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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국회 떠나는 ‘다문화 1호 의원’ 이자스민

<인터뷰> 국회 떠나는 ‘다문화 1호 의원’ 이자스민

입력 2016-04-21 07:30
업데이트 2016-04-21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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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달 4년 임기 마무리 “이민 정책 토대 만드는 데 힘 쏟아” “늘 살얼음판 밟는 기분…어차피 욕먹을 바엔 더 목소리 낼걸”

“이제야 감이 잡히는데 떠나려니 아쉽네요.”

최초의 이주민 출신 국회의원 이자스민에게 지난 4년은 짧은 시간이었다.

지난 19일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집무실에서 만난 그는 “이민·다문화 정책의 토대를 만들고자 했다”며 “어차피 4년 내내 욕먹을 거였으면 처음부터 더 적극적으로 나설 걸 그랬다”며 웃어 보였다.

최초이자 유일한 ‘다문화 대표 국회의원’으로서 그는 임기 동안 이민과 다문화 정책 활동에 주력해왔다. 관련 상임위에서 활동하며 불법체류자의 자녀인 미등록 이주아동의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한 이주아동권리보장기본법안과 이민·다문화 정책 컨트롤 타워 설치를 골자로 하는 이민사회기본법안을 대표발의했다.

동시에 그는 반(反)다문화 세력의 타깃이 되며 악성 댓글에 시달리기도 했다.

이 의원은 “늘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었지만 반다문화 정서를 두려워해선 안 된다”며 “앞으로 더 넓은 무대로 나아가 대한민국이 꿈꿀 수 있는 사회라는 것을 알리고 싶다”고 포부를 전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 다음 달이면 임기가 끝난다. 의정 활동을 마무리하는 소감은.

▲ 시작부터 순탄치 않았다. 국회에 들어와 이민·다문화 관련 자료를 찾아보니 겉핥기식으로 한 경우가 많았다. 갈고닦은 틀이 없었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랐다. 하지만 내가 발판이라도 만들어 놓아야 다음 국회에서 좀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다고 생각해 정책의 토대를 만드는 데 힘을 쏟았다.

-- ‘다문화 1호 국회의원’이란 타이틀이 부담되진 않았나.

▲ 처음에는 늘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었다. 내가 잘못하면 두 번째, 세 번째는 없을까봐 두려웠다. 최대한 말을 조심하고 화젯거리가 되는 것을 피했는데 조용히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지금 와서 보니 4년 내내 욕먹을 바엔 좀 더 적극적으로 할 걸 그랬다는 생각이 든다. 욕 안 먹으려고 노력했는데 어차피 욕을 먹더라(웃음). 좀 더 목소리를 냈어야 했다는 아쉬움이 있다.

-- 의정 활동에서 역점을 둔 부분은.

▲ 미래를 내다보는 이민·다문화 정책의 토대를 만드는 것이었다. 아직 우리나라는 이민이 법적 용어가 아니다 보니 정책에 혼선이 있다. 유관 부처인 노동부·법무부·여성가족부에 “고용허가제로 들어온 이주노동자가 이민자인가”라고 물어보면 대답이 제각각이다. 개념조차 통일되지 않은 것이다. 이민의 속성에 대한 이해도 부족하다. 가난한 노동자만 받아들이지 말고 엘리트 중산층을 받아들이자고 하는데 고국에서 삶이 안정된 사람들은 이민을 잘 하지 않는다. 이민은 기본적으로 현재의 삶보다 더 나은 미래를 찾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민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니 이주민에 대한 차별이 있어도 그게 차별인지 모른다.

-- 심혈을 기울인 이주아동권리보장기본법안과 이민사회기본법안이 아직 계류 중이다. 현실적으로 19대 국회에서 통과가 어려워 자동 폐기될 운명을 눈앞에 두고 있다.

▲ 아쉽다. 이주아동권리보장기본법안은 2년 동안 준비했는데 욕먹자는 마음으로 했다. 미등록 체류자의 아이는 잘못이 없다. 일단 태어난 아이인데 교육과 건강 등 기본권은 보호해야 한다. 안 그러면 나중에 사회적 비용이 더 커질 수 있다. 결국 우리 사회의 몫이다. 외국인 근로자와 결혼이주여성도 정부가 정책적으로 들여온 사람들이다. 데려와 놓고 방치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 이민·다문화 정책 컨트롤 타워의 경우, 또 다른 ‘옥상옥(屋上屋)’이 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다.

▲ 이민 정책의 ‘코리아 스탠더드’를 만들기 위한 조직이다. 컨트롤 타워는 부처 간 정책을 연구·조율하고 비전을 수립하는 기능을 한다. 우리 현실에 맞는 정책을 고민하는 역할이다. 그동안 미국과 독일 등 이민국가의 정책을 벤치마킹해왔는데 그 나라들과 달리 우리나라는 전통적인 이민국가가 아니다. 벤치마킹한 정책이 우리나라에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 알 수 없다. 이민 정책의 ‘코리아 스탠더드’가 필요한 이유다.

-- 다문화가족 정책이 궁극적으로 일반 가족 정책과 통합돼야 한다고 말해왔다.

▲ 처음 국회에 왔을 때 ‘다문화’라는 용어를 없애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주민을 일반 시민과 구분 짓고, 역차별의 빌미가 되기 때문이다. 언제부턴가 다문화가 유행이 돼버렸다. 시민단체와 기업들이 다문화를 내세워 이벤트성 사업을 펼치다 보니 다문화만 지원을 받는 것처럼 보인다. 실상은 다르다. 실제 정부 예산은 얼마 되지 않고, 정책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경우도 많다. 다문화가족지원법마저 없다면 아주 필수적인 지원조차 없어질 수 있다. 궁극적인 방향은 일반 가정 정책과 통합해 더불어 사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지만 이주민을 위한 ‘맞춤형 정책’은 여전히 필요하다.

-- 거세지는 반다문화 정서를 줄이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하다고 보나.

▲ 반다문화 정서는 이민자가 늘어나면 어느 나라나 다 겪는 당연한 현상이다. 경제가 좋아지지 않는 한 반다문화 정서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경제가 안 좋을수록 소수자가 비난의 대상이 되기 쉽다. 하지만 정부나 정치인이 반다문화 정서를 두려워해서 정책을 만드는 데 머뭇거릴 필요는 없다. 다문화에 대한 인식 개선은 장기적으로 접근해야 할 주제다. 정부가 단기간 성과에 집중하는 한 인식 개선 사업은 힘들다.

-- 반다문화 세력의 타깃이 되면서 임기 내내 악성 댓글에 시달렸다.

▲ 욕을 많이 먹어서 아주 오래 살 것 같다(웃음). 연예계에 있을 때는 지지를 많이 받았는데 국회에 들어오자마자 악플이 쏟아졌다. 처음에는 충격이 컸다. 도대체 내가 뭘 했길래 그러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이들 때문에 더욱 마음이 아팠다. 엄마가 정치를 안 했으면 받지 않아도 되는 스트레스를 받았다. 댓글을 다 읽는데, 요즘에는 나를 위해 목소리를 내는 분이 많아졌다. 힘이 된다.

-- 20대 국회에서는 다문화를 대표하는 의원이 나오지 못했는데.

▲ 어려운 경제 상황이 한몫했다고 본다. 아무래도 이민자보다 일자리가 화두이다 보니 각 당에서 비례대표를 낼 때 다문화를 배려하기 힘들었다고 생각한다. 반다문화 정서도 무시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국내에 거주하는 이주민이 200만 명에 가깝다. 국회의원 지역구 인구 상한선(28만 명)의 7배나 된다. 그들을 대표하는 의원이 적어도 1명쯤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이주민을 대표하는 의원이 없는 20대 국회에서는 이민·다문화 정책에 대한 관심이 매우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 앞으로의 계획은.

▲ 정해진 건 없지만, 다문화가정 2세를 지원하는 활동을 생각하고 있다. 아이들에게 롤모델을 만들어주고 싶다. 대한민국이 꿈꿀 수 있는 사회라는 걸 알리고 싶다. 우선 강연 활동을 하며 이민·다문화 정책에 대한 관심을 환기하고 싶다. 당장 6∼7월에 일본에서 강연이 잡혀 있다. 방송에서도 요청이 오면 응할 생각이 있다. 정치인으로서 그동안 활동에 제약이 있었지만 이제는 국회를 벗어나 더 넓은 무대로 나아간다고 생각한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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