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생명채식연합회장 이원복씨

한국생명채식연합회장 이원복씨

입력 2004-02-19 00:00
수정 2004-02-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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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복씨
이원복씨
광우병이니 조류독감이니 세상이 온통 떠들썩하다.하루 세끼 밥상뿐 아니라 목숨까지 위협받는 실정이니 그럴 밖에….육식 애호가들은 동의하지 않겠지만 ‘동물의 반란’이라는 말이 더는 생소하지 않은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광우병과 일정한 연관을 가진 ‘인간 광우병(변종 크로이츠펠트야코프병)’이 “21세기에 가장 위험한 전염병이 될 수 있다.”는 세계보건기구(WHO)의 경고도 이미 오래 전에 나온 터다.

퀴즈 하나.“소크라테스,레오나르도 다빈치,아인슈타인,폴 뉴먼,실베스터 스탤론,행크 아론,리처드 기어….이들의 공통점은?” 유명인사라는 점 말고 또 있다.채식주의자다.‘살기 위해 먹는다.’는 말이 유효하려면 ‘가려서’라는 단서를 넣어야 한다는 얘기가 마냥 우스개로만 들리지 않는 요즘 채식자들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궁금했다.

채식 20년째… 그의 ‘행복한 고행’

인터넷 ‘다음 카페’에서 최대의 채식동호회를 운영하고 있는 이원복(40)씨.한국동물보호협회 대표,한국생명채식연합회장이라는 두 개의 직함을 갖고 있다.서울 강남의 한 채식전문 뷔페에서 그와 마주 앉았다.

‘어떻든 음식을 가리니 까탈스러울 수 있겠다.’는 예상은 빗나갔다.환한 얼굴,나긋나긋한 어조에 선입견이 절로 녹아내린다.그는 20년째 채식을 실천하고 있다.어떤 연유로 이 길로 들어섰을까.

“대학교 초년 시절이었죠.어느날 식탁에 오른 고깃덩이가 그렇게 혐오스러울 수가 없었습니다.‘이건 아니다.’는 생각에 그날부터 곧장 채식에 들어갔습니다.” 갑작스러운 결심엔 연유가 있다.어릴 적 보아온 동네 골목길의 익숙한 풍경이 그것이다.“개·닭의 처절한 도살장면이 늘 기억 한 쪽에 자리잡고 있었다.”고 한다.채식을 결심하면서 어두운 기억은 털어버렸지만 이때부터 그의 ‘행복한 고행’은 시작된다.

회식 자리에서 직장 동료들과 같이 어울리지 못해 외톨이 신세를 감내해야 했다.혼자만의 도시락 점심도 10여년 계속됐다.어쩔 수 없이 일반식당을 찾게 되면 “육식성 재료를 빼달라.”는 부탁을 다짐받듯이 넣어야 했다.“(채식자를) 별종으로 취급하는 분위기가 아직은 강하잖아요? 심지어 가족들도 핀잔을 주고 ‘별나게 군다.’는 반응이어서 참 불편했습니다.그래도 뜻을 꺾겠다는 생각은 한번도 해보지 않았지요.”

하지만 그는 이제 더이상 외톨이가 아니다.“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며 10여년의 고등학교 교사생활을 박차고 나오면서부터다.2000년 6월 인터넷에 채식동호회(www.vege.or.kr)를 만들고 동물보호 활동에도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동호회는 지금 회원수 2만명을 훌쩍 넘어섰다.최근 들어선 광우병 등의 탓인지 “회원 가입이 부쩍 늘었다.”고 한다.“1주일에 한번씩 회원들과 오프 모임도 갖는데 여기서 토론도 하고 채식요리 정보도 교환합니다.물론 서로의 애환도 나누죠.”

채식자는 아직도 우리 사회의 ‘마이너리티’다.그래서 그의 인터넷 카페는 소수자의 절절한 사연들로 가득하다.육식문화로 포위된 일상을 고달프게 헤쳐나가는 애환에서부터 “(‘왕따’ 취급을 받아) 어렵사리 들어간 직장을 4일 만에 그만 뒀다.”는 하소연까지 다양하다.

“채식한 뒤 잔병없고 지구력 높아져”

“뭐든 골고루 먹어야 건강해지지 않느냐.”고 준비된 질문을 던졌다.드문드문 말을 아끼던 그의 입이 이번엔 제대로 열렸다.

“물론 골고루 먹어야지요.그러나 건강하려면 영양소를 고르게 섭취해야 하는 것이지 꼭 육류를 먹어야 한다는 건 아닙니다.곡물과 야채를 고르게 먹는다면 채식만으로도 인간에게 필요한 모든 영양분을 섭취할 수 있다는 과학적 논거가 이미 확인되고 있잖아요.”

한발 더 나아가 그는 “건강을 위해서라면 오히려 육식을 피하는 게 낫다.”고 주장한다.“고(高)산성 식품인 육류을 자주 먹으면 체질이 산성화됩니다.암이나 고혈압·당뇨 등 성인병도 이런 식습관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그는 “사람의 인체구조도 육식에 맞지 않다.”고도 했다.곡류에 비해 썩는 속도가 빠른 고기를 빨리 배출하기 위해 육식동물의 내장 길이는 몸 길이의 3배 정도에 불과하지만 인간은 12배여서 초식동물에 가깝다는 것이다.

선뜻 동의하지 않자 이번엔 경험담을 꺼낸다.쉽게 피로감을 느끼며 잔병치레를 하는 약골이었지만 “채식의 효과를 톡톡히 봤다.”고 한다.몸이 가벼워지고 특히 지구력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집중력도 놀라울 정도로 향상되고 정신적으로 여유가 충만하다고 한다.“특별한 운동을 하지는 않는다.”고 했지만 그의 다부진 체격이 새삼 눈에 띄었다.

그러면서 그는 환경과 인권,생명을 이야기했다.채식은 우리의 삶터인 지구를 살리는 길이며 인간을 비롯한 생명체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의 표시라는 것이다.“세계 곡물 수확량의 40%가량이 식용으로 쓰이는 가축의 먹이로 사라지고 있습니다.대신 한쪽에선 수십만명의 인구가 매년 기아로 죽어가고 있지요.목초지 조성을 위한 삼림 파괴 현상도 빠르게 진행되고 있습니다.햄버거에 들어가는 쇠고기 한 조각을 먹지 않으면 한평 가까운 열대우림이 보존되지요.모든 이유를 떠나 동물을 죽일 권리가 우리에게 있는 것일까요….”

왜 그가 안정된 직장을 그만두면서까지 ‘채식 20년’을 흔들림없이 지켜오고 있는지 비로소 이해가 갔다.채식은 그로선 ‘인생의 가치관을 실천하는 길’인 것이다.“인간은 도살당한 동물의 무덤이다.나는 동물들의 친구다.나는 나의 친구들을 잡아먹지 않는다.”는 버나드 쇼의 말은 곧 그의 말이기도 했다.돌아오던 길에 큼직하니 맑은 그의 눈이 암소의 그것을 닮았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이참에 채식에 도전해 볼까.’란 즐거운 유혹과 함께….

박은호기자 unopark@˝
2004-02-19 4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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