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의 밤거리는 분명 10년전보다 더 밝아졌다. 매립에 의한 개발 등으로 마천루가 더욱 늘어난 때문이다. 계속 오르고 있는 집값과 사무실 임대료는 홍콩이 경제 호황을 누리고 있음을 입증해 주고 있다. 현재 홍콩이 누리고 있는 번영은 ‘대륙’의 도움에 힘입은 바가 크다. 특히 2003년 중국과 홍콩이 맺은 ‘포괄적 경제 파트너십 협정(CEPA)’이 결정적이었다. 이미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로 한차례 휘청거린 홍콩은 IT 업계의 거품 붕괴와 뒤이은 2003년 사스의 발발로 다시 한차례 경제 위기를 겪은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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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정부는 이 때 대륙인에 대한 홍콩 관광의 문을 크게 넓혀 놓는다.97년 한해 홍콩을 방문한 중국인은 236만명뿐이었으나 2006년에는 1360만명으로 5배 이상 늘면서 홍콩 경제 부활의 활력소가 된다. 이는 현지 인구의 두 배에 가까운 수치이며 지난해 홍콩을 찾아온 전체 관광객 2525만명의 절반을 넘어서는 규모다.
중국은 CEPA를 통해 본토로 수출되는 홍콩산 제품에 대해 단계적으로 무관세를 실시,2006년 1월부터는 홍콩의 모든 업종이 무관세로 중국 시장에 진입할 수 있게 됐다. 그 결과 지난해 홍콩의 전체 교역량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46.4%는 중국 대륙과의 사이에서 이뤄졌다.
금융 방면에서도 중국의 전폭적인 지원이 뒤따랐다. 홍콩은행들은 2004년 1월 정식으로 위안화 업무 허가를 받았다. 올 초에는 대륙 금융기관이 홍콩 현지에서 위안화 표시 채권을 발행하기 시작했다. 홍콩이 대륙 밖에서 위안화를 다루는 최초의 금융 중심으로 자리잡은 것이다. 홍콩 증시는 지난해 기업공개 총액이 429억달러로 뉴욕 증시에서 이뤄진 369억달러보다 높은 액수를 기록했다. 공상은행 등 중국의 초대형 기업공개가 홍콩에서 잇따라 이뤄진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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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최대 컴퓨터제조업체 레노보는 홍콩 증시를 통해 자금을 마련한 뒤 IBM을 매입할 수 있었다. 중국 기업들은 자금 마련을 위해 상하이 증시를 이용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어려움이 많다. 대륙의 행정 규제 때문이다. 상하이 증시 상장을 꺼리는 이유다.
금융 중심 홍콩의 심장부인 센추럴 지역은 더욱 활기가 넘쳐났다. 전 세계에서 모여든 400개가 넘는 은행과 321개 증권사가 빼곡히 들어차 있다.1998년 1144억홍콩달러였던 외국인 직접투자액은 지난해 3346억홍콩달러로 3배 가까이 증가했다.
홍콩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려 하고 있다. 과거와는 달리 이제 대륙 본토의 물건을 굳이 홍콩을 거쳐 수출하려 하지 않는다.K C 궉(郭國全) 홍콩정부 경제고문은 “물건은 대륙에서 바로 수출지점으로 보내고 서류 등 업무만 홍콩에서 처리하는 ‘이안(離岸)무역’을 지향하고 있다.”고 말했다. 홍콩이 선전항 등 대륙의 항구로 물동량을 넘기고 있다는 얘기다. 이에 따라 세계 선박 컨테이너 물동량 1위를 굳게 지켜 오던 홍콩은 2005년 싱가포르에 1위를 내어 주고 2위로 내려 앉았고, 곧 상하이 양산항에 밀려 3위로 하락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항공 물류만큼은 여전히 부동의 세계 1위다.
홍콩만 대륙 덕을 본 것은 아니다. 중국도 지난 10년간 외국 자본의 유입 창구로 홍콩을 활용하며 발전의 원동력을 얻어 왔다. 동시에 중국의 가장 큰 산업 집적지 가운데 하나인 광둥(廣東)성 주장(珠江) 삼각주에는 6만여개의 홍콩 기업이 진출해 있는 상태다. 홍콩과 중국 두 경제 주체는 엄청난 시너지 효과로 서로를 부축하고 있다. 코트라 홍콩무역관 신환섭 관장은 “CEPA가 홍콩기업과 홍콩에 거점을 둔 글로벌 기업, 홍콩 거주자의 본토 진출을 활성화시켰고, 중국과 홍콩의 경제일체화가 더욱 빠르게 진행됐다.”고 말했다.
K C 궉 경제고문은 “최근 중국 대륙이 해외 진출의 중요 거점으로 홍콩을 선택한 뒤 중국 기업들이 홍콩 시장에 본격적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이후 홍콩의 발전이 대륙에 발전을 가져오고, 대륙의 발전이 홍콩의 발전을 유도하는 윈윈 분위기가 형성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홍콩이 지난 수십년간 경쟁해온 싱가포르를 앞으로도 계속 앞설 수 있는 이유는 그 배경으로 성장하는 대륙이 있기 때문”이라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홍콩 이지운특파원|2003년 포스코는 중국 대륙에 대대적인 진출을 진행시키면서도 홍콩 법인을 그대로 남겨 두었다. 중국에서 처리할 수 없는 업무를 홍콩에서 처리하기 위해서다.
정인호 포스코차이나 홍콩법인 대표는 “포스코그룹이 중국 본토 26개 단독·합작법인에 24억달러를 투자하고 있으나 중국 내 무역 법인의 계약은 대부분 홍콩법인의 이름으로 진행되고 자금결제도 홍콩에서 처리된다.”고 설명했다.
중국 선전(深)에 있는 삼성전자 휴대전화 제조법인은 30분 거리에 선전공항을 이용하지 않고 이보다 두배 이상 시간이 더 걸리는 홍콩 공항을 통해 휴대전화를 수출한다.“전 세계에 거미줄처럼 연결된 항공 노선과 신속한 통관수속 때문”이라고 이병식 삼성전자 선전 법인장은 말했다.
향후 홍콩은 급성장중인 상하이(上海), 선전 등 대륙의 주요 도시들에 추월당할 것인가. 앞선 두가지 사례는 이같은 전망을 반박한다.
현재까지 대륙의 급성장은 홍콩의 값어치를 떨어뜨리지 않은 채 도리어 갖고 있는 장점을 더욱 빛나게 하고 있다. 정인호 대표는 “합리적인 법과 제도를 가진 홍콩이 중국과 특수 관계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 도리어 전략적 가치가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대륙의 발전은 ‘홍콩을 통해서만 할 수 있는 일’을 새로이 만들어 내면서 홍콩의 경쟁력을 유지시키고 있다는 얘기다.
홍콩의 금융거리는 반경 2㎞ 범위 내에 금융회사·전시관·공항·항만 등이 밀집돼 있다.“서울에서는 오전, 오후 한건씩 회의를 하고 나면 하루가 흘러가 버리지만 홍콩에서는 하루 10건의 회의·상담·전시관 참관도 가능하다.”는 게 신환섭 관장의 설명이다. 대단히 높은 시간 효율성도 홍콩의 경쟁력이다.
영어가 공용어로 통하고 동·서양 문화가 공존하며 법규·제도가 잘 확립돼 있는 데다 투명하고 부패 없는 정부와 일관성 있는 정책 등 기존의 이점도 대륙과 비교해 더욱 돋보인다. 축적된 신용과 명성, 자금과 정보의 집중 등 이 모든 것은 하루아침에 쌓아 올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K.C 궉(郭國全) 홍콩정부 경제고문이 “홍콩은 대륙에는 없는 많은 것들을 갖고 있기 때문에 비전이 있다.”고 확신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는 도리어 “중국의 많은 기업들이 글로벌 기업이 되기를 원한다면 홍콩으로 와야 한다.”고 자신있게 권하고 있다. 실제로 많은 중국 기업들이 홍콩에서 기업공개를 하고 있으며 글로벌화를 위한 전진기지로 홍콩을 활용하고 있다.
jj@seoul.co.kr
■ 또다른 도약을 위한 전략
|홍콩 이지운특파원|‘홍콩 사이언스파크’는 홍콩의 또 다른 도약을 위한 전진 기지와도 같다. 홍콩이 주장(珠江) 삼각주에 투자하고 있는 6만여개 회사의 기술 향상을 돕기 위한 ‘테스트 랩(종합 실험실)’으로 설정된 곳이다.
현장에선 LED, 디지털TV, 트랜스미션,3G 등 관련 기술의 많은 실험들이 진행되고 있었다. 입주한 기업들에는 대단히 저렴한 실험비만을 받고 있다고 한다.
사이언스 파크의 역할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중국 전역에 있는 7개 중국과학원과 연계를 갖고 협력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특히 IC 디자인 등은 그간 대륙에서는 진행되지 않았던 연구 분야라고 한다. 중국이 중점을 두고 있는 TD-CDMA 관련 기술도 여기서 실험이 이뤄지고 있었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재료분석 분야 등 중국에 들어갈 수 없는 하이테크 분야의 실험기계가 많이 들어와 있다는 점이다. 중국은 미국의 견제 때문에 첨단기기 도입에 적지 않은 제약을 받고 있다. 관계자들은 “중국의 기업이 (기밀 유출 등 민감한 문제로) 타이완 등 다른 주변국에서는 할 수 없었던 실험을 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이같은 분야는 지금까지 홍콩이 관심을 갖지 않았던 영역이다. 쉬젠난(許建南) 부사장은 “기술 개발은 그간 홍콩이 해오던 일은 아니다. 새로운 영역”이라고 강조했다.
홍콩 사이언스 파크는 홍콩-대륙이 연계돼 창출해낼 수 있는 또 다른 시너지 효과가 얼마든지 개발될 수 있음을 보여 주는 사례다.
jj@seoul.co.kr
2007-06-28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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