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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지식재산권 보호한다지만…‘짝퉁 레고’가 현실 보여줘

중국, 지식재산권 보호한다지만…‘짝퉁 레고’가 현실 보여줘

김태이 기자
입력 2019-01-23 14:45
업데이트 2019-01-23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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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특별판 내놓으며 中시장에 공들여도 똑같이 베낀 복제품 ‘뚝딱’



지난 20일 중국 상하이 창닝(長寧)구 백화점 난펑청(南豊城) 내 대형 완구 판매점인 토이저러스.

중국의 설 명절인 춘제(春節·중국의 설)를 앞두고 매장 입구에는 레고가 최근 중화권 지역에서 출시한 한정판 제품인 ‘중국의 신년 전야 만찬’ 세트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중국인들이 각별히 좋아하는 ‘8’자로 시작하는 ‘80101’이라는 번호가 붙은 이 제품은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아들, 딸 6명의 중국인 가족이 춘제 전야에 둥근 식탁 주변에 화목하게 모여앉아 만두, 생선, 게, 쌀밥 등 푸짐한 음식을 차려놓고 먹는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

매장에서 만난 직원 자오(趙)씨는 “전엔 볼 수 없던 중국 특별판이어서 아주 인기가 좋다”며 “다른 제품들보다 특별히 많이 팔려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레고는 이달 들어 이 제품과 더불어 용춤, 용선 경주 등 중화권 한정판 제품 3종류를 동시에 내놓았다.

세계 최대 완구 업체인 덴마크 회사 레고가 중화권을 겨냥해 한정판 제품을 출시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로 그만큼 중국 시장에 각별한 공을 들이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실제로 중국은 레고의 미래가 걸린 전략적 중요성을 가진 시장으로 떠올랐다.

레고의 연간 보고서를 보면, 2017년 매출은 전년보다 8% 감소한 350억 덴마크 크로네(약 6조원)를 기록했다. 레고의 매출이 줄어든 것은 2004년 이후 13년 만에 처음이다.

그럼에도 중국 시장에서 레고는 두 자릿수 이상의 고성장을 했다. 레고의 전체 매출에서 중국 지역 매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10% 이상으로 알려졌다.

레고의 주력 소비군인 어린이들이 전통적 장난감 대신 동영상 시청이나 게임에 눈을 돌리면서 구조적인 위기를 맞고 있는 레고에 연간 600억 위안(약 10조원) 이상 규모로 두 자릿수 성장이 이어지는 중국 완구 시장의 중요성은 날로 커지고 있다.

하지만 레고는 중국에서 ‘짝퉁과의 전쟁’이라는 도전에 맞닥뜨린 상태다.

러핀(LEPIN), 벨라(BELLA) 같은 복제품 생산 업체들은 정품의 10분의 1에 가까운 저가로 중국 시장은 물론 레고의 해외 시장까지도 잠식해가고 있다.

한국 인터넷에서도 러핀이나 벨라 제품을 샀다는 누리꾼들의 글들을 손쉽게 찾아볼 수 있다.

대형 온라인 유통 업체 관계자는 “복제품은 거의 세관 통과 과정에서 적발되기 때문에 중국 업자들이 한국으로 물건을 보낼 때는 박스를 빼고 봉지에 내용물만 담아 보내는 방식을 취한다”고 전했다.

레고는 중국에서 적극적인 소송전을 벌이면서 복제품 유통에 제동을 걸고자 하지만 ‘법은 멀다’는 현실의 벽에 부딪히고 있다.

러핀, 벨라 같은 복제품 회사들은 레고의 압박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레고가 내놓은 전략 상품인 중화권 특별판까지 거의 동시에 시장에 내놓았다.

중국 최대의 인터넷 쇼핑 사이트 타오바오(淘寶)에서 레고 춘제 특별판 ‘80101’을 검색하면 곧바로 러핀과 벨라의 복제품들까지 같이 검색되어 나온다.

정품 제품이 700 위안가량에 팔리고 있지만 일부 복제품의 가격은 80 위안대에 불과하다.

레고가 겪는 이 같은 어려움은 중국 내 지식재산권 난맥상의 축소판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무역 전쟁이 벌어지는 가운데 미국은 중국의 지식재산권 절취, 남용 등 문제를 적극적으로 의제화하고 있다.

중국이 미국 제품을 대량 구매해 무역 불균형을 해소하는 데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지식재산권 절취, 중국 투자 기업을 대상으로 한 지식재산권 이전 강요 등 문제는 양국 간에 만족할 합의가 이뤄지기 어렵다는 관측도 고개를 든다.

미국 정부 내에서도 지재권 보호 노력을 포함한 중국의 ‘구조적 변화’ 의지가 약하다는 불평이 터져 나온다는 외신 보도도 잇따르고 있다.

미국의 공세에 맞서 중국 정부는 최근 들어 지재권 보호 강화 의지를 천명하고 있다.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는 지난달 특허 침해 배상을 강화한 특허법 개정안 초안을 심의했다. 초안은 권리인의 손실이나 권리 침해자의 이익, 특허 사용료를 기준으로 1∼5배의 손해를 배상하도록 했다.

최근 중국 공안은 다이슨 헤어드라이어 모조품 제작·유통업자 단속 사실을 대대적으로 홍보하기도 했다.

하지만 중국에서 여전히 지재권을 존중하는 사회·경제적 분위기가 충분히 성숙하지 못한 데다가 지재권에 대한 정부의 단속도 최근 강화 추세에 있다지만 침해를 당하는 기업의 입장에서는 여전히 미온적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지재권 침해로 적발됐을 때 받는 경제적·사회적 불이익이 지재권 침해로 벌어들일 수 있는 이익보다 훨씬 크다는 점도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된다.

작년 11월 광둥성 웨수 법원은 러핀이 여러 복제품을 만들어 레고의 지재권을 침해했다면서 해당 제품의 생산과 판매를 중단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형식상으로는 레고의 승리였지만 러핀이라는 브랜드로 복제품을 만들던 업체들은 450만위안(약 7억4천만원)의 배상금을 지불하는 것으로 법적 책임을 모면했다. 이들에게 이후 중국 사법 당국이 형사 책임을 지게 했다는 보도도 찾아볼 수 없다.

이번 설 특별판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복제업자들은 법원의 판결 이후에도 계속 레고의 제품을 그대로 만들어 시중에 판매하고 있다.

중국에서 활동 중인 한 미국 변호사는 “중국이 최근 지재권 위반 단속을 강화한다고 하지만 진짜로 적극적이라고 여기는 이들은 많지 않다”며 “중국의 지재권 보호 정책은 한쪽 눈을 감고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상하이의 한국 로펌에 근무 중인 변호사는 “그간 외국 업체들이 지재권 위반 대상자를 대상으로 소송을 주로 전개했지만 앞으로는 거래를 매개하는 온라인 플랫폼에도 불법 제품 판매의 책임을 묻는 방향으로 소송 전략을 선회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고 지적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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