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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골목 와인숍· ‘이모카세’ 맛집… MZ 놀이터 된 시장

뒷골목 와인숍· ‘이모카세’ 맛집… MZ 놀이터 된 시장

심현희 기자
입력 2022-09-29 18:24
업데이트 2022-09-29 2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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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왜 재래시장에 꽂혔나

“그들은 왜 재래시장으로 갔을까.”

최근 K재래시장의 변화는 저렴한 공간을 찾아 재래시장에서 창업을 결심한 ‘공급자’ MZ세대와 새로운 경험을 중요하게 여기며 오래된 골목길과 노포에 열광하는 ‘소비자’ MZ세대의 트렌드가 맞아떨어진 결과다. MZ세대의 발길을 이끄는 데 성공한 서울의 주요 재래시장에선 ‘새로운 콘셉트, 음식 경쟁력, 커뮤니티’ 등의 요소를 갖춘 소수의 핵심 매장이 전체 시장의 이미지와 활기를 끌어올리는 ‘트리거’ 역할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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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구 영동시장에서 소규모 술집 ‘영동주간’을 운영하는 김유진 대표. 그는 돈을 아끼기 위해 입지가 가장 떨어지는 시장 뒷골목에 자리를 잡았다.
서울 강남구 영동시장에서 소규모 술집 ‘영동주간’을 운영하는 김유진 대표. 그는 돈을 아끼기 위해 입지가 가장 떨어지는 시장 뒷골목에 자리를 잡았다.
● 레트로 감성 ‘뿜뿜’… 뒷골목 활기

29일 서울 강남구의 영동시장에서 만난 김유진(37) ‘영동주간’ 대표는 시장 1호 MZ세대 창업자다. 첫 직장이었던 공연기획사를 퇴사한 뒤 2016년 시장 뒷골목에 테이블 4개의 소규모 술집을 차렸다. 김 대표는 “전형적인 동네 재래시장이었고, 특히 휑한 뒷골목엔 오가는 사람조차 없었다”면서 “대출을 받아 고정비용이 적게 드는 뒷골목 입지를 택했다”고 했다. 매장이 작아 자주 마주치는 단골끼리 자연스레 커뮤니티가 형성됐고 이들이 코로나19 기간 생존할 수 있는 버팀목이 돼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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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광진구 자양시장의 슈퍼스타 ‘새마을구판장’. 와인숍인 이곳은 와인 커뮤니티에서 와인 성지로 알려지며 자양시장의 고객층을 확대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서울 광진구 자양시장의 슈퍼스타 ‘새마을구판장’. 와인숍인 이곳은 와인 커뮤니티에서 와인 성지로 알려지며 자양시장의 고객층을 확대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광진구 자양시장은 재래시장이라는 전통 무대에 와인이라는 새 콘텐츠가 결합해 전국구로 떠오른 시장이다. 시장 입구 쪽에 들어선 와인숍 ‘새마을구판장’이 ‘게임 체인저’ 역할을 했다. 합리적인 가격과 알찬 셀렉션으로 입소문이 나 ‘와인의 성지’로 통한다.

이곳을 운영하는 대표 A씨는 와인을 너무 사랑해 편하게 와인을 판매할 공간을 찾다가 2018년 시장에 둥지를 틀었다. 그는 “장사가 안되면 발주한 와인을 혼자 다 마셔 버릴 생각이었는데 일이 커졌다”며 웃었다. 마침 코로나19 전후로 국내 와인 시장은 두 배 이상 성장했다. 전국에서 손님들이 끝없이 밀려들어 왔다. 새마을구판장은 시장 내 먹거리 매출도 끌어올리고 있다. 닭집을 운영하는 B씨는 “와인을 사 가는 손님들이 함께 먹을 음식을 구입하는 경우가 많아 닭튀김 주문이 두 배 이상 많아졌다”고 말했다.

● 유튜브 콘텐츠 타고 여행 온 기분

중구 신당시장은 재래시장만의 강점인 ‘음식’으로 MZ세대의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다. 시장 중앙에 펼쳐진 먹자골목 가운데 건어물과 맥주를 파는 ‘옥경이네 건생선’은 지난 주말 30분을 대기해야만 입장할 수 있었다.

최근 MZ세대 사이에서 ‘맛집의 교과서’로 통하는 가수 성시경의 유튜브 ‘먹을텐데’에 소개된 이후로는 발 디딜 틈도 없어졌다. 여자친구와 종종 신당시장에서 데이트를 즐긴다는 최모(29)씨는 “시장에는 평소 익숙한 파인다이닝이나 오마카세 식당과 달리 ‘이모카세’로 통하는, 생생하고 예측 불가능한 서비스가 있어 여행하는 기분”이라고 했다.

서울의 재래시장이 MZ세대의 ‘놀이터’로 진화한 것은 온라인 쇼핑, 레트로, ‘갓생’(God生) 열풍 등 포스트 코로나 시대 새로운 라이프스타일 트렌드의 영향이 크다. 실제로 서울시의회에 따르면 코로나 전후 3년간 서울 시내 일반 상권은 매출이 감소한 반면 전통시장 매출은 오히려 상승했다. 지난해 총매출액은 2018년 대비 19.4%가 뛰었고, 점포당 평균 매출액도 2019년 6083만원에서 2020년 7810만원, 2021년 8365만원으로 증가 추세에 있다.

●코로나로 단절된 삶 채워준 사람 냄새

특히 MZ세대가 재래시장의 소비를 이끈 것으로 분석된다. 이들은 생필품을 구매하기 위해 시장을 찾았던 이전 세대와 달리 분위기를 즐기기 위해 시장을 찾는다. 문정훈 서울대 푸드비즈니스랩 교수는 “코로나 기간 집에서 음식을 배달해 먹고 온라인에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게 되면서 적은 돈으로 독특한 경험을 할 수 있는 재래시장 데이트가 이들의 놀이 문화로 발전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결핍은 곧 트렌드다. 재래시장에서는 비대면 라이프스타일에서 찾아보기 힘든 ‘사람 냄새’가 난다는 것도 MZ세대의 발길을 이끄는 요소다. 일주일에 한 번은 집 근처 재래시장에서 장을 보고, 외식도 한다는 정은실(35)씨는 “코로나로 인해 단절됐던 인간미를 느낄 수 있다”고 전했다.

MZ세대는 먼 미래보다는 운동, 가계부 쓰기 등 소소한 계획을 실천해 ‘보람 있는 하루’를 보내는 갓생을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긴다. 성동구에 거주하는 주부 박진주(35)씨는 “최근 물가가 급등해 조금이라도 생활비를 아끼고자 인근 재래시장을 찾기 시작했는데 같은 물건도 훨씬 저렴하게 살 수 있고 친근해 마트 대신 시장에 더 자주 오게 됐다”고 말했다.
글·사진 심현희 기자
2022-09-30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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