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위기감시기구 동북아 사무소 피터 벡 소장

국제위기감시기구 동북아 사무소 피터 벡 소장

김상연 기자
입력 2005-06-29 00:00
수정 2005-06-29 00:00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0

“일본보다 중국이 한국에 더 위협적”

안녕하십니까. 저는 피터 벡(Beck)이라고 합니다. 제 이름만 보고 재미교포인 줄 오해하는 분이 많은데, 저는 100% 노란머리 미국인입니다. 한글 이름을 ‘백’이 아닌 ‘벡’으로 한 것도 나름대로 오해를 피하기 위한 자구책입니다. 그래도 한국의 백씨들은 저를 보고 종친이라며 자꾸 자기 편으로 만들려고 합니다.

국제위기감시기구 동북아사무소의 피터 벡 소장이 28일 서울 광화문 사무실에서 가진 서울신문과의 단독 인터뷰에서 통일부 통일정책평가위원으로 몸담게 된 소회 등을 피력하고 있다.
국제위기감시기구 동북아사무소의 피터 벡 소장이 28일 서울 광화문 사무실에서 가진 서울신문과의 단독 인터뷰에서 통일부 통일정책평가위원으로 몸담게 된 소회 등을 피력하고 있다.
참, 먼저 얘기해 둘 게 있습니다. 이 글은 제가 직접 쓴 게 아닙니다.28일 저를 인터뷰한 서울신문 기자가 저의 독백처럼 재구성한 것입니다.

저는 지금 ‘통일부 통일정책평가위원’이란 직함을 갖고 있습니다. 미국 사람이 한국 정부에, 그것도 민족적 과제인 통일정책에 자문을 한다?이런 게 한국인들의 흥미를 끄는 요인인 것 같습니다.

한국통일정책 자문하는 미국인

굳이 직업적 분류법으로 한다면 제 직책은 ‘한국 정부의 외국인 고문’ 정도가 될 겁니다. 하지만 부정적 이미지로 점철된 구한말의 스티븐스 같은 미국인 고문은 결코 아닙니다. 저는 평생의 반려자로 한국 여성을 선택했을 만큼 골수 친한파입니다. 또 고답적인 정장보다는 캐주얼 차림을 즐기는 ‘386’(1967년생,85학번)입니다. 기자도 저를 보더니 “예상보다 젊다.”며 놀라더군요. 이건 제가 자주 듣는 인사말입니다. 한국 사람들은 나이와 직함을 연결짓는 사고방식이 있지요.

이 기자양반 역시 한국 사람다웠습니다. 다짜고짜 직설적인 질문을 퍼붓더라고요.“신분은 공무원 대접을 받는 건가.” “보수는 얼마나 되나.” 이런 식입니다. 이제 이골이 나서 이런 무자비한 질문이 당황스럽지 않습니다.

저는 공무원 신분이 아니라 미국 국적의 민간인으로서 한국 정부의 통일정책에 자문을 하는 겁니다. 보수는 따로 있는 게 아니고 3개월마다 정책평가위원회의를 할 때 참석비로 몇십만원을 받는 정도입니다.

올 3월1일에 1년 임기의 정책평가위원에 위촉된 이후 지금까지 2차례 회의에 참석했습니다. 회의는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참석한 가운데 먼저 당국자로부터 현안 설명을 듣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2시간 정도 자유롭게 토론을 합니다. 저는 외국사람으로서 무엇을 우려하고 있는지, 미국 정부의 입장은 무엇인지 등을 얘기합니다.

이런 모임이 효율성이 있다고 생각하느냐고요?물론입니다. 진보에서 보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시각을 가진 각계 대표들이 한자리에 모여 각자의 입장을 정부에 얘기하고 그 의견들이 수렴되는 과정은 아주 인상적입니다.

저한테 한국인 통역이 붙느냐고요?전혀 필요 없습니다.‘버터발음’만 빼면 어휘력은 한국인 네이티브 스피커 뺨친다는 게 한국 사람들의 평가입니다. 인터뷰에서도 “사철탕”“우물안 개구리”같은 고난이도의 어휘를 살짝 구사했더니 기자 양반 놀라는 눈치더군요. 저는 그럴 때 묘한 쾌감을 느낍니다.

한국시위 보고 전공도 동양학으로

한국과의 인연은 우연이었습니다. 버클리대학 2학년을 마치고 1주일간 한국으로 ‘아무 생각없이’ 배낭여행을 왔는데, 그게 인생의 전환점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때가 바로 5공 군사정권에 대한 시위가 최고조로 치닫던 1987년 5월이었거든요. 태어나 처음 본 시위장면은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그래서 미국으로 돌아가자마자 전공을 정치학에서 동양학으로 바꾸고 한국을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89년 대학을 졸업한 뒤 한국으로 건너와 서울대 어학연구소 등에서 수학했습니다. 그때 영어학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 수강생이던 지금의 아내를 만나 결혼했고 딸(3)도 낳았습니다.

97년부터는 미국으로 건너가 ‘한미경제연구소’에서 7년 동안 일했습니다. 이 연구소는 한국의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이 미국에 설립한 산하기관입니다. 그리고 다시 한국에 돌아온 것은 지난해 여름입니다. 비정부기구인 ‘국제위기감시기구’의 동북아 사무소장을 맡게 됐거든요. 그러니까 이 소장직이 제 본업인 셈입니다.

한국의 ‘동북아 균형자론´은 비현실적

지금 한반도의 최대 이슈는 북핵이지요. 물론 인터뷰에서도 이 얘기가 나왔습니다. 얼마 전만 해도 참으로 답답한 국면이었는데, 다행히 북한이 남한과 대화를 재개해 잘됐습니다. 그동안 북한이 남한에 1년 넘게 문을 걸어잠근 것은 잘못된 판단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과거 소련과 중국이 사이가 안 좋을 때 북한이 그 틈새를 이용해 많은 이익을 얻지 않았습니까. 같은 맥락으로 북한으로서는 미국과 사이가 나쁠수록 남한과 친하게 지내야 하는 것 아닌가요. 남북대화가 잘 되면 미국이 절대 북한을 침공 못할 겁니다.

동북아 균형자론에 대해서는 판단을 유보하겠습니다. 정치적·경제적으로 한국이 균형자 역할을 한다는 것은 비현실적인 슬로건입니다. 하지만 부시 행정부나 김정일 정권을 마냥 믿을 순 없지 않으냐는 측면에선 이해가 갑니다. 상황을 좀더 두고봐야 하겠습니다.

통일분야는 아니지만 한·일 문제에 대해 한마디 해도 될까요. 한국인들이 일본한테 엄청난 피해를 당한 것 알지만, 제3자적 시각으로 보면 이제 그만 그 그늘에서 벗어났으면 좋겠습니다.

이대로 가면 정말 끝이 없습니다. 오히려 저는 일본보다 중국이 훨씬 더 한국에 위협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이 너무 역사에 발목을 잡혀 상황을 정확하게 보지 못할까 걱정됩니다.

제가 너무 흥분했나요. 죄송합니다. 평소 하고 싶었던 말이 많아서…. 그런데 이 기자양반 마지막까지 한국인스럽네요. 내가 한국 음식과 미국 음식 둘 다 좋아한다고 하자,“만일 죽을 때까지 둘 중 한 가지만 먹어야 한다면 어느쪽을 택할 거냐.”는 거예요. 한국에 대한 애정지수를 테스트하려는 거 뻔히 알면서도,“어쩔 수 없이 미국음식을 택할 것 같다.”고 우물쭈물 답했습니다.

기자양반 옳거니 걸렸구나 하고 회심의 미소를 짓는군요. 정말 얄밉네요. 그래도 이 정도 대놓고 솔직한 거 보면 저도 한국사람 다 됐지요?

피터 벡은 누구

-1967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출생.

-1989년 미국 버클리대학 졸업.

-1997∼2004년 8월 한미경제연구소 근무.

-2004년 8월 국제위기감시기구 동북아사무소장 취임.

-2005년 3월 통일부 통일정책평가위원 위촉.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2005-06-29 15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유튜브 구독료 얼마가 적당하다고 생각하나요?
구글이 유튜브 동영상만 광고 없이 볼 수 있는 ‘프리미엄 라이트'요금제를 이르면 연내 한국에 출시한다. 기존 동영상과 뮤직을 결합한 프리미엄 상품은 1만 4900원이었지만 동영상 단독 라이트 상품은 8500원(안드로이드 기준)과 1만 900원(iOS 기준)에 출시하기로 했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적절한 유튜브 구독료는 어느 정도인가요?
1. 5000원 이하
2. 5000원 - 1만원
3. 1만원 - 2만원
광고삭제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