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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검사 잘 안다” 선전하고, 계약없이 돈 받는 변호사 의심하라

“판검사 잘 안다” 선전하고, 계약없이 돈 받는 변호사 의심하라

입력 2016-04-27 07:12
업데이트 2016-04-27 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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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고관계 선전’, ‘구명 로비’ 내걸고 돈만 챙겨…성공보수 반환 분쟁도

고위 판·검사 출신 변호사가 현직 판·검사와의 친분과 인맥을 내세워 수사나 재판을 유리하게 이끄는 ‘전관예우’ 문제는 사법부의 오랜 병폐로 지적돼 왔다.

그러나 요즘에는 사건 배당·처리 기준 투명화, 양형기준 채택, 평생법관제 도입 등 여러 요인으로 인해 전관예우가 사실상 통하기 힘든 상황인데도 그게 가능할 것처럼 의뢰인을 속여 거액의 수임료를 뜯어내는 변호사도 적지 않다.

27일 대한변호사협회와 법조계에 따르면 최근 수년간 다양한 유형의 변호사 일탈 행위가 파악돼 징계가 내려졌다.

2012년 5월 A 변호사는 한 의뢰인의 형사사건을 맡아 구속되지 않게 해주는 조건으로 2천만원에 수임계약을 했다. 그러나 검사실에 변호사 선임계도 내지 않고 의뢰인의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아무런 일을 하지 않았는데도 수임료를 돌려주지 않았다.

이 변호사는 다른 의뢰인의 형사사건 항소심을 맡고서 착수금 3천만원을 받은 뒤 “담당 부장판사 아들이 의대생인데 등록금으로 힘들어한다. 이럴때 조금 도와주면 재판에 이득이 있으니 성공보수료를 미리 달라”고 말해 1천만원을 미리 받았다. 그러나 선임계를 내지 않고 재판 준비도 전혀 하지 않았다. 항의를 받고 수임료를 전액 돌려주겠다고 말해놓고도 결국 주지 않았다.

그의 수법은 비슷하게 이어졌다. 대법원 형사사건을 맡아 착수금 2천만원을 받은 뒤 의뢰인에게 “내가 이 사건을 맡은 대법관과 같이 근무했던 적이 있어 잘 안다. 마지막으로 베팅을 한 번 해보자. 2천만원이 필요하다”고 큰소리쳤다. 조건부로 성공보수 2천만원을 받고 불리한 판결이 선고되면 반환하기로 약속했다. 결국 불리한 판결이 나왔지만 성공보수는 토해내지 않았다.

피해를 본 의뢰인들이 변협에 진정을 넣어 이 변호사는 ‘연고관계 선전 금지 위반’으로 과태료 1천만원의 징계를 받았다.

B 변호사 역시 사기죄로 징역 4년을 선고받고 수감중인 의뢰인 사건을 착수금 1천500만원에 수임한 뒤 “항소심 주심판사와 술자리를 함께 한 적이 있는 친한 사이”라며 성공보수를 미리 달라고 요구해 4천만원을 조건부로 받았다.

그는 변협이 조사에 착수하자 성공보수금을 돌려주고 “의뢰인을 안심시키기 위해 그런 말을 한 것”이라고 변명했다. 변협은 돈을 돌려준 점을 참작해 과태료 500만원 징계를 내렸다.

이런 식으로 변호사들이 담당 판사·검사와의 친분을 내세워 성공을 약속하고 성공보수를 조건부로 미리 당겨받는 관행은 작년 7월 대법원이 형사사건 성공보수를 무효라고 판결한 뒤에도 근절되지 않고 있다.

대법 판례 취지에 따르면 형사사건 성공보수는 무효이며 의뢰인은 성공보수 명목으로 지급한 비용의 반환을 요구할 수 있다.

그러나 성공보수를 받지 못하자 착수금을 높여 받는 일종의 ‘풍선효과’가 나타나기도 한다. 전관 변호사의 경우 착수금에 성공보수 몫을 미리 얹어받아 수임료 자체를 뻥튀기하는 사례가 나온다.

C 변호사는 의뢰인에게서 조건부로 성공보수를 미리 받고서 사건을 해결해주지 못했는데도 일부를 반환하지 않아 지난해 12월 변협에서 과태료 300만원 징계를 받았다.

최근 정운호(51) 네이처리퍼블릭 대표 역시 자신을 폭행 혐의로 고소한 A(46·여) 변호사가 보석을 약속하고 20억원의 성공보수를 미리 받아간 뒤 보석이 안 됐는데도 돌려주지 않았다고 주장해 서울지방변호사회가 조사에 나섰다.

이 사건은 거액의 수임료 논란과 함께 정 대표가 전관 출신 변호사들을 통해 검사·판사에게 로비를 시도한 정황이 드러나 논란이 커졌다.

검찰의 항소심 구형량이 낮아졌다는 점에서 검찰 로비가 통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있지만, 법원에서 보석이 기각되고 항소심도 실형이 선고돼 ‘성공’한 사례는 없는 셈이다. 성공보수만 받아 챙긴 변호사들의 행위는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수임료 액수 자체에는 법적인 규제가 없다. 변호사윤리장전에만 ‘변호사는 직무의 공공성과 전문성에 비춰 부당하게 과다한 보수를 약정하지 않는다’고 돼 있다.

형사사건으로 구속돼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절박한 의뢰인들은 ‘일단 구속이나 실형 선고는 면하고 보자’는 생각에 변호사들이 요구하는 대로 터무니없는 거액의 수임료를 건네는 경우가 적지 않다.

‘구명 로비’를 하겠다며 돈을 받고서 실제로는 아무런 일을 안했다가 형사처벌되는 사례도 있다. 2009년에는 전주에서 ‘수사 무마’ 명목으로 의뢰인의 돈을 받아 다른 용도에 소비한 변호사 사무장이 징역 1년6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2010년에는 대법관들에게 로비하겠다며 의뢰인에게서 12억원을 뜯어내 개인 용도로 쓴 브로커에게 징역 6년이 선고됐다.

수임료 약정을 구두로만 하고 계약서를 쓰지 않는 경우도 있는데, 이런 경우 그 돈의 액수나 성격을 증명할 방법이 없어 변호사를 형사고소하는 것은 물론 민사소송으로도 돌려받기 어렵다.

변호사 수가 많아지다 보니 사건을 수임해 착수금을 받고도 일을 하지 않고 떼먹는 변호사나 경력·전문분야를 허위로 광고를 하는 변호사도 늘어나는 추세다.

사건을 맡기려는 변호사가 비위로 징계받은 전력이 있는지 확인하려면 변협 홈페이지에서 징계내역 열람을 신청할 수 있다.

법원 관계자는 “정운호씨 사건에서 보듯 정씨가 변호사에게 얼마나 많은 돈을 건넸는지와 상관없이 법원은 엄정하게 실형을 선고했다”라며 판사와 친분을 과시하는 변호사를 경계하라고 당부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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