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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수백만명 탈출…중국 ‘경제식민지’ 되나 [월드뷰]

러시아 수백만명 탈출…중국 ‘경제식민지’ 되나 [월드뷰]

권윤희 기자
권윤희 기자
입력 2023-06-05 15:26
업데이트 2023-11-02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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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 수백만명 러 탈출”
유럽연합 망명 신청 급증
고숙련 노동자 이탈 가속화
“생산성 계속 떨어질 것”
“중국 경제 식민지 될 수도”

“러시아의 중국 의존도가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 어떤 점에서는 서서히 중국의 경제적 식민지가 될 위험을 무릅쓰고 있다.”
2023.4.11 미국 라이스대 연설에서 윌리엄 번스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
윌리엄 번스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은 지난 4월 라이스대 연설에서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서방 제재로 대중(對中) 의존도가 커진 러시아가 중국의 ‘경제적 식민지’로 전락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실제로 위안화를 받고 원유와 천연가스를 내다파는 러시아는 극동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항구 문까지 중국에 개방했다. 여기에 부유층과 고숙련 노동자를 중심으로 인력 유출이 심화하면서 러시아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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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군 동원령을 내린 21일(현지시간) 러시아 예카테린부르크에서 경찰에 체포되는 시위자들. 2022.9.21 AP 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군 동원령을 내린 21일(현지시간) 러시아 예카테린부르크에서 경찰에 체포되는 시위자들. 2022.9.21 AP 연합뉴스


100만명 이상 이미 국경 넘어
젊은 고급인력 유출 심화


4일(현지시간) BBC는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본국을 떠나 망명길에 오른 러시아 국민이 최소 수십만명에서 최대 수백만명에 달한다고 보도했다.

BBC는 특히 교육 수준이 높은 고숙련 노동자 유출로 러시아 산업 경쟁력이 계속 떨어지고 있다는 전문가 진단에 주목했다.

전쟁 발발 직후인 지난해 봄. 러시아에서 첫 번째 탈출이 시작됐다. 주로 신변에 위협을 느꼈거나 미미한 반전 움직임에 실망한 이들이 고국을 떠났다.

망명 흐름은 같은해 9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군 동원령을 전격 발표한 뒤 더 거세졌다.

강제 징집을 피하려는 남성과 그 가족들이 대거 망명길에 오르면서 조지아나 카자흐스탄행 국경에는 며칠 동안 긴 탈출 행렬이 이어졌다.

지난달 영국 국방부는 작년 한 해 130만명이 러시아를 떠난 것으로 추산했다. 포브스지 역시 러시아 당국의 내부 소식통을 인용해 작년에만 60만~100만명이 러시아 국경을 넘었다고 보도했다.

주목할 점은 러시아 망명자 대부분이 부유층 고급인력이라는 점이다.

러시아 이민 현황을 연구하는 사회학자들은 망명자 중 상당수가 러시아에 남은 이들보다 ▲젊고 ▲교육 수준이 높으며 ▲경제적 여유가 있는 ▲대도시 출신인 것으로 분석한다.

BBC는 이들이 50세 미만 IT 전문가, 언론인, 디자이너, 예술가, 학자, 변호사, 의사 등이라고 부연했다.

러시아 기업 구인난 호소
“경제 생산성 계속 떨어질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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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현지시간) 러시아와 그루지야 국경의 베르흐니 라스 검문소 근처에 사람과 자동차가 보인다. 러시아 내무부에 따르면, 9월 17일부터 26일까지 약 7만 8000 명의 러시아인들이 그루지야에 입국했고, 6만 2000 명 이상이 돌아왔다. 북오세티야 당국은 비주택용 자동차의 공화국 접근을 제한할 계획이다. 초안 및 법 집행관들로 구성된 기동 태스크 그룹은 공화국 입구와 러시아-조지아 국경의 베르흐니 라스 검문소에 배치되어 초안 통지서를 배포하고 있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9월 21일 러시아에 부분적인 군사 동원을 발표했다. 2022. 09. 28 타스 연합뉴스
28일(현지시간) 러시아와 그루지야 국경의 베르흐니 라스 검문소 근처에 사람과 자동차가 보인다. 러시아 내무부에 따르면, 9월 17일부터 26일까지 약 7만 8000 명의 러시아인들이 그루지야에 입국했고, 6만 2000 명 이상이 돌아왔다. 북오세티야 당국은 비주택용 자동차의 공화국 접근을 제한할 계획이다. 초안 및 법 집행관들로 구성된 기동 태스크 그룹은 공화국 입구와 러시아-조지아 국경의 베르흐니 라스 검문소에 배치되어 초안 통지서를 배포하고 있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9월 21일 러시아에 부분적인 군사 동원을 발표했다. 2022. 09. 28 타스 연합뉴스
18세에 수도 모스크바로 상경해 대학을 졸업, 여러 회사를 거치며 제품 관리자로 일한 스베틀라나(30대 초반)도 도망치듯 러시아를 떠났다.

모스크바에서 은퇴 후 삶을 계획했던 그는 현재 세르비아의 수도 베오그라드에 산다.

스베틀라나는 “전쟁이 곧 끝나지 않을 것이며, 사람들이 전쟁에 항의하지도 않을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 감정적으로나 이성적으로나, 떠나는 것이 맞는다고 느꼈다”고 BBC에 털어놨다.

그는 “러시아를 떠나야 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며 “당국과 최대한 거리를 두고 싶다”고 말했다.

러시아 최대 민간 은행인 알파 은행은 러시아 전체 노동력의 1.5%가 러시아를 떠났을 것으로 추정한다. 높은 교육 수준을 가진 고급 인력 유출이 러시아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분명하다.

BBC는 고도로 숙련된 전문가 유출로 러시아 기업들이 벌써 인력 부족과 구인난을 호소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고급인력이 러시아를 그냥 떠나는 것도 아니다. 자산 대부분을 정리해 나간다. 러시아 중앙은행도 전쟁 초기 러시아인들이 계좌에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최대치인 1조 2000억 루블(약 19조 6000억원)을 인출했다고 보고한 바 있다.

전문가들은 전쟁과 미래를 맞바꾼 러시아의 산업 경쟁력 하락이 곧 국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전망한다.

러시아 국립과학아카데미의 경제학자 세르게이 스미르노프는 “이런 추세로 볼 때 고숙련자들이 계속해서 러시아를 떠날 방법을 모색할 것”이라며 “종말론적인 시나리오를 좋아하지 않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러시아 경제 생산성은 계속 떨어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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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현지시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부분 동원령을 내린 뒤 27일 한 무리의 러시아인들이 러시아와 조지아의 국경지대인 베르흐니 라르스를 걸어서 지나가고 있다. 2022.9.27 베르흐니 라르스 AP 연합뉴스
21일(현지시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부분 동원령을 내린 뒤 27일 한 무리의 러시아인들이 러시아와 조지아의 국경지대인 베르흐니 라르스를 걸어서 지나가고 있다. 2022.9.27 베르흐니 라르스 AP 연합뉴스
유럽 일대로 흩어진 러시아 망명자들

러시아 망명자들은 유럽 일대로 흩어졌다.

BBC는 지난 15개월 동안 약 15만 5000명의 러시아인이 유럽연합(EU) 회원국이나 발칸반도, 코카서스, 중앙아시아의 여러 국가에서 임시 거주 허가를 받은 것으로 파악됐다고 전했다.

유럽연합망명청(EUAA)에 따르면 유럽연합 회원국에 정치적 망명을 신청한 이들도 약 1만 7000명에 달한다. 코로나19 발발 이전인 2020년 초 수준의 3배가량이다.

다만 이들 중 망명 승인을 받은 사람은 2000여명에 불과하다.

EU 회원국과 미국은 전쟁 발발 후 한동안 자국에 이미 가족이 있거나 업무 용건이 있는 경우가 아니면 비자를 신청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카자흐스탄 등 일부 국가는 올해 초 법을 바꿔 관광 목적으로 체류할 수 있는 기간을 제한해 러시아 이민자 유입을 차단했다.

조지아나 아르메니아 등 일부 친러 국가만이 러시아인들의 왕래에 어떤 제한도 두지 않고 국경을 열어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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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현지시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러시아 모스크바 크렘린궁 내 그라노비타야궁에서 국빈 만찬 중 건배하고 있다. 2023.3.21 로이터 연합뉴스
21일(현지시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러시아 모스크바 크렘린궁 내 그라노비타야궁에서 국빈 만찬 중 건배하고 있다. 2023.3.21 로이터 연합뉴스
인력 유출로 국력 약화 러시아
대중 경제 의존도 갈수록 심화
블라디보스토크항 ‘통큰 선물’


고급인력 유출에 대한 우려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서방의 제재를 받는 러시아가 중국과 한층 더 경제적으로 밀착하는 모습을 보이는 가운데 나왔다.

중국 해관총서(세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과 러시아 무역 규모는 1903억 달러(약 251조 6500억원)으로 전년 대비 29.4% 증가했다.

올해도 양국 경제 밀착은 두드러지고 있다. 올해 1∼5월 러·중 교역 규모는 938억8천600만 달러(약 120조 4000억원)로, 전년 동기 대비 40.7% 증가했다.

지난달 상하이에서 개막한 러시아-중국 비즈니스 포럼에 참석한 미슈스틴 총리는 올해 양국 간 교역 규모가 2천억 달러(약 257조원)에 이를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이는 작년 중·러 간 교역액 1903억 달러(약 244조원) 대비 5% 이상 늘어나는 것이다.

이 같은 흐름 속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3월 21일 정상회담에서‘신시대 전면적 전략 협력 동반자 관계 심화에 관한 공동성명’에 서명하고 1650억 달러(212조 5000억원)에 달하는 상호 투자 프로젝트도 발표했다.

이후 러시아는 극동 연해주의 블라디보스토크 항구 사용권까지 내주며 중국과의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그 덕에 중국 지린성은 지난 1일부터 블라디보스토크항구를 ‘내륙 화물 교역 중계항’으로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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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항. 서울신문 DB
러시아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항. 서울신문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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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보스토크
블라디보스토크 블라디보스토크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왕서방이
중국, 연해주도 넘보나


내륙 화물 교역 중계항은 자국 지역 간 교역에 사용하는 항구로, 외국의 항구라 하더라도 자국 내에서 이뤄지는 교역에 대해서는 관세와 수출입 관련 세금을 부과하지 않는다.

그간 남방으로 물자를 운송하기 위해 1000㎞ 떨어진 다롄 등 랴오닝성에 있는 항구를 이용했던 지린성은 이번 조치로 200~300㎞만 이동하면 바다로 나갈 수 있게 됐다. 물류비 대폭 절감이라는 경제적 이득을 얻은 셈이다.

러시아는 이번 조치로 낙후한 지린·랴오닝·헤이룽장 등 중국 동북 지역과 러시아 극동 지역의 동반 경제 성장을 기대한다. 그러나 연해주를 둘러싼 양국 이해 관계가 달라 러시아의 기대대로 흘러갈지는 미지수다.

중국은 1860년 베이징 조약 때 블라디보스토크를 포함한 연해주를 러시아에 내주면서 동해로 가는 길이 막혔다. 중국이 연해주를 두고도 ‘하나의 중국’ 원칙을 내세우지 않으리란 법이 없다.

만약 러시아의 국제적 고립이 심화하면 블라디보스토크항에 중국 군함이 정박하는 사태까지 벌어질 수도 있다.

일부 전문가들이 연해주가 중국 동북 지역 ‘경제 식민지’가 될 수도 있다고 전망하는 이유다.
권윤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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