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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가 철거한 덕수궁 대한문 월대 되살린다

일제가 철거한 덕수궁 대한문 월대 되살린다

이순녀 기자
이순녀 기자
입력 2020-04-08 11:30
업데이트 2020-04-08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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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대로 추정되는 덕수궁 대한문 월대 사진 엽서. 문화재청 제공
1910년대로 추정되는 덕수궁 대한문 월대 사진 엽서. 문화재청 제공
일제강점기에 사라진 덕수궁 정문 대한문 앞 월대(月臺)가 복원된다.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는 대한제국 황궁인 덕수궁 대한문의 면모를 회복하기 위해 월대 재현 설계를 시작해 내년까지 축조 공사를 마무리할 예정이라고 8일 밝혔다.

월대는 궁궐이나 묘단(廟壇)에 있는 주요 건축물에 설치하는 넓은 기단 형식의 대(臺)를 뜻한다. 국보인 종묘 정전과 경복궁 근정전, 창덕궁 돈화문에 월대가 남아 있다. 경복궁 광화문은 월대 복원 작업이 추진 중이다.

대한문의 원래 이름은 ‘대안문(大安門)’이었다. 황성신문과 독립신문에 따르면 대안문 건립 시기는 1898년 무렵으로 추정된다. 월대는 1899년에 공사가 시작됐고, 1900년에 새로 고쳤다는 문헌 기록이 있다. 1904년 덕수궁 대화재 때 대안문은 불타지 않았지만 보수하면서 1906년에 이름을 ‘대한문(大漢門)’으로 고쳤다.
1902~1903년 무렵 촬영한 덕수궁 대한문 월대. 이돈수.이순우가 펴낸 ‘꼬레아 에 꼬레아니 사진해설판’(2009)에 수록됐다. 문화재청 제공
1902~1903년 무렵 촬영한 덕수궁 대한문 월대. 이돈수.이순우가 펴낸 ‘꼬레아 에 꼬레아니 사진해설판’(2009)에 수록됐다. 문화재청 제공
현재 덕수궁 대한문 모습. 문화재청 제공
현재 덕수궁 대한문 모습. 문화재청 제공
대한문 월대는 1910년대에 사라진 것으로 추정된다. 1910년대에 촬영한 것으로 알려진 사진을 보면 월대가 있지만, 1919년 고종 국장 사진에는 월대가 보이지 않는다. 지금은 월대 끝에 설치한 석수(石獸·동물 형상 석조물)만 존재한다. 대한문은 1970년 태평로 확장때 원래 위치에서 33m 가량 물러선 지점으로 옮겨졌다.

궁능유적본부는 대한문과 월대를 원 위치에 복원하는 방안은 사실상 어렵다고 판단해 원형 고증을 통해 현재 대한문 자리에 월대를 세우기로 했다. 오는 7월까지 설계를 마친 뒤 전문가 자문을 거쳐 내년에 월대 복원을 마칠 예정이다.

이순녀 선임기자 cora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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