붙은 도로에 염화칼슘 대신 뿌리는 공업용 소금을 식용으로 유통시킨 수입업자와 이 소금으로 젓갈을 만들어 판 식품가공업자가 붙들렸다.
지난 2월에는 인체에 치명적인 납땜과 공업용 본드가 묻어나는 불량 떡시루를 만들어 판 업소와 이 불량 시루를 다시 공업용 본드로 수리하여 떡을 만든 떡집이 단속에 걸렸다.
지난해 연말에는 공중화장실을 청소할 때 쓰는 공업용 이산화염소로 살균한 횟감용 한치와 문어가 백화점과 일식당 등에 유통되기도 했다.식품 안전 관리가 선진화하기는커녕 엉터리 식품 제조 수법이 갈수록 엽기화하고 있다.
한국 사회의 각 부문이 조금씩 선진화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지만,가장 먼저 선진대열에 합류했어야 할 식품 안전이 뒷걸음질치고 있는 것은 부끄러움에 앞서 생명의 위협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하다.지난해 864t의 한국산 냉동만두를 수입한 일본정부가 이날 수입금지 조치를 내린 것은 결국 한국의 엉터리 식품 관리가 국제적 망신으로 비화했음을 뜻한다.
서동철기자 dcsuh@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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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6-11 3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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