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부능선 넘어 8부능선 고지로…크루즈-케이식 제휴 기선제압 효과
미국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가 26일(현지시간) 치러진 동북부 5개 주(州) 대선 경선에서 완승하면서 선두 주자로서의 독보적 입지를 더욱 공고히 했다.트럼프는 ‘운명의 승부처’였던 지난 19일 뉴욕 주에서 압승하며 이 지역 대의원 95명 가운데 89명을 챙기는 괴력을 과시한 데 이어, 이날 펜실베이니아와 메릴랜드, 코네티컷, 로드아일랜드, 델라웨어 등 5개 지역에서 모두 큰 득표 차로 승리하며 파죽지세를 이어갔다.
트럼프는 이날 5곳 전역에서 60% 안팎의 높은 득표율을 기록하며 완벽한 승리를 이뤄냈다.
구체적으로 개표가 완료된 로드아일랜드와 델라웨어의 득표율은 각각 63.8%, 60.8%였으며 91∼92% 개표 진행 상황에서 코네티컷은 57.8%, 펜실베이니아 56.9%, 메릴랜드 55.0%의 득표율을 보였다.
이번 압승으로 트럼프는 최소 105명의 대의원을 추가로 확보하면서 후보 자리에 성큼 다가섰다.
누적 대의원을 기존 845명에서 최소 950명으로 크게 늘리면서 ‘매직 넘버’(전체 대의원 2천472명 중 과반인 1천237명)의 76.8%를 달성했다. 7부 능선을 넘어 단숨에 8부 능선을 목전에 두게 됐다.
2위 테드 크루즈(텍사스) 상원의원과의 대의원 격차도 400명 가까이로 벌렸다.
크루즈 의원이 확보한 기존 대의원은 559명으로, 이번 선거 후에도 별다른 변동이 없을 전망이다. 미 언론은 크루즈 의원이 이번에 겨우 1명을 추가하는 데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미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트럼프의 압승으로 (결선투표 성격의) ‘경쟁 전당대회’(contested convention) 가능성이 약화됐다”고 분석했다.
트럼프 자신도 이날 승리 직후 뉴욕의 트럼프 타워에서 한 승리 연설에서 “나는 이미 나 스스로 사실상 공화당 후보 지명자라고 여기고 있다. 내 입장에서 말하면 경선은 사실상 끝났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의회전문지 더 힐(The Hill)은 앞서 트럼프가 이날 5개 주 대의원 172명 가운데 펜실베이니아의 ‘비구속 대의원’(unbound delegates) 54명을 제외한 118명 중 90명 이상을 챙겨야 자력 과반 확보의 길을 이어갈 수 있다면서 “오늘의 승부가 (대의원 과반 확보) 목표를 달성하는 데 숨통을 터줄 것”이라고 전망했다.
트럼프 입장에서 이번 승리는 크루즈 의원과 존 케이식 오하이오 주지사가 막판 ‘전략적 제휴’를 통해 자신을 협공하는 상황에서 거둔 것이어서 더욱 의미가 크다. 두 주자가 구축한 ‘반(反)트럼프’ 공동전선의 기세를 꺾는데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캘리포니아를 비롯해 앞으로 남은 10개 주에서도 완벽한 승리를 거둠으로써 자력으로 대선 후보 자리를 꿰찬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
AP 통신 등 미 언론도 트럼프가 나머지 지역에서도 이번처럼 압승한다면 과반 달성이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라고 분석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트럼프가 자력으로 대의원 과반을 확보할 수 있을지에는 여전히 회의적 전망이 우세한 편이다.
남은 10개 지역의 대의원은 502명으로, 계산상 트럼프가 평균 60% 이상의 득표율을 기록해야 자력 후보를 기대해 볼 수 있지만, 크루즈 의원과 케이식 주지사가 경선지역 나눠 먹기까지 하며 트럼프 저지 총력전에 나선 터라 60% 득표가 절대 쉽지는 않은 상황이다.
더욱이 두 사람의 전략적 제휴가 이날 경선이 아니라 인디애나(5월 3일), 오리건(5월 17일), 뉴멕시코(6월 7일) 경선을 겨냥한 것인 만큼 앞으로 이 3곳의 표심이 어떻게 나타나느냐에 따라 트럼프의 운명도 달라질 전망이다.
크루즈-케이식 선거연대가 초반부터 삐걱거리는 조짐을 보이긴 하지만, 일부라도 효과를 발휘해 트럼프가 한곳에서라도 고전하거나 패배할 경우 과반 확보는 한층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여론조사로 봐도 남은 지역에서 압도적 승리를 100% 장담할 수는 없다. 일례로 폭스뉴스의 최근 인디애나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트럼프 41%, 크루즈 의원 33%, 케이식 주지사 16% 등으로 크루즈 의원과 케이식 주지사의 지지율을 합치면 트럼프에 8%포인트 앞선다.
이런 가운데 당 주류 진영은 트럼프의 과반 확보 실패에 대비해 경쟁 전당대회나 경선에 참여하지 않은 제3의 인물도 출마할 수 있는 ‘중재 전당대회’(brokered convention)를 준비하고 있으나, 속내는 더욱 복잡해지는 형국이다.
특히 남은 주자 중 그나마 희망을 걸었던 크루즈 의원이 5곳 가운데 펜실베이니아를 제외한 나머지 4곳에서 케이식 주지사에게도 밀려 3위로 추락하자 큰 충격에 휩싸인 모양새다.
주류 진영은 경쟁 또는 중재 전당대회에서 트럼프를 낙마시키고 대신 크루즈 의원이나 폴 라이언(위스콘신) 하원의장과 같은 제3의 인물을 추대한다는 구상이었으나 이마저도 어렵게 됐다는 분석이 많다. 더욱이 트럼프의 기세가 워낙 거센 데다가 비록 과반을 확보하지 못하더라도 압도적 1위 주자를 강제로 내치는 데 대한 정치적 부담도 적지 않을 것이라는 점에서다.
명분이 약한 것도 약한 것이지만 자칫 적전분열 속에 대선 본선 자체를 망칠 수 있고, 이 경우 선거 패배의 책임을 주류 진영이 고스란히 떠안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