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비밀화원으로 떠납니다… 은빛 가을바다와 인사하셨나요 [강동삼의 벅차오름]

나만의 비밀화원으로 떠납니다… 은빛 가을바다와 인사하셨나요 [강동삼의 벅차오름]

강동삼 기자
강동삼 기자
입력 2024-11-09 01:01
수정 2024-11-09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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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시 안덕면 상천리 산 83 마보기오름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핀크스골프장 일대의 전경. 제주 강동삼 기자
서귀포시 안덕면 상천리 산 83 마보기오름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핀크스골프장 일대의 전경. 제주 강동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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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보기오름 정상 남쪽으로 펼쳐지는 주변 오름 안내도. 제주 강동삼 기자
마보기오름 정상 남쪽으로 펼쳐지는 주변 오름 안내도. 제주 강동삼 기자


# 오름을 사랑했던 故 김영갑 선생에겐… 오름은 찻집이고 레스토랑이고 비밀화원이었다‘그곳에 있는 한 나는 정녕 자유로웠습니다. 사람과 사람이 모여 사는 곳에서 지켜야 할 예의범절에서도 놓여날 수 있었습니다. 시기, 질투, 다툼, 불평, 불만, 사람 사는 곳이면 어디나 존재하는 그 어떤 것들도 비밀의 화원에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지켜야 할 것이 있다면, 키 작은 풀이나 곤충들의 목숨을 다치지 않도록 조심하거나, 들짐승이 놀라지 않게 하는 일 정도였습니다.

도시의 친구들이 그리워져 울적할 때면, 나는 나만의 비밀화원으로 내달립니다. 도시의 풍족함과 편리함이 간절해질 때면, 나는 또 나만의 비밀화원을 찾아 그 안에서 노래하고, 춤추고, 뒹굴며, 울고 웃노라면 어느새 내 머릿 속에서 도시의 기억들은 말갛게 지워져 버립니다. 살아가면서 불현듯 내게 다가오는 권태로움과 우울, 울적함이 내 삶의 리듬을 흐트러뜨릴 때면 나는 그곳에서 풀과 나무와 구름과 싸우고 화해하는 가운데 나의 어리석음을 돌아봅니다. 참기 힘든 분노, 좌절, 절망이 나를 힘들게 할 때면, 나는 나만의 비밀화원에서 눈, 비, 안개, 바람에 젖고 시달리는 축복을 통해 하찮은 내 존재를 다시금 확인합니다.

도시에서 살던 때 슬픈 날이면 찾아가던 카페와 기쁜 날이면 기쁜 날대로 들르던 찻집, 날씨가 꾸물대는 날이면 친구들과 모여 맥주 한잔 마시던 레스토랑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대자연 속에 지내는 동안, 나만의 비밀화원은 내 기분과 날씨에 따라 찾아가던 카페이자 찻집이고 레스토랑이었습니다.

도시의 레스토랑이나 카페에서는 나 잘났다고 우쭐대며 목소리를 키우며 나만의 생각을 고집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나만의 비밀화원에서 지내며 나는 비로소 그 모든 것이 부질없음을 배웠습니다. 그곳에서는 나라고 하는 존재는 아주 작아져 풀이 되고, 나무가 되고, 곤충이 되면서, 그들의 삶에 순하게 동화되곤 합니다. 내가 말하기 보다는 그들의 이야기에 가만히 귀 기울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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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보기오름 정상에 억새를 배경삼아 덩그마니 놓여있는 벤치. 제주 강동삼 기자
마보기오름 정상에 억새를 배경삼아 덩그마니 놓여있는 벤치. 제주 강동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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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보기오름 정상 서쪽으로 펼쳐지는 오름들. 제주 강동삼 기자
마보기오름 정상 서쪽으로 펼쳐지는 오름들. 제주 강동삼 기자


#자신이 잘났다고 내세우지 않는, 모두가 기댈 수 있는 오름, 모두를 품은 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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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겸손한 마보기오름
<44> 겸손한 마보기오름
오름을 사랑했던 사진작가 김영갑(1957~2005) 선생에게 오름을 11월 첫날, 다시 만날 수 있도록 김영갑갤러리 두모악이 재개관됐습니다. 루게릭병 진단을 받고 투병 와중에도 힘겹게 갤러리를 오픈했지만 3년만인 2005년 5월 29일, 그는 한 줌의 흙이 되어 그곳에서 고이 잠들었습니다.

운영난에 장기휴관했던 지난 4개월을 딛고 다시 문을 연다는 소식에 고군분투하는 박훈일 관장과 통화를 하며 재개관을 반겼습니다. 물론 취재를 위해 전화를 했지만, 그게 다는 아니었습니다. 괜찮은 지, 안부를 묻고 싶어졌습니다. 그리고 가만가만 얘기를 들어줬습니다. 제가 가장 잘하는 것은 듣는 것 밖에 없기도 했습니다. 위로가 됐을지 모르겠습니다. 운영난을 반드시 헤쳐나가길 바랍니다. 아날로그 감성을 사랑하는 이들에게마저 언제부터인가 서서히 잊혀지는 것 같아 안타깝지만 이 고비도 분명히 넘길 거라고 믿습니다. 아마도 김영갑갤러리를 찾는 사람들은 그의 오름을 보고 위안을 삼고 난치병을 앓는 낮은 자들에게 그의 오름 풍경을 보며 치유의 시간을 가질 거라는 생각입니다.

오름은 그런 곳인 듯 합니다. 결코 자신이 잘났다고 내세우려 하지 않는, 모두가 기댈 수 있는 언덕입니다. 결코 높은 콧대를 세우며 자만하지 않습니다. 그저 부드러운 능선으로 다 품어줍니다. 초라하지만 초라함을 감추지도 않습니다. 소박하지만,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풀꽃으로 인사하고 은빛억새로 인사합니다. 오름에게는 보여줄 것이 많지 않지만 소박한 풍경으로 자신을 빛냅니다. 고인의 고백처럼 정말 잘 가꿔진 정원이 아닌, 자연적인 비밀의 화원 같습니다.

그래서 그곳에 오르면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그곳에 오르면 나를 포장하지 않아 좋습니다. 우쭐대지 않는 낮은 존재 앞에서 나 역시도 낮은 존재로 거기에 가만히 앉습니다. 그곳에 벤치는 그런 낮은 존재들에게 쉼터가 되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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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보기오름으로 가는 길에 펼쳐지는 편백나무와 삼나무숲길. 제주 강동삼 기자
마보기오름으로 가는 길에 펼쳐지는 편백나무와 삼나무숲길. 제주 강동삼 기자


# 이타미 준이 건축한 포도호텔, 핀크스골프장을 품고 있는 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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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보기오름 남쪽 핀크스골프장 내에 자리잡은 이타미 준 건축물 포도호텔. 제주 강동삼 기자
마보기오름 남쪽 핀크스골프장 내에 자리잡은 이타미 준 건축물 포도호텔. 제주 강동삼 기자


서귀포시 안덕면 상천리 핀크스골프장 입구에 위치한 ‘마보기오름(마복이)’은 보일 듯 말듯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는 오름입니다. 화려한 골프장을 품고 있지만, 자신은 조연이고 골프장을 주연으로 만드는 곳입니다. 건축가 이타미 준의 포도호텔과 방주교회를 품고 있지만, 자랑하지 않는 곳입니다. 물론 그 건물들도 자연과 같이 숨쉬는 낮은 자세로 자연과 대화하고 있어서 더욱 그러할 지도 모릅니다.

삼나무숲에 들어서면 마치 마을 목장 한 모퉁이를 지나듯 빽빽한 숲 언덕이 나옵니다. 실제로 걷는 오른쪽은 철조망이 쳐져 있어 방목장임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진흙길이 탐방객의 발걸음을 가볍게 해줍니다. 정상까지 635m라는 푯말이 붙어있습니다. 정상으로 가는 길은 고사리밭이기도 합니다. 얼마전에 탐방길의 잡초를 깨끗하게 깎은 흔적이 보입니다. 걷기가 편합니다. 1㎞가 안되는 거리여서 10여분 오르면 표고 560m 되는 마보기오름 정상에 다다릅니다. 비고는 60여m. 분화구에는 억새가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지명의 유래를 보면 남복악(南福岳)에서 나온 듯 합니다. 마복이는 마파람에서와 같이 ‘마’는 남쪽을 일컫는 걸 보면 마파람이 많이 불어오는 오름이라는 뜻인가 봅니다. 김종철의 ‘오름나그네’를 읽다보니 안덕면 상천리 북동쪽 영아리오름 둘레에는 하늬복이, 마복이 등 색다른 이름의 오름들이 있습니다. 동에 어오름, 서에 하늬복이, 남에 마복이, 그리고 북에 이돈이오름입니다. 정상에 오르면 그 오름들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비가 온 후여서 안개가 피어오르고 있습니다.

당신의 가을은 안녕하신가요. 벤치 하나 덩그마니 놓인 정상에 앉아 쉬면서 비에 젖은 남쪽 가을풍경을 마주합니다. 군산(군메오름), 월라봉(도래오름), 마라도 형제섬 가파도 송악산,산방산, 단산(바굼지오름), 모슬봉(모슬개오름), 소병악, 대병악까지 펼쳐집니다. 물론 바로 앞 핀크스 골프장의 필드가 아름답습니다. 마보기오름 정상에는 포도호텔이 세운 표석 하나가 있습니다. ‘정상을 둘러보신 후 오셨던 길을 따라 하산하시기 바란다’고 쓰여있습니다.

참 아담하고 소박한 오름입니다. 오는 이도 많지 않은 듯 호젓합니다. 알아도 그다지 많이 오지 않을 듯 합니다. 주변 오름과 같이 탐방할 계획이라면 모를까, 아니면 한라산 첫 마을 광평리 메밀국수를 먹을 요량으로 찾았다가 잠시 산책하면 제격인 듯 합니다.

물론 포도호텔에 묵는 숙박객은 산책해보면 좋을 듯 합니다. 억새가 펼쳐지는 늦어도 11월이면 더욱 좋겠습니다. 숨쉬기조차 버거운 바람에도 억새는 자신을 맡기며 자유롭게 서 있습니다. 자유로운 영혼은 어떤 역경에도 딛고 다시 일어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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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크스골프장 입구의 모습. 이 인근에 주차하고 마보기오름을 탐방하면 된다. 제주 강동삼 기자
핀크스골프장 입구의 모습. 이 인근에 주차하고 마보기오름을 탐방하면 된다. 제주 강동삼 기자


#마치 영화 ‘록키’처럼 강한 펀치를 맞아도 앞으로 나아가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영혼그 모습을 보니 태어날때부터 가난해서 싸구려 공공시설에서 의료사고로 태어나는 바람에 입술과 턱이 마비돼 지금도 어눌한 말투를 쓰는 실베스터 스탤론 주연의 인생역전드라마 ‘록키’시리즈 중 하나인 ‘록키 발보아’의 명대사가 떠오릅니다.

‘얼마나 세게 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얼마나 강한 펀치를 맞더라도 계속 앞으로 나아가느냐가 중요한거야. 그게 이기는 거야. (It ain‘t about how hard you hit, it’s about how hard you can get hit and keep moving forward. that‘s how winning is done.)

인생은 얼마나 성공적으로 사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얼마나 치열하게 사느냐가 중요하다는 명대사였습니다. 그리고 좌절할 땐 록키의 음악 ‘gonna fly now(지금 날아보자)’을 들으면 다시 일어서고 싶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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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기계기업 대동이 조성중인 체험휴양관광단지내 은빛 억새물결. 가을이 물들어가고 있다.  제주 강동삼 기자
농기계기업 대동이 조성중인 체험휴양관광단지내 은빛 억새물결. 가을이 물들어가고 있다. 제주 강동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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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커리카페 제주당 앞 억새풍경. 제주 강동삼 기자
베이커리카페 제주당 앞 억새풍경. 제주 강동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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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별오름과 억새바다에 빠진 사람들이 가을을 만끽하고 있다. 제주 강동삼 기자
새별오름과 억새바다에 빠진 사람들이 가을을 만끽하고 있다. 제주 강동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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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커리 카페 제주당 서쪽 앞에 조성된 원형모양의 연못. 파란가을하늘과 구름이 연못에 빠졌다. 제주 강동삼 기자
베이커리 카페 제주당 서쪽 앞에 조성된 원형모양의 연못. 파란가을하늘과 구름이 연못에 빠졌다. 제주 강동삼 기자


#잠깐, 여기서 쉬었다 갈래… 은빛억새 물결이 일렁이는 ‘제주당’은빛억새가 아름다운 장소가 인근에 있어 그쪽으로 이동합니다. 마보기오름을 하산해 평화로를 타고 제주시로 향하다가 새별오름 가는 길에 만나는 핫한 베이커리 카페 ‘제주당’입니다. 새별오름을 오롯이 감상할 수 있어 좋습니다. 오름을 오르지 않아도 오름을 질리도록 감상할 수 있는 유일한 곳입니다. 비오는 날이면 아침마다 오픈런을 할 정도로 사람들로 북적입니다. 왜냐하면 시그니처 빵을 구입해 의자 앉으면 일어서는 사람이 없어 자리를 잡기가 힘들기 때문입니다.

지상1층처럼 보이지만 사실 지하 아닌 지하1층이 있는 800평 규모의 대형카페입니다. 통유리로 돼 있어 뻥뚫립니다. 마트에서 빵을 사듯 바구니에 담아 계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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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커리카페 제주당 내부 모습. 제주 강동삼 기자
베이커리카페 제주당 내부 모습. 제주 강동삼 기자


빵이 싫다면 까르보나라, 스프, 샐러드, 리조또, 떡볶이를 시켜 배를 채워도 좋습니다. 오름을 올라 허기졌던 배가 만족스러워합니다. 카페 한켠에 경운기가 전시되어 있어 이색적입니다. 알고보니 농기계 기업 대동이 이곳의 주인입니다. 제주 애월읍 인근 74만㎡ 규모의 부지에 ‘그린스케이프(greenscape)’란 이름으로 미래농업 체험휴양관광단지를 조성해 선보이는 곳 중 하나입니다. 미래농업 융복합관광단지이자 테마파크로 꾸며질 예정입니다. 현재는 키즈카페인 ‘아르떼 키즈파크 제주’와 베이커리 카페인 ‘제주당 베이커리’가 먼저 문을 열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백미는 카페 맞은편에는 새별오름을 배경으로 한 억새들녘입니다. 돌문화공원에서 만났던 ‘하늘연못’을 닮은 연못이 건물 앞에 꾸며져 있습니다. 카페에 앉아 있으면 호수와 오름을 함께 만나는 기분이 드는 곳입니다. 물론 왁자지껄한 분위기를 싫어한다면 밖으로 나와 산책하면 가을에 빠집니다. 은빛억새 들녘에 서 있는 몇그루의 나무들을 타고 불어온 억새바람이 가을타는 남자의 마음을 흔들고 지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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