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한센병 환자들과 함께 한 지 25년째인 전남 여수 애양원 김인권(54·전남 순천시 매곡동) 원장이 아무런 연고도 없는 이곳에 평생 둥지를 튼 이유를 이렇게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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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1980년 한센병 환자들의 보금자리인 전남 고흥 소록도에서 공중보건의로 군 생활을 하면서 이들과 끈을 맺었다. 입대 전 결혼한 부인(50)까지 동참시켜 3년 내내 소록도 관사에서 살았다.
제대한 뒤 1983년 5월부터 국내 최초(1909년) 한센병 치료기관인 애양원으로 갔다. 당시 김 원장은 모교(서울의대 정형외과)에서 제의한 교수직까지 물리쳤다. 그리고 병원에서 가까운 순천에 살림집을 마련했다. 이러한 부모의 뜻을 따라서인지 딸(25)과 아들(22)도 탈없이 잘 자랐다.
훤칠한 키, 서글서글한 눈매, 오똑한 콧날 때문에 가끔 환자들로부터 “웬 외국인 의사냐.”는 핀잔을 듣기도 한다.
“물론 힘들 때도 있지만 저 때문에 최소한 환자들 상황이 더 안좋아 지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금세 힘이 난다.”고 설명했다.
그는 남들이 할 수 있는 일보다는 안하는 일에 더 매달린다. 지금도 아침 9시 45분이면 어김없이 수술실로 간다. 많을 때는 하루에 20번까지 인공관절 대체 수술을 하는 ‘체력 짱’이다. 매달 250여건, 연말이면 3000여건이다. 지금껏 애양원에서 한 수술 횟수는 4만여건이다.
외진 곳에 자리한 병원이지만 전국 곳곳에 이름이 많이 알려져 있다. 그런 탓인지 환자들이 입소문을 타고 물어 물어 이곳을 찾는다. 하루 평균 500여명. 이들 가운데 절반 이상이 타지에서 온다. 병원 복도에서 만난 노인들에게 “왜 여기까지 왔느냐.”고 하자,“원장이 잘해, 돈도 싸고….”라면서 입 맞춘 듯 한 목소리다.
하지만 김 원장은 임상관련 논문이나 학술발표회는 되도록 미룬다.“그 시간에 한 명이라도 더 치료해야 한다는 것을 애양원 선배의사들로부터 배웠다.”고 털어놨다.
보통사람들이 사는 방법에 대해,“우리 모두에게 현실이 아주 중요하다. 하지만 생활하면서 남을 조금 배려하는 생각과 행동에는 인색한 것 같다. 평소에 조금씩 돕고 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병원 한상인(42) 경리과장은 “직원들 사이에서 원장님은 ‘지존’으로 통한다. 수술도 잘하지만 독서량이 워낙 많다 보니 고고학이나 동·서양사 등에서 전문가 수준을 넘는다.”고 입에 침이 마른다. 신용(47) 사무국장은 “원장님이 정말 화가 나서 가장 심하게 한다는 말이 ‘어떡하면 좋습니까.´라면서 눈에 힘줄 때”라고 웃었다.
김 원장의 생활신조는 성실로 요약된다. 술·담배는 남이고, 취미생활은 수술이고, 그 장소는 병원이다. 직원들을 집으로 혹은 사무실로 초대해 직접 커피를 끓여주고 아이들 이름까지 기억해 챙겨준다. 앞서 지난 2003년 그는 서울대의대 동문들이 장한 동문들에게 주는 ‘장기려박사 의도상’의 첫 번째 수상자로 선정됐다.
“의료인들도 욕심을 내세우지 말고 불우한 이웃들을 위해 진료해야 하고 (급여로)받은 돈의 일부를 이들에게 써야 할 때”라며 후배 의사들에게 삶의 방향을 제시했다.
사회복지법인 애양원은 예산 한 푼 도움 받지 않지만 의사 8명, 간호사 48명, 행정직원 43명이 똘똘뭉쳐 90병상을 운영한다. 해마다 적잖은 규모로 흑자를 낸다. 이 돈으로 병원에서 운영하는 한센인 무료 양로원(88명)과 재활직업보도소(20명) 살림살이에 보탠다.
서둘러 수술실로 향하던 김 원장은 “항상 주어진 여건에 만족하며 산다. 평범한 일에 감사하고 기도하면서….”라며 여운을 남겼다.
여수 남기창기자 kcnam@seoul.co.kr
●김인권 원장은
▲51년 서울 출생
▲75년 서울대 의과대학 졸업
▲80∼83년 국립소록도병원 외과 근무
▲81년 인도 Schiefflin 나환자 재활병원 수련의
▲82년 서울대 의대 석사과정 수료
▲83년 여수애양원 정형외과 과장
▲87∼88년 영국 Oswestry. Robert Jones&Agues Hunt병원 정형외과 연수
▲90년 서울대 의대 박사학위 취득
▲92년 여수애양원 부원장
▲95년∼현재 여수애양원 원장
▲96년 인돈문화상 수상
▲97년 세계성령봉사상 수상
▲99∼2004년 중국옌볜대학 복지병원 환자 수술 의료 봉사(연 1회 1주 5회)
▲2000년 중외박애상 수상
▲2003∼2005년 베트남 St.Paul Hospital in Hanoi&ITO Hospital in Hochimin city 수술 의료 봉사(연 1회 1주간 3회)
▲2004년 제1회 장기려 의도상 수상
2005-12-23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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