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페이지

[데스크 시각] 때늦은 도움은 도움이 아니다/박상숙 산업부장

[데스크 시각] 때늦은 도움은 도움이 아니다/박상숙 산업부장

박상숙 기자
입력 2022-10-16 20:04
업데이트 2022-10-17 00:10
  • 글씨 크기 조절
  • 프린트
  • 공유하기
  • 댓글
    14

PC·스마트폰 시장 주력 韓반도체 부진
미중 패권 경쟁, 산업 불확실성 부추겨
국회 정쟁 멈추고 위기 산업부터 챙겨야

박상숙 산업부장
박상숙 산업부장
“높이뛰기와 달리기처럼 주력 종목이 다른 것이니 단순 비교할 필요가 없습니다.”

대만 반도체 기업 TSMC가 삼성전자를 제치고 세계 반도체 매출 1위로 올라설 것이라는 보도를 접한 한 전문가의 반응이다. 미국의 대중 반도체 수출 통제 조치에 따라 우리 기업이 받을 악영향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삼성마저 왕좌를 내줄 것이라는 추정까지 전해지자 한국 반도체 산업의 새우등 신세가 한층 부각됐다.

하지만 업계의 생각은 다르다. 삼성의 매출 부진이 기술 경쟁에서 뒤처진 것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TSMC가 주력인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는 인공지능, 5G, 차량용 반도체 수요 증가로 시장이 여전히 건실한 반면 삼성의 주력인 메모리반도체는 경기침체로 PC, 스마트폰 등의 교체 수요가 감소해 고전하고 있다. 따라서 활동 무대가 다른 두 회사를 단순 매출로 우위를 정하는 것 자체가 무리수다.

반도체 산업의 진짜 위기는 수요·공급의 시장 논리가 아니라 강대국의 힘의 논리에서 촉발된다. 미국 대통령은 “반도체의 미래는 ‘메이드 인 아메리카’에 있다”고 선언하면서 중국 견제가 핵심인 반도체 지원법을 통과시켰다. 자국에 반도체 공장을 짓는 기업에 최대 30억 달러의 보조금과 25%에 달하는 세제 혜택을 주겠다는 것이다. 앞서 중국은 2025년 반도체 자급률 70%를 목표로 막대한 투자 지원과 최대 10년간 소득세 면제를 약속하고 나섰다.

얼마 전 백악관은 중국 기업에 반도체 장비 판매를 금지하는 봉쇄 정책을 발표했다.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리고 중국의 반도체 기술 발달을 저지하겠다는 포석이다. 삼성, SK하이닉스의 중국 공장에서 생산 차질이 빚어지는 것보다는 오히려 중국의 추격을 당분간 따돌리는 전화위복이 되리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여기에 미국이 한국 기업에 대해서는 대중 반도체 장비 수출 통제를 1년 유예해 주면서 한숨을 돌리게 됐다.

어쨌든 미중 패권 경쟁의 격화와 반도체 산업의 불확실성은 거의 ‘한 몸’이 되고 있다. 강대국들이 생사를 건 진검승부를 펼치는데 정작 반도체로 먹고사는 우리는 강 건너 불구경이다. 훈수만 요란하고 대책은 거북이걸음이다. 사실 태평양 너머에서 반도체 지원법이 발효된 같은 달에 한국에서도 반도체설비 투자 활성화를 위한 이른바 ‘K칩스법’이 마련됐다. 인허가 처리 기간 단축과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에다 세액 공제비율도 최대 30%까지 확대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여야 갈등으로 국회 상임위 문턱도 넘지 못하고 있다.

전경련에 따르면 삼성은 TSMC보다 법인세와 인건비, 인력 수급 측면에서 열악한 환경에 놓여 있다. 기술 패권을 둘러싼 끝없는 싸움에서 버티려면 최소한 해외 경쟁업체 수준의 정책적 뒷받침이 절실하다. 다른 나라 기업들이 국가적 ‘뒷배’를 갖고 글로벌 시장에 나서는 마당에 국내 기업들이 나 홀로 뛰어서는 장기적 승산이 불투명할 수밖에 없다.

몇 달 전 삼성은 세계 최초로 3나노 공정 양산에 돌입했고 이달 초에는 2025년 2나노, 2027년 1.4나노 공정을 도입한다는 로드맵을 발표했다. 하루가 다르게 기술 격차가 좁혀지는 상황에서 ‘속도전’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반도체 지원법이 빨리 처리돼야 기업도 가속도를 낼 것이다.

여야가 사사건건 날이 서는 미국에서도 국익을 우선하는 반도체 법안은 한마음 한뜻으로 통과시켰다. 여의도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수출 효자 반도체가 경기침체로 고민하고 국가 간 힘의 논리에 휘둘리는 상황을 언제까지 수수방관할 것인가.

‘때늦은 도움은 도움이 아니다.’(Slow help is No help) 국회를 볼 때마다 떠오르는 서양 속담이다.
박상숙 산업부장
2022-10-17 26면

많이 본 뉴스

국민연금 개혁 당신의 선택은?
국민연금 개혁 논의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 산하 공론화위원회는 현재의 보험료율(9%), 소득대체율(40%)을 개선하는 2가지 안을 냈는데요. 당신의 생각은?
보험료율 13%, 소득대체율 50%로 각각 인상(소득보장안)
보험료율 12%로 인상, 소득대체율 40%로 유지(재정안정안)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