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급한 중국 vs 느긋한 북한’…패싱 우려에 여전히 속타는 중국

‘조급한 중국 vs 느긋한 북한’…패싱 우려에 여전히 속타는 중국

신성은 기자
입력 2018-05-04 09:23
수정 2018-05-04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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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중요문제에 북중 견해 재확인”…종전선언 中참여 ‘이견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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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3일 왕이(王毅) 중국 외교 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을 만나 담화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4일 보도했다.  연합뉴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3일 왕이(王毅) 중국 외교 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을 만나 담화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4일 보도했다.
연합뉴스
중국이 왕이(王毅)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을 북한에 급파해 한반도 평화구축 과정의 1차 관문이라고 할 ‘종전선언’에 소외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였지만 결과는 여전히 불투명해 보인다.

특히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차이나 패싱’(중국 배제) 우려를 불식시키려 다급히 북한을 방문한 왕 국무위원이 사실상 빈손으로 귀국했다는 평가마저 나오고 있다.

실제 왕 국무위원이 3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만난 데 대해 중국 외교부가 직접 나서 웨이보(微博·중국판 트위터)로 대화 내용을 신속하고 상세히 소개했으나, 그와 관련한 북한의 반응과는 ‘온도 차’가 있다.

중국이 남북과 미국 위주로 돌아가는 한반도 문제에서 배제될 것을 우려해 조급한 것과 달리 북한은 비교적 느긋한 입장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중국이 거의 실시간으로 김정은-왕이 회동을 알린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로, 세간의 차이나 패싱 우려를 불식하려는 조치라는 분석이 나온다.

남북 정상이 회담에서 연내 종전선언과 그와 관련해 ‘3자 또는 4자 회담’을 하자는 쪽으로 의견을 모은 뒤로 중국은 종전선언 논의는 남·북·미·중 4자 논의를 거쳐야 한다는 입장을 분명하게 피력하면서 이를 관철하겠다는 의지를 비쳐왔다.

자오퉁(趙通) 칭화대-카네기 세계정책센터 연구원은 1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인터뷰에서 “중국은 한반도 평화협상에서 자리를 차지하지 못할까봐 우려할 수 있다”며 “왕 국무위원은 중국이 포함되는 4자회담이 성사될 수 있도록 북한을 설득하는 작업을 벌일 것”이라고 분석한 것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중국 외교부장으로는 11년 만에 방북한 왕이 외교부장은 중국 수뇌부의 차이나 패싱 우려를 전달하고 조율을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김정은-왕이 면담 후 중국 외교부가 공개한 자료를 봐도 자국이 종전선언을 포함한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과정에서 배제될 수 없다는 절박감이 묻어났다.

중국 외교부의 발표 내용에는 북한이 한반도 문제에 대한 중국의 공헌을 ‘높이 평가’(高度評價)했다는 것을 강조하며 ‘중국 배제론’을 불식시키려 안간힘을 쓴 흔적이 역력했다.

중국은 왕 국무위원의 방북이 한반도 종전선언의 주체를 3자, 또는 4자로 할지에 대한 물음에 간접적으로 회신한 것으로 여기고 있다. 종전선언이든, 평화체제 구축이든 중국도 남북한, 미국과 함께 4자 체제로 진행하고 싶다는 것이다.

왕 국무위원은 우선 김 위원장에게 “한반도 문제의 정치적 해결에 도움이 되는 계기를 제공했다”고 한껏 띄워 작금의 긍정적인 한반도 정세 변화의 주역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중국은 한반도 종전과 정전체제에서 평화체제로의 전환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왕 국무위원의 이 발언은 종전선언과 평화체제 논의에 중국이 빠질 수 없다는 점을 역설한 것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를 근거로 왕 국무위원이 김 위원장에게 그와 관련된 ‘중국의 역할론’을 강조했음을 추론해볼 수 있다.

이는 또한 자칫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 과정에 참여하지 못하거나, 참여하더라도 피동적인 신세가 될 수도 있음을 시사한 셈이어서 중국으로서는 이런 우려를 조기에 불식하는 일이 중요한 외교 과제가 된 것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도 당장 이날 중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와 전화통화를 하고 북한 문제에 대해 협의할 예정이며 최대한 이른 시기에 평양 답방을 통해 김 위원장과 2차 북중 정상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해 애쓰고 있다.

중국내 전문가들도 한반도 문제에서 중국 역할론을 일제히 강조하고 나섰다.

주펑(朱鋒) 난징(南京)대 국제관계연구원 교수는 “남북정상회담과 판문점 선언의 성과는 비핵화를 단지 구두로 확인하고 서면으로 보증한 것일 뿐”이라며 “비핵화의 실제 행동이 더 중요하다고 할 때 여기엔 반드시 국제사회의 협력이 있어야 하며 중국의 참여는 불가결하다”고 말했다.

‘신화 국제헤드라인’도 웨이신(微信) 평론을 통해 “한반도 비핵화 실현과 평화체제 구축, 다자간 역내 현안에 중국의 참여를떼놓고 생각할 수 없다”며 “중국이 제시한 쌍궤병행(雙軌竝行·한반도 비핵화 프로세스와 북미 평화협정 협상) 방안의 정확성과 타당성이 입증된 만큼 한반도 평화 실현에는 중국의 방안과 지혜의 필요성이 더욱 커진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북한의 반응은 미적지근했다.

김정은 위원장이 3일 왕 국무위원을 만났지만 화끈한 답변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중앙통신이 4일 김 위원장의 왕 국무위원 면담 소식을 전하면서 “조중 두 나라 사이의 단결과 전통적인 친선협조 관계를전면적으로 계승하고 심화·발전시킬 데 대해서와 조선반도 정세 흐름의 발전 방향과 전망을 비롯한 호상 관심사로 되는 문제들에 대한 폭넓고 깊이 있는 의견 교환이 있었다”고 밝혔다.

김정은 위원장과 중국의 고위 인사가 만나면 항상 나오는 의례적인 표현이다.

특히 조선중앙통신은 “최고영도자 동지께서는 왕이 동지와 훌륭한 담화를 나누면서 중요한 문제들에 대한 조중(북중)의 견해를 재확인하고 의견을 교환한 데 대하여 커다란 만족을 표시하셨다”고 소개했다.

외교적 수사로 볼 때 상대의 견해를 재확인했다는 것은 특정 사안들에 대해선 서로 이견을 보였다는 의미라는 점에서, 종전선언 3자 또는 4자 회담에 대한 의견이 달랐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그와 관련해 만약 김 위원장이 중국 측의 입장에 수긍하고 의견 접근이 있었다면, 북중 간 외교적 수사의 전례로 미뤄 조선중앙통신이 ‘견해 일치’ 등의 표현을 사용했을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김 위원장과 왕 국무위원이 회담하면서 각자의 입장을 밝히고 합의에는 도달하지 못했음을 짐작게 한다.

결국 김 위원장은 중국 측의 4자회담 참여 요구에 원칙적인 입장만 밝히는 외교적 모호성을 유지함으로써 앞으로 이어질 북중관계에서 지렛대로 활용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 아니냐는 관측을 낳는다.

북한 입장에서는 남북정상회담에 이어 북미정상회담을 앞둔 시점에서 한국과 미국의 동의 없이 한반도 문제에서 중국을 포함한 ‘4자 체제’에 대한 긍정적 입장을 표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또 북한은 현재 모든 역량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담판에 집중해야 하기 때문에 중국의 입김을 강화하는 행동을 해야 할 필요가 없는 상황이다

조선중앙통신의 보도에서도 김 위원장은 북중 우호관계를 강조하며 중국의 참여 여부를 거론하지 않고 원론적인 수준의 발언을 한 것에서도 이런 입장이 잘 드러난다.

정재흥 세종연구소 연구위원은 “북미정상회담을 앞둔 상황에서 북한이나 중국이나 한반도 평화 논의를 3자냐, 4자냐 어느 한쪽으로 결론을 내리기 어려울 것”이라며 “일단 북중 양쪽 모두 이 문제를 모호하게 해놓고 앞으로 상황을 보면서 논의해 가겠다는 것일 수 있다”고 말했다.

문일현 중국 정법대 교수도 “북한은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미중간 싸움에 끼어들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에 가급적 원론적인 입장만 언급하려 할 것”이라며 “3자 또는 4자간의 한반도 문제 해결 입장이 북한 혼자서 결정한 사항이 아니라 남북간, 또 미국과도 조율된 내용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북한이 입장을 표명하기에 난감한 상황으로 보인다”고 풀이했다.

‘차이나 패싱’ 우려에도 한반도 문제에서 중국의 영향력은 여전하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중국 지린대 쑨싱제(孫興傑) 국제관계학과 교수는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왕 국무위원의 방북은 격변하는 한반도 정세 속에서 중국의 중요성을 재확인했으며, 중국이 소외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했다”고 분석했다.

루차오(呂超) 랴오닝 성 사회과학원 한반도연구센터 주임은 북한의 경제개발에 대한 중국의 지원 약속이 유엔의 대북제재를 위반하는 것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는 “중국의 지원 약속과 관계 개선은 핵개발 프로그램을 포기하고 경제발전에 매진하겠다는 북한의 약속에 따른 것”이라며“대북제재는 여전히 유효하며 중국은 이를 따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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