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남극을 가다] (4) 대한민국의 극지 도전사

[희망의 남극을 가다] (4) 대한민국의 극지 도전사

입력 2009-01-06 00:00
수정 2009-01-06 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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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대륙기지 건설 제2도약 꿈꾼다

│킹 조지(남극) 박건형특파원│“세종기지가 20년을 넘겼지만, 그중 상당 시간은 기지를 지어 놓고 유지하느라 버거웠던 시기입니다. 근처 기지들과 교류해 노하우를 쌓고 혹한의 환경에 적응하는 데만 10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죠. 우리나라의 본격적인 극지연구 시대는 2004년부터 열렸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세종기지에서 만난 한 연구원은 한국 극지연구의 현실에 대해 거침없는 말들을 쏟아냈다. 그가 말한 2004년은 2003년 고 전재규 대원이 사고로 숨진 후 한국 사회와 과학계가 열악한 극지연구의 실상에 대해 인식하기 시작한 때다. 얘기를 듣고 있던 대원들 모두 “당시 기지를 지어 놓고 유지보수를 할 예산도 충분하지 않아 연구에는 크게 신경을 쓰지 못했다.”면서 “재규의 희생이 오늘을 만들었다.”고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을 표시했다.

한국해양연구원의 한 본부에 불과했던 극지연구본부는 사고 이후 부설이기는 하지만 별도의 극지연구소로 분리됐다. 월동대에는 별도의 해상안전 요원이 배치됐고 몇년간은 해양경찰청에서 현직 경찰을 파견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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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기지 운석탐사대원이 남극대륙에서 발견한 운석의 크기를 재고 있다. 킹 조지 박건형특파원 kitsch@seoul.co.kr
세종기지 운석탐사대원이 남극대륙에서 발견한 운석의 크기를 재고 있다.
킹 조지 박건형특파원 kitsch@seoul.co.kr
●2004년부터 본격 연구시대

월동대를 위한 책과 DVD 등 물품도 대폭 늘었고, 대전중앙과학관과 서울과천과학관에 세종기지와 연결된 화상체험실이 생기는 등 대중적인 인지도도 달라졌다. 이제 대원들은 기업의 지원으로 인터넷전화를 이용해 한국의 가족들과 언제든지 통화가 가능하고 느리기는 하지만 인터넷 서핑도 자유롭다.

이같은 대내외적 위상 변화를 바탕으로 지난 5년여에 불과한 시간 동안 세종기지에서 한국이 얻은 성과는 놀라울 정도다.

‘불타는 얼음’으로 불리는 가스하이드레이트를 세종기지 인근에서 대량으로 발견했다. 이는 한국 전체가 400여년간 사용할 수 있는 양이다. 남극 해빙에 존재하는 미세조류가 합성하는 결빙방지 단백질을 이용해 인간 혈액을 안전하게 냉동보관하는 기술도 개발했다.

특히 이 기술은 기존의 혈액 냉동 물질에 비해 독성이 전혀 없는 생체부동액으로 높은 관심을 모으고 있다. 매년 여름철 대륙을 한 달 이상 헤매며 우주의 흔적을 찾는 ‘운석탐사대’도 빼놓을 수 없다. 지구 생성과 같은 시기에 만들어진 운석은 태양계 탄생의 신비를 풀 수 있는 정보를 담고 있으며 특히 인위적인 영향이 적은 남극의 운석은 가치가 아주 높다.

한국 탐사대는 이미 수십개의 운석을 발견해 국내로 보관, 중요한 시료로 사용하고 있다. 남극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구애의 손길도 뜨겁다. 국토해양부는 2010년 이후 전 선박에 의무적으로 탑재해야 하는 ‘전자해도’ 탐사를 위해 세종기지에 상주요원 파견을 검토 중이고 항공우주연구원 역시 인공위성 교신을 위해 세종기지 내에 위성국을 설치하고 대원을 수시로 보내고 있다.

한국의 극지연구는 앞으로 더 많은 발전 가능성을 갖고 있다. 우선 쇄빙선 아라온이 올해 진수된다. 쇄빙선은 극지의 얼음에 올라타 선박의 무게로 얼음을 눌러 부수며 전진할 수 있는 선박이다. 엔진의 출력이 커야 하는 것은 물론 선박 자체의 무게도 훨씬 무겁다. 19세기 중반부터 고래잡이를 위해 증기엔진을 사용한 쇄빙선 건조가 시작됐고 러시아는 1959년 원자력엔진을 탑재한 쇄빙선을 선보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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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3월 쇄빙선 진수 예정

한국의 쇄빙선 ‘아라온’은 전재규 대원의 죽음 이후 추진돼 2004년부터 1040억원이 투입됐다. 올 3월 진수될 예정이다. 1m 두께의 얼음을 깨는 동시에 시속 5~6㎞의 속도로 운항이 가능하다. 일부 월동대원들은 “상당수 사람들이 ‘전재규호’라는 이름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지만 끝내 이루지 못했다.”면서 아쉬움을 나타내기도 했다. 아라온은 올 한해 시험운항을 마친 후 내년쯤 남극 항해를 시작한다.

아라온에 대한 주변국들의 관심도 높다. 실제로 지난해 이명박 대통령의 중국 방문 당시 한·중 정부는 ‘아라온 공동사용’에 대한 조항을 명문화했을 정도다.

현재 후보지 선정작업이 진행 중인 남극 제2기지 사업도 기대를 모은다. 남위 75도, 서경 136도에 위치한 ‘케이프벅스’ 인근이 가장 강력한 후보지로 꼽히고 있다. 강천윤 극지연구소 지원실장은 “해안가를 따라 각국 기지가 빼곡히 자리잡고 있는 동남극(큰 남극)에 비해 우리가 2기지 후보로 꼽고 있는 서남극(작은 남극)은 러시아가 건설하고 쓰지 않은 기지를 제외하고는 뚜렷한 기지가 없다.”면서 “지구온난화 영향이 급격하게 나타나고 있는 지역이고, 독자적인 연구가 가능한 만큼 한국 극지연구 수준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릴 것”이라고 밝혔다.

●진정한 극지연구 강국으로

서남극 지역은 겨울철 기온이 영하 60~70도 수준으로 월평균 풍속이 초속 22m에 이르고 연중 쇄빙선이 접근할 수 있는 기간이 25일에 불과한 그야말로 ‘고난의 지역’이다. 그러나 21차 월동대원들은 “대륙기지가 생긴다면 꼭 가장 먼저 가보고 싶다.”고 말할 정도로 큰 기대를 나타내고 있다.

다만 일각에서는 “무엇보다 신중해야 할 극지 연구 인프라가 예산지원 부족으로 충분한 검토가 이뤄지지 않을 수 있다.”면서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올해 제2기지 탐사에는 총 30억원의 예산이 배당됐지만 이는 실제 소요비용 60억의 절반에 불과한 수준이다.

홍종국 세종기지 제21차 월동대장은 “앞으로의 5년은 지난 20년에 비해 훨씬 더 많은 것을 이룰 수 있다.”면서 “쇄빙선 아라온이 올해 건조되고 2011년 제2기지가 서남극 대륙에 건설되면 한국은 진정한 극지연구 강국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kitsch@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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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06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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