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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안전기준 미비, 가습기 살균제 피해 키웠다

정부 안전기준 미비, 가습기 살균제 피해 키웠다

입력 2016-04-20 07:49
업데이트 2016-04-20 0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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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 화학물질 위험성 예견…의약외품 미지정, 독성실험 누락

가습기 살균제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인 가운데 정부의 화학물질 관리 제도에 허점이 있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가습기 살균제 제조사들이 유해성 물질을 원료로 사용해 많은 희생자가 발생했는데, 당국이 사전에 철저한 안전 기준을 마련했다면 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는 주장이다.

검찰이 현재 민간 제조·유통업체에 대해서만 수사를 하고 있지만 당시 정부의 대응이 과연 적절했는지, 업무에 소홀함은 없었는지에 대해서도 함께 파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피해자 측과 전문가들은 문제가 된 화학물질에 대한 정부의 관리가 부족했다고 보고 있다.

PHMG(폴리헥사메틸렌구아디닌)나 PGH(염화에톡시에틸구아디닌)를 사용한 가습기 살균제가 인체에 해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어느 정도 예견됐음에도 이를 걸러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PHMG의 경우 공급업체인 SK케미칼이 2003년 호주 수출 과정에서 이 물질을 호흡기로 흡입하면 위험할 수 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현지 정부에 제출했으며 국내 제조사에도 흡입 경고 문구가 담긴 물질안전보건자료(MSDS)를 제공했다.

PGH는 2003년 수입업체가 환경부에 제출한 화학물질 유해성 심사 신청서에 스프레이 혹은 에어로졸 형태로 환경에 배출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그러나 이들 물질에 대한 경구(섭취) 독성 실험만 이뤄졌을 뿐 흡입 독성 실험은 실시되지 않았다.

용도 변경에 따른 유해성 심사가 이뤄지지 않은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해외에서는 건축용 살균제 등으로 사용되던 물질이 국내에서 가습기 살균제 원료로 사용됐지만, 당시에 관련 규정이 없어 아무런 제재 없이 제품으로 출시됐다.

박태현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PGH에 대한 유해성 심사 당시 당국이 흡입 독성 실험도 하도록 했어야 한다”며 “유해성 심사 단계에서 흡입에 대한 위험성을 확인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국가에도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강찬호 가습기살균제피해자와가족모임 공동대표는 “새로운 제품이 개발되면 안전 테스트를 거쳐야 하지만 사람이 흡입하는 가습기 살균제 원료로 버젓이 사용되는데 아무런 규정이 없었다”며 “마땅히 관리 대상 품목이 돼야 했지만 17년간 가습기 살균제가 전국에서 판매됐다”고 말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측은 제조사뿐만 아니라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이들은 지난해 정부 상대 소송에서 패소했지만 제품의 제조와 출시, 유통 과정에 국가의 관리·감독이 제대로 이뤄졌는지 따져봐야 한다며 항소했다.

정부는 당시로서는 가습기 살균제의 유해성을 파악하기 어려웠다는 입장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결과적으로 정부로서도 아쉽고 도의적으로 피해를 막지 못한 부분에 대해 할 말이 없지만 당시 제도상으로는 유해성을 파악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는 “PHMG가 처음에는 카펫 살균제 용도로 심사를 받았고 일반 화학물질로 지정했는데, 기업들이 그 물질로 가습기 살균제를 만든 것”이라며 “물질의 용도를 바꿔 쓸 때는 다시 유해성 심사를 해야 했지만 당시에 그런 제도까지는 마련되지 않은 상태였다”고 해명했다.

가습기 살균제는 인체에 흡입되는 제품임에도 사고 이전에는 일반 생활용품으로 분류됐기 때문에 별도 규정 없이 관리됐으며, 2011년말 뒤늦게 의약외품으로 지정됐다.

업계에서는 정부의 제도를 따랐음에도 생긴 문제의 경우에는 기업으로서도 억울한 측면이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정해진 기준을 지키지 않아서 문제가 발생했다면 전적으로 기업의 책임이지만 법적 기준이나 제도가 미비해서 발생한 일에 대해서는 정부에도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또 다른 물질과 제품에서도 제2의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지난 2011년 가습기 살균제의 유해성을 밝힌 홍수종 서울아산병원 환경보건센터장은 “살균제의 용도가 변경돼 인체에 손상을 준 것처럼 생활 주변에 검증되지 않은 위험요소가 많이 있다”며 “이번 사건을 명확히 밝히고 다시는 이런 사고가 생기지 않도록 국민이 안심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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